강론 25 -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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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25 자비
자비(Compassion)
모든 존재들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씁니다. 그것은 영혼 속에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충동이며, 심지어는 은총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막는 것처럼 보이는 이기적인 욕망들 때문에 먹구름으로 희미해질 때에도 그렇게 애씁니다. 상위자아(Higher-Self)의 지식은 하위자아(lower-self)의 지성 속에서 타고나는데, 하위자아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손을 뻗칩니다. 모든 신체 내의 각 세포는 "깨달은 마스터"의 청사진을 유지하는데, 그런 이유로 이 세계의 어떤 것도 여러분의 더 큰 부분을 늘 만족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위자아는 만족감이나 해방감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길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그 모토는 "찾기는 하나 결코 발견하지 못하리"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새로운 길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이 세계의 공허한 약속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길이죠. 그래서 누구도 여러분 자신이 찾는 선물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비'가 여러분을 이곳에 데려왔으며, 그것은 여러분 가슴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줄 것입니다.
"신성한 자비(Divine Compassion)"라는 선물은 '확신'의 결과인데, 여러분은 이미 확신을 이루어 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미 그것을 달성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여러분에게서 그 확신의 결과를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일부분은 '이 경험이 내 것이 되기 전에 아직 무엇을 해야 하거나 달성해야할 것이 남아 있다'고 믿는데, 저는 그런 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전부인 것을 봅니다. 결코 부족한 듯 보이는 것을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같은 일을 하는 방법을 배울 때, 부족함은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환상을 쫓아버리는데는 어떤 노력도 필요치 않습니다. 다만, 지금 진실인 것과 늘 진실이었던 것을 부인하는데는 정말로 많은 노력이 듭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슴이 그렇게도 피곤한 것인데, 여러분이 창조의 힘을 부인하기 위해 창조의 힘을 사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 점을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이 미칠듯한 궁핍을 풀어주고 놓아줄 때, 여러분은 더 이상 이 불편함(질병)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 후, '자비'가 여러분 영혼에 군림할 것인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확신'을 세계와 그 너머로 확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여러분의 '확신'을 다른 이들에게 확장시키는 행위입니다. 그건 그토록 간단합니다. 일단 여러분의 영적인 눈이 열리면, 그리고 언제나 바로 여러분 앞에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으면,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체된 지식이 아닙니다. '신의 사랑'이 흐르듯이, 앎은 계속해서 흘러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자유롭게 받았던 것을 주기를 멈추는 순간에, 여러분의 눈은 다시 닫힐 것이고, 여러분은 분리의 꿈의 세계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누구인지 안 것을 줄 수 있다면, 깨어있는 채로 남게 될 것이고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평화조정자'라는 여러분의 간단한 역할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아는 것을 주는 역할 말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왔다거나 이 세상의 누군가를 바꾸려고 왔다는 뜻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왔음을 뜻합니다. 필요한 것은 '자유'인데, 모든 존재는 이 세계의 속박을 느끼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놓아주기의 한 꼭지점이지만, 모든 다른 점들이 여러분의 꼭지점과 교차합니다. 그래서, '영적 평화 만들기 기술'과 '자비의 예술'은 동일합니다.
'자비'는 깨어있는 이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경험인데, 그들은 자신을 공격하고자 선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든 행동이나 말이 자신들의 체험의 근원을 향한다는 점을 알며, 체험 자체가 그 근원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을 제공하고자 선택할까요? 대신에 풀려나려는 것을 줄 수 있는데도 말이죠. 이러한 선택이 늘 여러분 앞에 있는데, 그런 이유로 우리는 '천상의 왕국' 역시 여러분 앞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천상의 왕국'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리는 다음 번 결정이나 여러분이 말하는 다음 번 말에 있죠. 천상이 그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믿기가 그렇게도 어렵나요? 여러분이 그것을 '보기'로 선택하기만 한다면 천상은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것을 '모두'에게 '준다면,' 여러분은 천상의 왕국을 '보게'될 것입니다.
첫 번째 깨달음, 빛나는 지성:
'자비'는 지성의 이치에 맞는데, 자비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기 쉽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조화를 향해서만 갈 수 있는데, 분리보다는 단결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비는 현실과 경쟁하지 않으며, 자비가 속하는 곳에 자비를 수립합니다.
순복 명상:
저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 내가 해야만 하는 말, 혹은 내가 가야만 하는 곳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지 저의 안내자로서 '자비'를 수용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길을 잃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비가 드러내는 모든 것에 순복합니다. 저는 아이처럼 될 것이고, 답을 갖고 있다고 추측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머리에 새로운 해답이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완전히 빛나는 그 '순복'입니다.
두 번째 깨달음, 깨어난 가슴:
'깨어난 가슴'은 '자비'와 완벽하게 정립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슴은 평화를 가져오는 그 역할에 대해 혼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됨을 통해서만 올 수 있으며, 그래서 깨어난 가슴과 자비는 같습니다.
신뢰 명상:
저는 '자비'가 제게 보여주는 모든 것을 기꺼이 신뢰코자 합니다. 평화의 비전이 저의 비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더욱 신뢰할수록,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는 점을 압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나의 유일한 목표인 진짜인 것을 보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완전히 깨어난 그 '자비'입니다.
세 번째 깨달음, 깨달은 영혼:
'자비'는 지금 그 목표를 잃었는데, 종국에는 자비가 단지 '완벽한 앎'의 상태에 이르는 다리일 뿐이기 때문이죠. 제가 이 강의 저쪽 편에 서 있기 때문에, 그 다리는 더 이상 저에게 유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감사와 기쁨으로 지나가게 합니다.
감사 명상:
새 삶의 선물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사랑만이 진짜인 세계로 건너왔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잠시 동안 이곳에 서 있을 것이며, 제 상상을 제외하고는 결코 떠나본 적이 없는 '고향'으로 저를 데려온 '유일자'에게 이 감사의 느낌을 확장할 것입니다. 지금 저는 완전히 깨달은 그 '감사'입니다.
Br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