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agape)의 길


통역관 홍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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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선)을 행하는 삶  통역관 홍순언 

조선시대 통역관은 양반 밑의 중간 계급에 속한다. 그런데 이 일개 통역관이 국가에 큰 공훈을 세워 일약 정승의 반열에 오르고 임진왜란이라는 절대 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구하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된 일화가 있다. 

선조 16년, 오래 전부터 이루지 못한 종계개록(宗系改錄 : 대명회전에 태조 이성계의 부친이 이인임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던 것을 고치는 문제로서 사실상 중국의 조선에 대한 대외적 승인문제로 볼 수 있음)의 승인을 얻는 외교적 문제와 명나라와의 조공 무역을 위해 조선의 칙사를 따라 간 통역관 홍순언이 조선의 칙사 일행과 명나라의 통주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북경과 불과 30 여리를 남겨 놓은 통주에 도착한 날, 홍순언은 술이나 한잔 할 생각으로 거리를 산책하였다. 

집집마다 문 앞에 달린 청사초롱 불 밑에는 간판이 붙어 있었고 그 밑에는 하룻밤 술값으로 십냥, 이십냥, 삼십냥이라고 쓰여 있었다. 홍 순언은 하루저녁 술값으로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며 이 집 저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참을 걷다가 어느 집 문 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청사초롱이 밝혀져 있고 가격표에는 ‘백만냥’이라고 쓰여 있었다. 

집의 형태로 보아 술집이 아니라 어느 지체 높은 양반집으로 보이는 데다 하룻밤 술값이 가히 천문학적이라 호기심이 발동한 홍순언은 덮어 놓고 그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인이 마중을 나와 혼잣말로 ’이제야 우리 아씨가 소원을 이루나보다’라며 방으로 인도하였다. 

홍순언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발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열리고 아리따운 소녀가 들어 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녀라서 술값이 이렇게 비싼가 생각하며 그 소녀에게 ‘그대가 오늘 내 술시중을 들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소녀는 ‘아닙니다. 저는 우리 아씨의 몸종일 따름입니다. 저~ 아씨께서 안으로 모시고 들어오라 하십니다.’라는 것이 아닌가? 

소녀는 좁은 복도를 지나 후원으로 들어갔다. 

홍순언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가 보니 기와집이 있고 처마 끝에 청사초롱을 서너 개 달아 놓아 대낮처럼 환해 눈이 부시었다. 그 눈부신 등빛 속에 칠보단장을 한 여인이 좌우에 시녀를 거느리고 홍순언을 맞이하며 방그레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홍순언은 그 여인을 보는 순간, ‘과연 천하일색이로구나!’ 

감탄함을 마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서니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방문을 열었다. 홍순언은 호화찬란한 방안을 들여다보고 객실에서 받은 느낌과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다시 보아도 어느 고관댁의 귀한 손님으로 온 것이지 술집에 와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공손히 절을 올리는 여인을 내려다 보았다. 홍순언은 황홀한 자태에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어 여인은, 

“상공께옵서 이렇게 누추한 곳을 찾아주시니 감사함을 어찌 말로 다 하겠습니까?” 

그러다가 벽을 향해 돌아 앉더니 어깨를 들먹이며 울먹이는 것이 아닌가? 

홍순언은 순간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그대는 술집 여인이 아닌 듯 한데 어인 연고로 이같이 술장사를 하게 되었소?” 

“사실인즉... 소녀는 기녀가 아니옵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백만냥을 쓸 곳이 있사온데 어찌 계집의 몸으로 그런 큰 돈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부득이 저에게 백만냥을 마련해 주는 분에게 제 정조를 바치고 그분을 서방님으로 모시고 살려고 하였는데 상공은 타국인이고 연세도 많으신 분이라 이 일을 어찌할지 모르겠습니다. 눈물을 보인 점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홍순언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게 뭔가?” 

“소녀의 아버지는 이 나라의 호조시랑이셨습니다. 호조시랑으로 계실 때 서역과 무역을 하는 친구분이 자신에게 투자하면 1년 내에 2배로 수익금을 남겨 주겠다는 말에 그만 국고금 백만냥을 투자하시었는데 서역과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투자금을 모두 날리게 되었습니다. 황제께서 진노하셔서 처형될 위기에 몰렸으나, 신하들이 3년 말미를 주시면 아버님이 탕진한 국고금을 변제하겠다고 하였으나 이제 3년 기한이 다 되어 가지만 탕진한 국고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무남독녀 외동딸인 이 소녀가 아버님의 생명을 구하고자 부득이 이같이 술장사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홍순언은 이 안타까운 사정과 처녀의 효심에 감동되어, 

“나는 그런 내막이 있는 줄이야 꿈에도 몰랐소이다. 하늘에서 내신 효녀에게 잠시나마 불칙한 마음을 품은 내가 잘못이었소. 자, 여기 조선과 명나라 간에 조공 무역을 위한 결제 자금 백만냥이 있으니 이것으로 부친을 구하시요.” 

홍순언은 이렇게 말하면서 허리에 찼던 전대 두 뭉치를 풀어 놓은 후 소녀에게 손끝하나 대지 아니하고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상공님! 이 큰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몸이 상공께 시집을 가지는 못하지만 이제 상공을 수양아버지로 모시고 십사오니 상공의 성함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하고 옷소매에 매달렸다. 

“아니요. 이 돈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그대의 효성에 감복해서 주는 것이니 그리 아시오.” 

홍순언이 기어이 뿌리치고 떠나려 하니, 

“정 그러시다면 제 말 한마디만 듣고 가십시오.” 

홍순언은 할수없이 도로 앉았다. 

“제발 존함이라도 가르쳐 주시면 저의 집 가보에 올려 이 은혜를 후대에 까지 전하려 하옵니다.” 

하고 애원했다.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이름을 댈만한 사람이 되겠소. 그저 조선의 통역관으로만 아시오.” 

하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 집을 나왔다. 여인은 울면서 문 앞까지 나와 그를 전송했다. 

홍순언은 숙소에 와서 자리에 누웠으나 물론 잠이 올 리가 없었다. 호기로 나라의 공금을 모두 썼으니 어찌 마음이 괴롭지 않겠는가. 

다음날 조양문을 지나 명나라 정부로 들어가서 종계개록에 대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할수없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조선에서는 이러한 홍순언의 국고 낭비에 대한 엄히 죄를 묻고 금부에 가두고 말았다. 그러나 조정 신하들이 선조에게 그의 의협심을 들어 3년 말미를 주실 것을 주청하여 즉시 처형되지는 아니하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게 되었다. 

세월은 빨라 홍순언이 옥에 갇힌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나라에서는 다시금 종계개록 때문에 사신들을 보내기로 조의가 결정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여러 번에 걸쳐 실패한 까닭에 이번에는 상감께서 엄지를 내리셨다. 

“이번에는 정사에 황정욱, 부사에 김계휘를 보내고, 만일에 이번에도 실패할 경우 정․부사 뿐만 아니라 말을 옮기는 역관도 그 책임을 물어 모두 참하리라.” 

모든 역관들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제 역관으로 선발되면 이는 사형선고나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역관들의 근심은 점점 높아졌다. 보통 때 같으면 서로 가려고 안달을 했을 것이지만 이번만은 저마다 아니 가려고 발뺌을 하는 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역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역관이, 

“이런 때에 홍역관이 있었으면...” 

모든 역관들은 불현듯 홍역관을 생각했다.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겠군...” 

그 역관의 말을 듣던 다른 역관들도 저마다 생기가 흘렀다. 즉 그들의 의견은 이러한 것이었다. 홍역관은 이왕 옥에 갇혀 죽고 말 몸이니 우리가 한 사람 앞에 얼마씩 돈을 모아 홍역관이 없애버린 돈 중 일부를 변상해 주고 그로 하여금 역관으로 가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결국 홍순언이 다시 통역관으로 선발되어 명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통주에 이르러 홍역관은 3년 전의 일을 생각하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숙소에서 하룻밤을 쉬고 다음날 일찍 명나라의 수도를 향하여 조양문을 들어섰다. 그런데 조양문 앞에서부터 길 양편으로 비단이 깔리고 재인, 악인들이 흥겹게 악기를 울리며 환영하는 것이었다. 홍역관은 전에도 물론 사신으로 왔었지만 이렇게 굉장한 환영은 받아 보지를 못했었다. 

그들 일행은 어리둥절하여 자기네들 외에 다른 귀빈이 어디서 오는 것을 환영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때 금은으로 호화스럽게 단장한 수레가 그들 앞에 이르자 멈추더니 풍채가 좋은 명나라 고관 한 사람이 내려 왔다. 

“홍역관이 어느 분이신지요?” 

정․부사를 다 젖혀놓고 역관부터 찾는 것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네. 소인이 홍역관이옵니다.” 

그러자 큰 나라의 위풍당당한 재상이 일개 조그마한 나라의 사신 그것도 말단인 홍역관에게 넙죽 엎드려 큰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원로에 오시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이같은 고관의 말에 사신들 일행과 구경하러 온 명나라 백성들이 깜짝 놀랐다. 

“누구시온지, 소인을 이렇게 찾으십니까?” 

“물론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옵니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조용한 자리에서 말씀 올리기로 하고 어서 이 수레에 오르십시요. 저의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대체 기다리는 사람이 누굴까? 

홍역관은 의아심이 솟구쳤다. 

어느덧 수레는 궁궐처럼 으리으리한 집 앞에 이르렀다. 석시랑의 집이었다. 객실에 이르자 그곳에는 명나라의 만조백관들이 초대되어 있었다. 그를 안내한 석시랑은 시녀가 내온 차를 권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후에 나와서 말씀드릴 사람이 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요.” 

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아름다운 귀부인이 시녀를 앞뒤로 거느리며 들어왔다. 

“앗~!” 

홍역관은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귀부인은 3년전 통주에서 그녀의 효성에 감복하여 조선의 국고금을 모두 내어주었던 바로 그 여인이 아닌가? 

홍역관에게 공손히 3배를 올린 후 그 귀부인은, 

“아버님! 그간 존체 건안하시온지요?” 

“아! 이게 누구요! 그래 부친께서는 무사하시고 건강하신지요?” 

“아버님 덕택에 모든 일이 무사히 해결되고 저도 예부시랑(우리나라의 교육부장관)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만일 아버님이 아니셨더라면 우리 집은 어떻게 되었을지 예측할 수도 없었을 것이옵니다.” 

석시랑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자기 아내를 구해준 홍역관에게 깊이 감사해 했다. 

그날 밤 석시랑의 집에서는 만조백관들이 구름처럼 모여 대연회가 벌어졌으며 각조시랑들은 석시랑으로부터 홍순언의 의협심을 전해 듣고 모두 감격하여 깊은 사의를 표하였다. 

조선의 정․부사도 홍역관의 간청으로 석시랑의 집에서 같이 묵고 호화로운 대접을 받았다. 물론 종계개록은 석시랑의 주선과 홍순언의 의협심에 감복한 만조백관들의 주청으로 무사히 승인을 받았고, 홍순언이 탕진한 조선의 국고금도 몇배로 상환이 되게 되었다. 

조선 건국이후 수많은 세월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사신들이 건너와 이루지 못했던 종계개록 문제가 홍역관의 의협심으로 인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홍역관 일행이 떠나는 날 석시랑 부처는 조양문 밖에까지 전송을 나왔으며 그 부인은 보은단을 수놓은 비단 3백필을 내주며, 

“아버님! 은혜를 갚기 위하여 드리는 것이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 아닌가? 

거듭 사양하고 일행이 압록강 근방에 이르렀을 때 뒤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리더니 그들 앞에 와서 우뚝 서며, 

“석시랑께서 보내시는 비단 3백필을 가지고 왔으니 받아 주십시요.”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조양문에서 홍역관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던 비단이었다. 홍역관의 전후 사실과 그가 탕진한 국고금의 3배를 명나라가 다시 상환해 준 사실을 전해들은 선조는 많은 상과 벼슬을 내리고 그를 당릉군으로 봉하여 그의 신분을 일약 최고의 양반 신분으로 상승을 시켰다. 

그 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홍순언을 다시 명나라에 보내어 청병하였던바, 때마침 석시랑이 백만대군을 마음대로 움직을 수 있는 병부상서의 벼슬에 올라 있어 그가 장인어른의 나라가 위급한데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황제를 움직여 이여송 장군 등 5만 대군을 파병하게 되었던 것이다. 

홍순언 개인의 선한 행위의 결과가 본인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교 관계까지에도 큰 영향을 미친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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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바보님의 댓글

안녕하세요?
다름이아니오라 올리신  글을 잘 보았습니다.
저도 저의 블로그에 홍순언이라는 글과 석성에 대해서 글을 써 본 적이 있습니다.
하여 2년 전에 지리산 추성리에도 다녀 왔지요.
그들의 인연이 감동 되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뵙고 새로운 사안에 접해 반가웠답니다.
기회가 되면 전화 통화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허락하시면 글의 내용 일부를 제가 글을 쓰는데 인영해도 좋은지 도움을 부탁 드립니다.
저의 연락처는 010-8662-7567 김정록입니다.
다음블로그 "진경산수네 이야기" 입니다.

의식상승님의 댓글의 댓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제가 홍순언 선생을 알게 된것은 15년 전쯤  되었을까요?
명심보감에서 뵈었던 것 같습니다.

홍순언 선생을 보면서 가슴에 찌리 하게 와 닿았습니다.
의를 세워 세상을 밝히고 나라를 구하니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의식상승의 글을 활용 해 주시는 것
좋습니다.
얼마든지 인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좋은 분 만나서 행복합니다.
언제든 한 번 만나도 좋겠네요.  ^^

늘 행복하셔요. ^^

빛과 사랑으로.......

바보님의 댓글

선생님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신것 너무 감사하고요.
시간을 내시어 저의 블로그에 들려 주실순 없겠는지요.
저의 블로그에 홍순언, 석성, 편갈송의 글을 언급하엿습니다.
선생님과 대화를 갖고 싶은데 먼저 저의 글을 보시고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도 편갈송장군 후손을 찾아 뵙고 왔습니다.꼭 부착드립니다.
저의 블로그는 http://blog daum.net/hl4hez입니다.
기다리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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