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물생심과 견성성불
컨텐츠 정보
- 4,972 조회
- 3 댓글
- 3 추천
- 목록
본문
견물생심이란?
본래 없던 것이 생겨나는 마음을 견물생심이라 합니다.
외부에 물질로 이루어진 사물을 보면서 들어지는 생각을 말합니다.
왜 우리가 사물을 보면 새로운 마음이 생겨 날까요?
무엇을 통해서 마음이 생겨 난다. 이것이 견물 생심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마음은 생겨 난다기 보다는
안에 있는 것이 외부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외부를 보면서 마음이 생겨 난다고 합니다만
실상은 안에 있는 것이 외부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외부의 사물을 보는 것은
단지 외부의 세상에 있던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의 내면에서 있던 것인데
외부 세상을 보면서 마음 안에서 명확히 들어나는 현상입니다.
나의 마음에 무엇이 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중요 하지 않습니다.
단지 마음에 있는 것은 언젠가 현실에서 반드시 생겨 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마음이란 것은 본래 나의 내면에 없는 것은
그것과 접속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놀랄 것은 없습니다.
물리의 세상에서 보여지는 것으로서
내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견물 생심으로부터 오는 고뇌를 줄이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의 안을 좋게 해야 외부에서 모든 것이 좋은 게 나타나고
외부에서 좋은 게 나타나야
안이 더욱 굳건하게 자리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승이죠.
나의 내면에 없는 것은 외부에서 보아도 별다른 공명현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외부의 사물을 보고 마음이 동하는 것이 바로 견물 생심입니다.
마음에 있으므로 외부에서 현상으로 증명하니 외부를 통해서 내부의 나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동하는 이유는 나의 마음에 외부에서 나타난 것의 속성이 깃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언젠가 어느 생에서인가 내가 만들어 두었던 마음이 물질의 세상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견물생심입니다.
이것이 외부에서 보고 내부에서 명확히 일어 나는 마음이 바로 견물 생심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외부로 향하는데서 일어나는 마음이 바로 견물 생심입니다.
본래 있지도 않던 것이 생겨 나는 마음이죠.
없던 것인데 왜 생겼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있었던 마음이 외물을 통해서 공명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만약 본래 나의 내면에 없던 것이 였다면
그것은 또한 현실에서 보이지 않으니
외부의 사물을 본다함은 이미 나의 마음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시면 거의 맞습니다.
그러므로 견물 생심의 정확한 의미는
마음안에 있던 것이 사물로 나타나니 그 사물을 보면서 마음에 다시 드러나는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견물생심은 의식이 외부세상으로 향할 때 나타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이 마음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이거는 이는 원래 내 마음안에 있던 것만
현실에서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하죠.
분리의식에서는 세상을 비난하고 비판할 것입니다.
당연히 세상을 좋게 해야 하니 투쟁과 전쟁과 혁명이 필요 할 것입니다.
견성성불
견성성불이란
나의 내면을 본다.
나의 내면의 본질을 본다.
나의 내면의 참자아를 본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내면에 맺힌 하나의 상이 아니라
태고적부터 본래부터 있던 나의 참자아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지어 맨들어진 상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않는 본질의 실체입니다.
나의 내면의 이 실체를 보는 것이 견성입니다.
견성하면 성불합니다.
견성하면 신성이 됩니다.
견성하는 경지는 마음이 열려야 가능합니다.
마음이 활짝 열리면 거기 본마음이 있습니다.
거짓 마음이 아닌 본마음 이 본마음을 통해서 신성으로 통합니다.
마음이 신성과 통하는 것
이것을 영통이라고도 하고 도통이라고도 합니다.
본래의 참나는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맑으니 통하지 아니하는 바가 없습니다.
이 참나를 못보고 오로지 외부의 사물에 마음을 빼앗기는 마음이 견물생심입니다.
물질이 곧 마음입니다.
마음과 물질은 동질입니다.
물질의 속성이나 마음의 속성이나 동일합니다.
마음이 물질과 통하는 경지가 바로 물욕입니다.
마음이 물질에 통할 때 욕통, 또는 물통이 됩니다.
마음에 물욕이 동하여 물질에 마음이 거하게 되므로 인해서 환영을 봅니다.
이것이 바로 에고의 삶입니다.
물질을 주체로 삼는 삶!
물질을 중심으로 삼는 삶이란 돈을 중심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이 물질이 아닌 참나인 신성을 통할 때
이것이 영통이며 도통입니다.
신성을 중심으로 사는 삶 즉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는 삶이란 빛의 존재들의 삶입니다.
견물한다는 것은 외부 세상의 물질을 보는 것입니다.
이때 일어 나는 마음이 물욕의 마음입니다.
견성한다는 것은 내면의 신성을 보는 것입니다.
이 때 일어나는 마음이 부처의 마음입니다.
언제나 외물을 보고 마음이 동하는 것에서 고통이 찾아 듭니다.
그러므로 외부 세상에 대해서 주의해야 겠습니다.
반면 의식이 내면의 참자아를 보면 빛의 존재가 됩니다.
깃털처럼 가벼운 삶입니다.
나의 마음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맑게 만드는 마음이 바로 견성의 경지입니다.
이제 물질만을 보는 삶이 아니라
나의 참성품인 신성을 보아야 합니다.
물욕은 고통을 불러 오지만
신성은 기쁨을 가져옵니다.
늘 풍요와 기쁨속에 머무세요.
빛과 사랑으로.......
관련자료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