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남성에너지와 여성에너지를 결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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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남성에너지와 여성에너지를 결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사회에서 두 남녀가 결혼할 때는 어떠한 절차와 과정을 밟는 가 생각해보세요. 둘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서로 결합의 필요를 느끼는 거죠. 이것은 인식과 삶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삶의 영역이 좀 더 넓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결혼식을 올리죠.
이런 의식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먼저 두 사람의 결단의 결합의식이고 다음으로는 사회적으로 공표를 하여 공인을 받는 거죠. 그리고 결혼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결혼식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듯이 내적인 남신/여신의 결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두 에너지의 만남은 서로를 허락하는 것이 필요하고 둘의 만남을 조장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떠한 억압도 없이 자연스럽게 풀어놓아 주어야 하죠. 그리고 의식을 행하세요. 그것은 마음의 조화와 평화,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마음에서 두 에너지의 통합을 선언하세요. 이것이 외적인 형태에서의 결혼식입니다. 그런 연 후에 두 에너지의 창조의 춤이 시작됩니다. 이런 일이 인세에는 보통 40세 전후에 생기는 일이죠. 인생 40이면 불혹(不惑)이라하죠. 내적으로 성인이 되어 남신/여신이 결혼을 한 거죠. 창조적인 힘이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가지 창작물을 내놓기 시작하죠.
이 변혁의 시기에 40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지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거예요. 이러한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안에서와 같이 바깥에서도!” 내적으로 완성된 남성적 상징이 내적으로 완성된 여성적 상징과의 결합,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결혼입니다. 神仙과 仙女가 만나는 겁니다. 이것이 변혁의 시기에 결혼이 갖는 의미입니다.
우리시대는 통일통합의 시대입니다. 기도수련, 명상하는 시간과 수면시간을 잘 이용하세요. 그저 명하시면 됩니다. 육체와 정신체, 감정체와 영체의 통일통합을 명하고 내적인 남신/여신의 통일통합을 명하세요. 당신 몸의 주인은 당신 자신이죠. 누구의 명을 따르겠습니까. 온 몸의 세포에게도 말을 거세요. 이러한 교류를 만물이 원합니다. 만물을 사랑하고 교류를 나누세요.
교류하세요. 에너지의 교류, 기쁨의 교류, 존재의 심연에서 피어나는 평화의 기운을 교류하세요.
사랑은 존재의 교류입니다. 에너지의 넘나둠이죠. 그러므로 사랑의 반대말은 고립입니다. 어떠한 에너지적 교류도 없는 상태가 바로 사랑이 없는 상태예요.
고립의 부재가 사랑입니다.
사랑의 여러 가지 정의는 피라미드 구조의 한 면과 같아요. 여러 가지 관점과 측면에서 사랑을 정의하는 거예요. 사랑은 자신을 알아보기 위해서 사랑이 아닌 것을 활용하죠. 빛이 어둠을 자기표현의 백그라운드로 사용하듯이.....
이제까지 정의된 사랑의 정의를 나열해 보세요.
사랑의 반대는 두려움
사랑의 반대는 죄의식
사랑의 반대는 고립감
사랑의 반대는 분리의식의 선택
사랑은 두려움의 부재
사랑은 죄의식의 부재
사랑은 고립감의 부재
사랑은 통일의식의 선택입니다. 그래요 사랑은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두려움을 선택할 것인가,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죄의식을 느낄 것인가, 진실을 느낄 것인가,
고립을 선택할 것인가, 교류를 선택할 것인가,
분리를 선택할 것인가, 통합을 선택할 것인가.
아시겠죠. 사랑이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여러분에게는 선택권이 있어요. 이것이 신의 위대한 선물인 자유의지죠.
인간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자신이 처한 환경을 선택하고 창조합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선택하고 그렇게 창조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법칙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빛과 사랑으로 하나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천차만차의 감정은 모두 사랑의 감정 아니면 두려움의 감정으로 귀속됩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두려움이 있어요. 빛이 없는 곳에 어둠이 있듯이... 하지만 어둠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예요. 단지 빛의 부재일 뿐이죠. 어두운 곳에 빛이 켜지면 어둠이 어디로 달아나는 것이 아니예요. 단지 밝아질 뿐이죠. 그러니 모든 것이 사랑입니다. 두려움은 기능장애를 일으킨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가 되기로 운명 지어진 두 대상의 친화적 경향성으로서 서로 연결되고 끌어들이며 권능을 부여하는 세 개의 국면을 가진 하나의 과정입니다. 사랑은 그것을 나눈 결과로서 서로에게 권능을 부여합니다. 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교류를 기능장애를 일으킨 사랑이라고 하고 이름하여 두려움이라하는 거예요.
사랑은 선택입니다. 사랑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신성의 빛을 보고자하는 자발적인 선택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에 대한 우리의 정의를 받아들일 때 여러분의 삶은 기쁨으로 넘치게 될 거예요.
사랑은 여러분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며, 진실의 영역에서 신명을 다하고자하는 자발적인 의지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신성한 의지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바야흐로 신성한 의지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그러하여 존재의 심오한 변형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진면목이 아름답게 비상합니다. 그것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 만큼이나 근본적인 변형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에고가 진아에게 그 지배적인 자리를 내어주고 진아에 순복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로 만물의 신성한 측면을 보고자 선택하는 자발적인 의지로서의 신성한 의지를 자기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신성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존재의 심연에 머무세요.
그것이 3차원 물질세계의 엑스터시입니다.
빛과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