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란?
컨텐츠 정보
- 1,763 조회
- 1 댓글
- 1 추천
- 목록
본문
외로움이란?
사람이 느끼는 외로운 감정 상태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의 부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영혼이 사랑받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내며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외로움이란 사랑을 잊은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존재합니다.
사람은 사랑에서 와서 사랑으로 존재하다가 사랑으로 되돌아갑니다.
사람의 시작이 사랑에서 시작되고 사랑으로 마칩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외로움은 사랑을 받아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받아서 채우는 사랑은 어쩌면 일시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주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받으려고 하면 상대가 무한히 사랑을 줄까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 안에 샘물이 하나 있는 데 그 샘의 이름이 사랑의 샘입니다.
내 안에 샘을 파면 그곳에 사랑의 샘이 만들어 집니다.
그 샘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그 샘의 이름은 사랑의 샘입니다.
샘이 마른 상태가 외로움입니다.
그러므로 샘을 파야만 외로움이 사라집니다.
그 샘은 내가 직접 파야 합니다.
내 안에 샘이 있으면 모두가 와서 생명의 물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로운 분은 먼저 내 안에서 사랑의 샘을 파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해야만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샘은 무한대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으로 부터 흘러 나오는 무한한 사랑의 샘입니다.
외로움을 없애고자 하는 분은 사랑을 갈망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사랑의 샘을 파야 합니다.
사랑을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은 유한한 것입니다.
무한한 사랑은 내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내 안에 사랑의 샘을 파세요.
그러면 사랑의 무한한 사랑의 샘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외로움은 저절로 사라지게 됩니다.
사랑을 받거나 사랑을 주거나 사실은 같은 것입니다만
사랑을 받기 위해서 갈망하면 그 사랑은 대개 채워지지 못합니다.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을 것이고 그 사랑은 거대한 사랑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 사랑은 영원히 순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 외로움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남녀 간에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사랑으로 존재할 때만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어서 사랑을 갈망하면 불행해질 소지가 매우 높습니다.
사랑이란 서로 간의 균형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서로가 사랑 안에서 성이 존재할 때 성적 균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로서 부부는 무한한 기쁨 속에서 자녀를 잉태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녀가 태어났을 때 부모와 자녀는 무한한 사랑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부모란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재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무한한 사람을 받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부모는 늘 입에 사랑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가 온전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빠는 너를 정말 사랑한다.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이런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늘 그렇게 말해야만 합니다.
자녀도 마음속에서 늘 나는 엄마 아빠를 사랑해요.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맞습니다.
마음속으로든 생각으로든 늘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말로 표현을 해야 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늘 사랑한다고 말을 할 것입니다.
세상이 진화를 많이 했으니까요?
과거에는 사랑한다는 말조차 부끄러워하고 잘표현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게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아가야 사랑한다 라는 말을 못했었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이를 향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부모세대가 못했거든 여러분은 말을 하시면 됩니다.
과거의 부모들은 다소 표현이 안 되고 거칠고 사랑과 반대되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발달하지 못한 부모도 자녀를 사랑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을 권리라고 하는 말을 많이 하더군요
그러나 부모와 자녀의 사랑은 권리 이전에 당연한 것입니다.
본래 사람이 사랑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곧 영혼입니다. 영혼이 사람이구요.
사람 속에 내재된 존재가 영혼이며
영혼이 물질로 표출된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 영혼은 항상 사랑으로 존재합니다.
영이 사랑이고 사람이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랑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사랑으로 존재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부모와 자녀는 왜 사랑으로 존재하지 못하는가?
이것은 그 부모의 참혹했던 과거의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부모의 부모가 또 그 위에 부모가 두들겨 맞고 욕을 하고 짓밟고
자식을 지 맘대로 했기 때문에 그렇게 배우다 보니
막상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그렇게 안해야 함에도 똑같은 짓을 되풀이합니다.
자신의 자녀를 두드려 패고 욕하고 온갖 화를 다 퍼붓게 되면
그 자녀는 큰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류의 자폐증입니다.
그렇게 학대받으면서 자란 존재가 또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자녀에게도 그렇게 합니다.
이것이 인류의 대악습입니다.
문제가 있거든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가를 정확히 분석할 줄 알아야 상처를 받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반복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총을 쏜다고 그 총을 다 맞고 죽음을 밟고 사경을 헤매고
여기저기 상처받고 사무치는 원한을 품었다고 때가 되면 보복하고........
이런 것을 수만번의 생애 동안 돌고 나면서 반복을 해왔었기 때문에
인류의 삶을 볼 때 세상을 볼 때
모든 것이 허망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매 생애마다 이런 삶을 산다면 삶이란 정말 허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의식의 각성을 통해서 자신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반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의식상승의 길입니다.
의식상승을 통해서 이제는 모든 인류가 사랑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태어날 때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이루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냥 매 생애마다 허망하게 죽고 살인이나 하면서 서로 죽이려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대개의 사람이 세상에 올 때는 과거의 생부터 쌓았던 거대한 짐을 내려 놓고
무한한 공력을 쌓아 상승하기 위해서 지구에 들어 오는 것입니다.
위대한 목적이 있어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사람으로 태어 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에만 들어오면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하고는 전혀 반대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짐을 더 짊어 지고 인생하여 덕을 쌓지 못하고 저진동의 삶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살기 때문에 바닥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매일 매일 사무치는 원한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보복을 반복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주ㅕㄴ에 가까운 사람들을 보면 대개 전생에 원수였던 분들이
서로 부부가 되고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게 됩니다.
하늘이 원한이 사무친 전생의 원수를 부모와 자식으로 엮어놓습니다.
사랑을 통해서 원한을 풀라는 뜻입니다.
간혹, 전생의 기억력이 지워지지 않게 되면 자녀에게 강력한 응징을 하게 됩니다.
두고 두고 보복하면서 괴롭힙니다.
전생에 당했던 것을 너를 죽여서라도 갚아주겠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는 기억력이 문제입니다.
인간이란 것이 좋은 것은 다 잊어 버리고 악한 것을 뼈속까지 기억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런 식으로 살게 되면 여기가 지옥이 됩니다.
허망하고 덧없는 살다가 병들고 사고 나서 비명에 갈수도 있습니다.
그렇게들 늘 돌아가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곳 의식상승에 오신 분들은 짐을 내려 놓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잘가면 됩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깨닫고 내가 이루어야 할 길은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령 내 부모가 지옥을 만들었을지라도 나는 천국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나는 이 생에서 나를 완성하러 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을 보니 근래 가장 사랑을 많이 주어야 할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살해까지는 아니여도 자녀에게 그에 준하는 악을 쏟아붓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로써 그 부모와 그 집안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부모도 자식을 두드려 패고 심지어 자식도 부모를 두들겨 패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전생을 알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저런 짓을 행하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당한 입장에서 바라 보기 때문에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참혹한 결말에 이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록 자신의 부모에게 가혹한 고통을 당했을지라도
나는 세상을 살면서 저러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나는 절대 나의 부모가 나에게 저질렀던 짓을 내 자식에게 하지 않겠다.
나의 자식은 정말 사랑으로 키우겠다고 하늘에 맹세를 해야만 합니다.
이제는 꿈에서 깨어 나야 합니다.
지금은 모든 인류가 사랑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도 자기 부모와 똑같은 짓을 합니다.
악이 전이 되고 악의 꽃이 피고 악의 열매를 추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다 집안의 내력이고 집안에서 악행지수가 높아지면 자손들이 멸망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버림받은 존재로 자기 비하를 하고 천한 존재로 생각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살아갈 때
영혼이 고립되는 상태를 체험하게 됩니다.
영혼이 사랑으로부터 멀어질 때 그때 죽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날마다 자살을 생각하고 세상을 파괴하고 싶고
이 세상이 모두 망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시로 하늘을 원망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절대 상황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치않는 일이 더 많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하느님 왜 이 세상에 이렇게 비참한가요?
부처님 예수님 왜 이런 것입니까?
에타게 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절대 멈추지 않고 계속 참상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계속 반복해서 당했기 때문에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고
하늘을 원망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음 ..........
그렇군요.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상황을 해석하는 힘이 없습니다.
이것을 두고 해석능력 부족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영혼이 고립된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영혼은 단 한번도 고립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의식과 영혼이 단절되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것이지 영혼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영혼은 고립될 수 없습니다.
태고적 부터 단 한 번도 영혼은 고립된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영혼과 그 사람이 단절되고 있을 뿐입니다.
영혼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아니다.
그거 아니야!
영혼이 위험 신호를 내보내는 것입니다.
그로서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지금 니가 길을 잘 못가고 있다고 계속 느낌을 전해 줍니다.
그렇게 하면 안돼!
계속 메시지를 보냅니다.
기분이 더 나빠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어.
그게 아니야.
그것은 니가 그런게 아니야.
상대가 잘 못된 것이니
왜 저렇게 된 것인지를 알아야 해!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어!
생각을 바로 해야 해!
어서 그 생각에서 벗어나!
위험해!
지금 네가 길을 잘못 가고 있어!
영혼은 기분을 통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기분이 계속 나쁘기 때문에
더 화가 나고 짜증이 나며 상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혼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게 되면 더 길을 어긋내게 됩니다.
이 때 영혼은 도저히 해결이 안되는 경우에는 질병을 통해서 멈추게 합니다.
더 길이 많이 어긋나면 사고를 내서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절대악을 행하려 하면 영이 몸을 버리고
다시 프로그래밍을 하기 위해서 영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재설계를 해서 다시 오게 됩니다.
이것이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사망하는 이유입니다.
자살이든 뭐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길이 어긋났을 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래마에 걸리게 되면
나의 현재 의식이 세상으로도 나가 갈 수 없고 영혼으로도 되돌아 가지도 못합니다.
그 사람의 의식에서는 이 세상이 모두 막힌 것으로 생각됩니다.
심해지면 사고가 나거나 병이 나거나 자살을 하거나 비명횡사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영혼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이 단절되는 현상입니다.
이 때 사람은 영혼의 단절감을 느끼며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몸서리치는 외로움과 고통에 몸부림 치게 됩니다.
가슴이 터질 듯한 답답함에 미치도록 시달리게 됩니다.
결국은 모든 것의 원인을 상대에게 넘기게 되면서 원한이 사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사람의 영혼과 의식이 단절되는 현상입니다.
영혼은 계속 기분을 통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야!
지금 너는 판단을 잘못 하고 있어!
지금 너는 길을 잘못 가고 있어!
잘 생각해봐 지금 이것은 시험이야
시험을 잘 넘겨야 해
저것은 실체가 아닌 환영 같은 것이야!
저것이 본래의 모습이 아니야
그러니 잘 통과해야 해! 라는 신호를 보내 줍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의식의 상승을 통해서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면 결국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면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차서 앞길이 막히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커지면 모든 것이 지옥이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 지속하면 부정적인 주파수 파동을 분출하게 됩니다.
그 사람 앞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그 사람에 맞춰서 반응하게 됩니다.
그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해주라는 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사물이 반응을 해주는 것이 법칙입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주파수에 맞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양자역학이라고 합니다.
사물의 움직임이 그 사람에게 맞춰서 반응을 해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마주할 때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한 사람을 만나면 거기에 맞는 반응을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분을 만나면 또 그에 맟줘서 반응을 해주게 됩니다.
부정성이 강한 분에게는 모든 사물과 사람이 그에게 맞게 반응을 해주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긍정성이 강한 분에게는 모든 사물과 사람이 그에게 맞게 반응을 해주게 되어 있습니다.
아닐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항상 그렇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부정성이 강한 분에게는 항상 사물이나 사람들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반응을 해주는 것입니다.
안좋은 일, 기분 나쁜 일, 짜증 나는 일, 괴로운 일, 힘든 일, 고통스러운 일, 그런 일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온 세상이 그런 것처럼 반응을 해주게 됩니다.
긍정성이 강한 분에게는 사물이나 사람들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반응을 해주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 기분 좋은 일, 행복하고 기쁜 일, 즐거운 일 그런 일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마치 온 세상이 본래 그런 것처럼 반응을 해주게 됩니다.
결국 세상은 나에 주파수에 맞는 현상만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물이 그 사람에 맞춰서 반응한다는 것이 양자 물리학에서 증명 되었습니다.
나 자신이 영혼으로부터 분리된 상태
자신과 영혼이 단절된 상태
영혼과 단절된 상태 이것이 외로움의 절대적 원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랑의 부재한 상태라고 합니다.
사람이 본래 사랑입니다.
사람에게서 사랑이 마르게 되면 당연히 외롭게 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면 늘 불안하고 두렵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외로움이 가득한 사람을 멀리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이 있는 곳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밝고 환한곳 따듯한 곳을 좋아 합니다.
사랑이 없는 곳 춥고 외로운 곳은 무의식적으로 싫어 합니다.
모든 사람은 외로움과 빈곤과 불안함과 두려움 불편함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여유로움 평온함 풍요 행복 안전하고 편안한 곳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랑으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