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이해


생과 사의 두 갈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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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의 두 갈래 길


생과 사의 한 갈래는 짐을 내려놓는 것이고 또 한 갈래는 소중한 것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을 이해했으면 벌써 다 이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 모두는 아주 오래 도록 이 두 부분을 수도 없이 체험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하여 정확히 분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삶보다는 죽음의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삶이라는 그 치열한 여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그리고 아파했는지 그것은 정말 눈물 나는 이야기다. 삶이란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삶의 무대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물론 매사에 잘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런이야기가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 가려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것에 대한 의미를 깊이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 삶이란 생(生)과 사(死)의 두갈래 길이다. 살지도 죽지도 않은 중간에 머무는 인간은 없다. 사람의 실체가 의식이란 점에서 세상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식물인간은 없다. 죽든지 살든지 두 길 중에 하나에 머물고 있다.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존대들은 살든지 죽던지 둘 중하나라고 할 수 있다.

 

생과 사라는 말에 대하여  유난히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과 사의 심오한 의미를 인식하면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대단히 도움이 되는 말이다. 삶에 있어서 생과사의 중간의 길 따위는 없다. 삶이란 오직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죽거나 사는 거지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그런 상태에 있을 수 없는데 의식이 잠을 자는 사람들은 죽은채로 살아가고 있다. 죽어서 사는 것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사람은 의식이 각성되지 못하면 의식이 잠을 잔다. 의식이란 것도 잠을 자든지 깨든지 둘중에 하나다. 실지로는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상태 그런 것은 없다. 실상은 죽든지 살든지 둘중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 것은 무엇이고 죽은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죽었다는 것이 육신이 숨을 안 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죽었다는 것은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짐이 너무 많이 짊어지게 되면 짐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짐을 다 내려 놓아야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귀중한 보석을 많이 지니고 사는 것을 말한다. 보석이란 높은 의식으로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의식이 상승되었다는 것은 의식속에 보석과 같은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1. 살고자하면 반드시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첫 번째로 짐을 분석해 보자. 짐은 무엇인가? 짐이란 무게가 있다. 짐은 무겁다. 짐이 누적되면 사람은 죽게 된다. 삶의 무게는 짐의 무게다. 그래서 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을 짓누르고 힘들게 하고 끝내 질식시켜 죽게 만드는 것이 짐이다. 그러니 짐은 반드시 내려놓아야만 한다.


근데 사람들은 짐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아무리 발버둥처도 짐이 내려 지지 않는 것을 어찌 하랴. 그러면서 짐을 내릴 수 없다는 관념이 강하게 박히면서 지금까지 세상을 살면서 완전히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이상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늘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래서 짐 위에 짐을 자꾸만 더하면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죽기 직전이다. 얼마나 힘들겠는가? 당사자가 아니고는 그 고뇌와 아픔을 알지 못한다. 죽을 지경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놓을 수 없는 것이 짐이다. 그래서 삶이란 것은 정말 고단하다. 그들을 보면서 저절로 나오는 말이 가여운 사람! 그 말 한마디다. 너무도 안타깝지만 덧에 걸려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비틀거리면서 사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삶이다. 그래서 여기 이렇게 간절히 의식상승의 길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는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짐을 내려놓을 수 없다. 우선 짐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를 살펴 보자. 인간이란 존재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짐을 짊어지고 나온다. 이런 것을 교묘히 이용해 먹는 것이 종교에서 떠들어 대는 원죄론인데 이런 것은 인간을 아예 가두어 두는 아주 나쁜 세뇌수단이 되었다. 본래 원죄라는 것은 없다. 그것이야 말로 낡은 시대가 지어놓은 유물이다. 원죄론이 아니라 무자각 무책임론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제 스스로 지어 만드는 것이지 누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수많은 생을 돌고 나면서 지어 만든다. 그것은 누가 그렇게 한것이 아니고 다 제 스스로 쌓아 만든 것이다. 쉴 새 없이 짐을 스스로 만들어 짊어지는 것이 인간이다. 왜 짐을 졌는가? 어린 아이를 보면 짐이 없다. 그들은 순수하고 맑다. 어려서는 아무 짐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어른이 되면서 짐이 쏟아져 나온다. 

 

인간이 낡은 것은 유지하는 방식을 습관이라고 한다. 사전에서 습관 [習慣]을 이렇게 해석했다.  1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염습(染習). 2 <심리>학습된 행위가 되풀이되어 생기는, 비교적 고정된 반응 양식. 습관은 習익힐습이고 慣익숙할관 이다. 익힌 것은 익숙하게 반복하는 것이 습관이다. 그래서 습관이 된 것은 계속 되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에는 좋은 습관이 있고 안 좋은 습관이 있다. 좋은 습관은 사람을 이롭게 하지만 않좋은 습관은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한다. 분명한 것은 않좋은 습관은 버려야 한다. 안좋은 습관은 잘 못된 버릇이고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고처야 한다.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는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 안 좋은 습관이다.

 

짐이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1.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

2. 잘못된 것을 반복하는 것은 않좋은 습관이다.

 

지나온 시간 의식상승는 사람은 본래 죄는 없다. 지옥도 없다. 그렇게 말해 왔다. 정말 지옥이 없을까? 죄란 것이 없을까? 당연히 지옥은 없다. 죄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의식이 상승된 존재에게만 그렇다. 그러니 의식이 상승하지 못한 삶에는 분명히 지옥도 있고 죄도 있다. 사람이 잘못된 일을 행하는 것을 죄라한다. 않좋은 습관도 죄가 된다. 모든 죄는 짐이 된다. 그러므로 잘못된 것이나 안좋은 습관은 반드시 고쳐야만 한다.

 

나의 잘못을 고치려면 먼저 내가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의 잘못을 알았거든 반드시 고처야 한다. 나의 잘못이란 어느 누가 고쳐주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잘못이나 습관은 내 스스로 고쳐야만 한다. 잘모된 일, 안 좋은 습관은 모두 내것이다. 내가 만들었으므로 내 스스로의 책임이다. 남이 나의 잘못을 고쳐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고쳐주는 것보다는 자기 스스로 고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스스로 잘못된 것을 알았거든 반드시 고처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고쳐야 한다. 이것을 누가 하는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스스로 고쳐야 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정말 스스로 외에는 아무도 고칠 수 없다. 불균형, 부조화, 불합리한 것을 올바르게 개선하는 것이 고치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내가 잘 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 짐이다. 짐이 크면 클수록 중요한 순간마다 짐이 나를 망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반드시 내가 짊어지고 있는 짐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를 고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고 군자이다.


이젠 예전하고 다르다. 옛날에는 늘 누군가 대신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 해야 하는 때다. 아무도 자신의 허물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다. 자기가 자기를 안 고치고 누구에게 짐을 짊어지게 하려고 하는가? 이것이 바로 무책임한 사람들의 자세다. 인제 지구인류는 어른이 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힘, 스스로가 스스로를 분석할 줄 아는 힘,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힘을 길러야 한다.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고 스스로의 잘못을 고칠 줄 아는 자는 위대한 사람이다. 이제는 사람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고칠 줄 알아야만 한다. 이는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짐을 덜어내는 길이다. 짐을 내려놓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고칠 줄 안다. 이런 사람을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이게 바로 군자다. 스스로를 고치는 자는 짐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가 차를 하나 샀다고 하자 새 차를 사면 처음에 어디 하나 미세한 결점이 드러나도 기분이 나쁘다.  작은 부분 하나 고장 난 것도 기분 나쁘다고 하면서 고쳐 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애초부터 작은 결점도 없기를 바란다. 왜 비싼 돈주고 사는 물건에 결점이 있기를 바라겠는가? 참으로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나 자신에 있어서는 어떤 결함이 있어도 별로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사람이 잘 못을 하거나 안 좋은 습관을 지니고 있다면 이는 어딘가 고장 난 것이다. 실은 이것이 사소한듯이 보여도 내 앞길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런 것이 자기 결함이다. 이것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고치지 못하면 소용없다. 그래서 고장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 자신이 잘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를 자학하거나 미워하란 말과는 다르다. 이는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다. 사랑하기에 반드시 잘못된 습관을 고쳐야 한다. 만약, 자기 잘 못에 대해서 깊이 인식을 못해서 고치지 못하게 되면 나중에는 내가 나아가는 길에 큰 장애가 된다. 그래서 반드시 고쳐야만 한다.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인식정도의 유형

1)자기 잘못을 아예 모른다.

2)자기 잘못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고치지는 못한다.

3)자기 잘못을 알고서 고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그러나 고쳐지는 못했다.

4)자기 잘못을 알았고 반드시 고쳤다.


자신에 대한 고장부분, 않좋은 습관, 잘못된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고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인생의 성패와 관련된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제는 반드시 고쳐야만 한다. 고치지 못하면 내가 성장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4)번의 잘못을 알았으면 반드시 고친다. 이래야 삶이 참다워지게 된다. 잘 못된 것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인식을 깊이 하기만 해도 당장은 아니라도 점점 자기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안 좋은 습관이나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것을 정말 힘이 든다. 하지만 나에게 나쁜 습관이 있다면 수백수천번의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내 삶이 행복해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자기 자신의 잘못을 아무나 고치는 것이 아니기에 진실로 자기 자신의 잘못을 고칠 줄 아는 사람은 위대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2. 내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


삶이란 보석을 모으는 것이다. 가슴에 빛나는 보석의 씨앗을 심어 보자. 보석이란 무엇인가? 보석은 앞장에서 말한 좋은 씨를 심는 것을 말한다. 좋은 씨는 보석의 열매를 맺게 해준다. 씨앗이란 심으면 결실이 있고 심지 않으면 결실이 없다. 이것이 씨앗이다. 이것이 자연이다. 이것이 깨달음이자 원리이다. 이렇듯 원리라는 것은 아주 쉽다. 심으면 자라서 결실을 하게 된다. 무언가를 심든지 안심든지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다. 그러나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이롭게 하는 좋은 씨앗을 심는 행위다. 나를 위해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반드시 꼭해야만 한다. 그런 근성같은 것이 있어야 무엇이라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꼭해야 할 일은 나를 잘되게 하고 남을 잘되게 하며 세상을 잘되게 하는 일이다. 그런 공리적인 정신이 담긴 일을 해야 한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잘못된 일이다. 그리고 안 좋은 습관이다. 사람이 꼭해야 할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아무리 좋은 듯이 보여도 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잘되려면 잘못된 일은 반드시 고치고 해야 할 일은 꼭 하는 것은 원칙이다. 이 두가지는 결국 같은 것이다.


자신의 낡은 습관을 못 고치거나 잘못된 부분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해야만 할 일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습관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을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 결국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다. 실지로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부분을 고치지 못하고 짐을 계속 가중시키면서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면 나중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큰 고통을 불러 오게 된다.


아무리 평범하게 사는 사람도 이것은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이루어 나가지 않는다 해서 아무도 뭐라 하지는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살든 각자의 자유이다. 모든 것은 언제나 적절하다. 하지만 큰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든지 중요한 자리를 맡은 사람들을 이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그들에게 안 좋은 습관을 못고치고 해야 할 일을 안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덤이 될 수 있다. 삶이란 결국은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죽느냐 사느냐 의 문제이다. 사는 길은 오직 잘못을 고치고 해야 할 일을 이루어 내는데 있다. 이것은 너무도 간단하지만 삶의 대원칙이다.


나 홀로 살아간다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고 서로 함께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잘못을 고치고 꼭 해야 할 일은 정성들여 해나가는 이 두 가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에 부합하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몇번이고 말하지만 스스로 잘못을 고칠 줄 아는 자는 군자다. 그러나 스스로의 잘못을 고치지 못하면 머지않아 큰 어려움에 당면하게 된다.


그다음 깊이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쉽게 날로 먹으려 하면 안 된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이고 이루려면 성심(誠心)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일에 부합하는 적정의 노력을 해야 한다. 무슨 일이고 그에 합당한 부합하는 노력이 양이 있다. 그 양만큼은 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한 기본에 도달하지 못하는 노력은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A라는 일이 있다고 하자. A라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100의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라고 했을 때 A의 일 = 100의 일이 성사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적절한 균형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보면 A라는 일을 이루기 위한 적절한 정성이 100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들이는 노력과 정성을 보면 대부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그래 놓고서 늘 일이 안된다고 한다.

 

A를 이루기 위한 노력과 정성으로 적합한 것은 6번이다.

1)1~2개 정도의 노력을 한다.

2)10개의 노력을 한다.

3)30개의 노력을 한다.

4)90개의 노력을 한다.

5)100개의 노력을 한다.

6)110개에서 200개의 노력을 한다.


사람이 얕으면 얕을수록 날로 먹으려 한다. 고생수가 훤한 생각이다. 실지로 일하는 자세는 6번과 같은 방식이여야 한다. 물론 100만 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마음을 쓸 때는 좀 넉넉해야 한다. 한 수 더 멀리 내딛는 것이 고수의 길이다. 매사에 부족한 성심을 가지고는 결과적으로 이루는 것이 거의 없다.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로또 방식을 날마다 기대하면서 산다고 한들 그것이 참된 보석이 되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오천만 인구 중에서 로또가 맞는 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누군가는 되겠지만 그것도 조급해서 될 일이 아니다. 된다한들 그 돈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지닌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은 로또와 같은 것을 노리지 않는다. 그러니 일확천금을 노리는 허황한 생각은 허망한 생각에 가깝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일에 전념해야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는데 그런 일을 열정을 들여 안하고 로또 같은 것을 기다리고만 있겠는가?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길이다. 그야말로 망하는 길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러한 방식에 기대하는 생각을 접어 버리자. 차라리 6)번 같은 방식을 쉼 없이 반복해 보자 머지않아 기적이 일어날 것이고 기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 날 것이다. 그런 일을 또 하고 또 하자. 거기서 기적이 일어난다. 그것이 대다수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이다.


6)번 110~ 200개의 노력을 한다. 이러한 자세가 군자의 자세이다. 군자는 매사에 이런 식으로 노력을 하고 정성을 다한다.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온 힘을 다하는 것이 군자이고 고쳐야 할 일에 대해 생사를 걸고서라도 반드시 고치는 것이 군자의 정신이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공부다. 삶에 대해서 낡은 짐을 덜어 내고 소중한 보석의 씨앗을 심는 것이 백배는 더 잘 사는 길이다. 사람이 낡은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거짓된 것에 놀아나 버리고서는 항상 삶이 고달플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왕이면 더 큰 생각, 더 큰 마음을 가져야 하고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고생을 안 하게 된다.


사람들은 사람의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한다.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겉과 속이 아주 정확히 일치 한다. 한 치도 속일 수 없다. 눈 빛만 마주쳐도 그 속에 들어 앉은 정신을 알 수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다. 집중력만 좋으면 상대를 정확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그 다음 형상을 보고 자세를 보고 말을 들어 보면 속이 훤히 보인다. 하지만 집중력이 없으면 맨 날 속아 넘어가는 낡은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사람이 스스로 빛이 되고 빛으로 꽉 차면 그 앞에서 어떻게 해볼 수도 없다. 늘 자신의 삶을 주체를 못해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이 원인인지 모르고 하다보면 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과 탓을 하고 시기질투 하면서 번뇌 망상에 휩싸여 고통 속에서 겉을 빙빙도는 텅 빈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면 삶이라는 것이 꿈같은 한세월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 평소에 공부를 안 하면 그냥 삶을 허드레하게 소비 해버릴 수도 있다. 우리들 자신이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우연히 아니다. 우리는 아주 명료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는 “세상을 그냥 사는 거지! 뭐 복잡하게 살아!”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으로 본인은 복잡함에 휘말려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맞다. 세상은 하나도 복잡하게 살 것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세상을 쉽게 사는 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장황한 설명을 했지만 핵심은 정말 간단하다 하지 말아야할 일은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면 된다. 이토록 간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가지가 지질나게도 잘 안 된다. 그래서 아주 심하게 휘둘리면서 위태위태 살아가는 것이 인생살이다. 

세상살이는 명상을 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 길이다. 스스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잘 모르면 첩첩 산중이고 고난의 연속이다. 자기의 현주소를 모르면 모를수록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다. 자기공부를 않하면 세상살이가 늪이다. 이 늪을 잘 헤쳐 나가지 못하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살이다.


행복하기를 바라는가? 그럼 날마다 자기명상을 해야 한다. 의식상승에서는 글 읽는 것이 자기 명상이 된다. 의식상승 옆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명상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시간 나는 대로 자주자주 명상을 해야만 한다. 자기를 매만지는 것이 명상이다. 자꾸자꾸 매만지다 보면 저절로 길이 난다. 한마디로 도가 트는 거다. 지금 세상에서는 무언가를 한다는 사람치고 자기 명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기 명상을 안해본 사람들은 늘 드라마를 펼치면서 죽도록 미워하면서 끈적끈적하게 서로 엉켜서 살아간다. 복잡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자기를 늘 돌아보고 매만지고 정리 정돈하는 것이 명상이다. 그리하여 질이 잘 뚫어 놓으면 삶이 행복해진다.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좋은 씨앗을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좋은 일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면 삶을 자신을 들여다보고 정확히 분석해 봐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진보한 삶을 설계해야만 한다. 이제는 우리들 모두가 나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 허드레한 인간은 없다. 허드레한 인간이 세상에 들어오는 법이 없다. 다 각자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 여러분 모두는 알고 보면 심오한 존재이고 귀중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의 삶에 대해서만큼은 깊이 이해 할 줄 아는 그런 존재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는 길이다. 삶이란 생과 사의 두갈래 길이다. 삶이란 잠을 자든지 잠을 깨든지 두 갈래 길이다. 세상을 쉽게 산다고 좋은 것만도 아니고 어렵게 산다고 꼭 깨달음이 깊은 것도 아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깨달음에 달려 있다.


사람으로 살면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다. 고쳐야 것이 있다면 그것을 고치는 일이 설령 죽을 만큼 힘들어도 반드시 고쳐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죽을 만큼 힘들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것이 바로 죽지 않고 사는 길이다. 해야 할 일은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이 곧 죽음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버릴 것은 반드시 버려야 하고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



늘 행복하세요.


빛과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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