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성의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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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성의 환영
사랑한다는 것은 미워한다는 것이고 미워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싫어한다는 것이고 싫어 한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것이다. 슬프다는 것은 기쁘다는 말이고 기쁘다는 말은 슬프다는 말이다. 부하다는 것은 가난하다는 말이고 가난하다는 것은 부하다는 말과 같다. 돌고 도는 것이 세상사이니 지금 내가 걸어가는 길은 내일의 나를 말한다. 좋아하는 것은 다시 싫어하는 것을 잉태하며 싫어하는 것은 좋아 하는 것을 잉태한다. 이원성의 환영 속에서 진실로 사랑이 존재하는가?
어디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는가? 이 세계는 언제나 항상 어떤 원인자가 있어 결과를 낳는다. 지금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원인이 있었다. 우리의 현실은 지난시간 우리가 심어놓은 원인자가 만들어내는 환영물이다. 이원성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돌고 돌면서 서로 게임과 드라마를 펼치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미워한다는 말이요 미워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원성의 세상에서는 죽도록 고생만하고 남는 것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이득보다는 손해를 더 볼 소지가 많다. 그것은 이 세계가 이원성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에 의해 돌아가는 환영물이기 때문이다. 이원성 그것은 낡은 세상이다. 우리가 걸어온 이 세상은 이원성의 세상이다. 이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해치고 상극 대립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처절한 세상이다.
지혜롭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말이고 어리석다는 말은 지혜롭다는 말이기도 하다. 귀하다는 것은 천하다는 말이고 천하다는 것은 귀하다는 말과 같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돌고 돌며 서로 대립한다. 이 세상에서는 부귀한 자가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기도 하고 귀한 대접을 받던 자가 순식간에 노숙자로 전락하기도 하니 이원성의 세상은 돌고 도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영이다. 비단옷도 낡으면 물 걸래로 돌아간다고 했던가?
의식상승가 지향하는 세계는 투명한 세상이다. 투명하다는 것은 어떤 색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투명하다는 것은 영의 모습과 흡사하다. 다시 말해 색이 없다는 것은 이원성에 속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류가 수천 수억 만년동안 이원성의 세상을 거닐었던 것은 무한히 성장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성장한 만큼 이제는 다시 투명해져야 한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과거에는 사람들이 순박했다. 그러나 그때는 정보의 부재로 투명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인간에게 정보가 없으면 어두울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정보가 넘쳐나지면 사람들의 마음이 물질에 사로 잡혀 투명해지기 어렵다. 깨달음이란 정보다. 오늘날 세상에서는 과거보다 유리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정보의 세상이라는 거다. 사람에게 빛의 정보만 넣어주면 투명해 질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사람이 투명해지는 길이 지금의 세상이 더 유리하다. 지금은 완전히 빛의 세상이 되어 가고 있으니까 그렇다.
하나에 한 국면씩 보면 알 수 있다. 빠르다는 것은 느리다는 말이고 느리다는 말은 빠르다는 말이다. 쉽다는 말은 어렵다는 말이고 어렵다는 말은 쉽다는 말과 같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양면을 지니고 있다. 낡았다는 말은 새것이라는 말이며 새 것은 낡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국면에서 변화하지 않으려는 것은 살길이 단절되었다는 말과도 같다. 이 세계에서는 어떤 한 면으로서 그것이 승승장구 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향물이 반드시 있다. 이 두 갈래 길을 넘나드는 것이 삶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원성의 변화무쌍한 환영물이지 실체가 되지 못한다. 이원성의 세상은 고통을 낳고 번뇌 망상을 창조하는 세상이다. 이 세계는 진실로 환영이다.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다.
행복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원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 말은 영혼이 맑아 져야 한다는 말을 의미한다. 영혼은 무엇인가? 영혼이란 당신의 신성이다. 영혼은 이원성과 공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영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원성이라는 낡은 드라마를 펼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의식이 신성으로 화한 존재는 이원성에 머물지 않는다. 의식이 아직 이원성의 낡은 에너지에 머무는 것은 낡은 세상으로부터 졸업을 못했다는 말이다. 좋고 싫거나 곱고 밉거나 아프거나 안 아프거나 좋았다가 싫어하는 것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모든 것이 이원성에 머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의식상승을 하다보면 점점 투명해지게 되어 있다. 투명해지면 이원성이라는 낡은 옷을 모두 벗어 버리게 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지구 행성에서 물질이라는 짙은 꿈이 쉼 없이 이원성의 낡은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원성이라는 환영에 깊이 빠져 버리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의식이 이원성에 머물면 끊임없이 고통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 이원성의 낡은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은 고통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당신 삶속에 아직 이원성이 남아 있거든 그것은 당신을 고통 속에 허덕이게 할 소지가 많다. 우리의 삶 주변에는 낡은 에너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 낡은 에너지는 결코 당신이 아니지만 당신을 현혹하여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그러니 이원성이라는 낡은 에너지를 정확히 파악하자. 그리하여 더 이상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말자.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오직 투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신성이 된다.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도 가야 한다. 지금은 신성의 시대이다. 신성이 밝혀져야만 빛의 존재가 된다. 그래야만 더 이상 이원성이라는 낡은 환영물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잇다. 낡은 에너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환상 속에 당신을 끌어 들이고 끌려가게 된다. 일단 이원성에 휘둘리면 삶이 고단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눈치채지 못하나고 일년을 하루 같이 휘둘린다.
앞에서 의식상승는 졸업에 대하여 언급했다. 질병, 빈곤과 가난, 고통, 사고, 낡은 에너지, 사물과 사람, 섭생, 수면, 건강 등등 이원성에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졸업해야 한다. 그리하여 당신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좀 고요하게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거다. 본래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다. 그래야 좀 숨을 돌릴 수 있다. 아직도 이세상은 참으로 살기 힘들다. 물론 행복하고 좋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원성의 낡은 게임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늘 행복하세요. ^^
빛과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