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완성의 통로로서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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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완성의 통로로서의 피라미드
세상 만물은 움직임 속에 있으며 그 중 가장 완전한 절정의 움직임은 우리 가슴속의 신 즉 "진아(眞我)"이다. 모든 것은 이 완전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고 사람들은 많은 지식과 경험들을 축적하여 이 과정을 더욱 촉진할 방법을 찾게 된다. 때로는 먼 길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짧은 시간 내에 현실의 자신을 제대로 보게 만들어 그 과정을 용이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경험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각자의 필요와 과보에 따라 주어지게 되므로 시간의 길고 짧음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겪는 각 개인이 충분히 깨어 있어 자신들이 마주치는 상황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의식의 물고이며 진정한 흐름이다.
피라밋은 움직임 그 자체이다. 결코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에너지이다.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있어 혼돈을 극복하고 질서를 회복하게 하는 에너지의 움직임이다. 물론 사람들도 움직이고 마음도 움직인다. 그러나 거기에는 규칙이 없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마음이 왜 그렇게 제멋대로 떠다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에너지도 움직이고 흐르고는 있으나 혼돈스러울 뿐 질서가 없는 탓이다. 따라서 기분도 제멋대로다. 화나다가 즐겁고 기쁘다가 우울하고 남의 탓을 하다가 자책한다. 이유를 찾고 알려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되는 대로 사는 사람도 있어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피라밋은 불규칙한 마음과 함께 움직이며 고유한 진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규칙성을 이루어 낸다. 피라밋을 쓰고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피라밋은 혼돈으로부터의 탈출로이다. 태초의 혼돈에서 말씀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방식이며 신의 자기표현의 시작과도 같다. 혼돈은 그릇된 것이 아니라 질서의 모체가 된다. 그러나 적당한 출구를 찾지 못하는 혼돈은 영원한 어둠에 갇힌 아이일 뿐 결코 성장하지 못한다. 아이는 어머니의 자궁을 통한 탄생을 거쳐야만 어른이 될 수 있다. 피라밋은 바로 질서의 탄생 경로이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혼돈 에너지를 질서로 인도하는 계단이다. 피라밋의 에너지는 신 그 자체가 아니다. 통로이다. 인간이 신을 향해 걸어가는데 이용되는 골목이다.
피라밋이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피라밋의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음식의 신선도는 물론이고 사람이나 동물의 건강상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어느 한순간 마술처럼 이루어지는 일일까. 그렇게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며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피라밋을 쓰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무난하게 서서히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자연이 움직이는 방식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며 자극적이지도 않다. 우주와 자연의 산물인 피라밋이 작용하는 방식도 이와 같다.
피라밋은 물질 자체보다 우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에너지장에 영향을 미친다. 보통의 사람들이 지닌 감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고진동의 파장이 피라밋으로부터 발생한다. 최근의 발달된 과학기술에 의하여 이것을 감지해 낼 수 있는 기계가 개발되기도 하였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피라밋의 에너지는 물체 주위의 에텔체나 아스트랄체에 영향을 미치며 진동은 그 특성상 점점 더 퍼져나가 원인계라고 하는 차원까지 뻗어 나간다. 마치 물결이 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에너지로써의 피라밋 진동은 비슷한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의 마음에 먼저 영향을 미친다. 물질의 변화보다 사람의 마음이 먼저 변하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에너지가 변해야 물질도 변한다. 피라밋 에너지의 영향으로 마음이 변한 사람은 육체도 변한다. 보다 건강해지고 스트레스라고 불리는 부조화된 에너지도 쉽게 이겨낼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작고하였지만 카루소라는 세계적인 성악가가 있었다. 그는 소리를 이용하여 손에 들고 있는 유리잔을 깨뜨릴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성량을 가지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리라는 것이 손이나 발이 있어 유리잔을 깨뜨렸다고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럼 무엇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인가. 더욱 간단한 예로는 폭발물이 터졌을 때 그리고 그 폭발물이 강력할수록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의 유리창을 산산조각 낸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는 방송을 통해서 보거나 또는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소리는 물체의 일정한 파장과 일치했을 때 그것을 파괴할 수도 있고 변화시킬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공명의 힘이며 에너지 파장이 일으킬 수 있는 일이다.
피라밋은 흐트러진 에너지를 정화시켜 일정한 진동수의 에너지로 변화시킨다. 인간의 마음이 규칙적이고도 고요한 에너지의 영향을 받으면 교란되었던 육체의 세포들도 제 모습을 되찾는다. 과도한 스트레스 즉 마음의 병이 만병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대 의학이 유전자의 변형을 통해 불치의 병들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마음을 바꾸는 것이 돈도 덜 들고 효과도 빠르다. 왜냐하면 병이 생기는 사람들의 생활 태도나 평소의 사고방식을 살펴보면 대부분 성급한 마음과 태도, 외부적인 사회 환경에서 오는 긴장감을 이겨 내지 못해 정신과 육체가 약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병이 나서 병원에 가면 신경성 질환이라며 몸에는 이상이 없다는 말과 함께 스트레스를 너무 받지 않도록 하라는 충고가 전부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말이다. 몸에는 이상이 없다, 신경성이다, 이 말은 아직 구체적인 질병으로 형상화되기 이전이라는 얘기이다. 통증이 있더라도 이것은 다른 방법으로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화학 약품으로 몸을 오염시키지 않고도 고쳐질 수 있는 시기라는 뜻이다. 이것을 물질 육체의 병으로 오인하고 약으로 고치려고 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짓을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오는 병이다. 인간의 마음은 태산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제대로 활용만 된다면 말이다. 제 몸의 병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피라밋은 사람의 마음에 질서를 회복시키고 올바른 시각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에너지를 지원한다.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가능하다. 자연이 세상만물을 차별하지 않듯이 피라밋도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를 부여한다. 자연이 정치나 경제, 종교에 차별을 두지 않듯이 피라밋도 누구든 상관없이 변하고자 하는 사람, 질서를 찾고자 하는 사람,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에너지를 실어 준다. 문제는 이것을 얼마나 받아들이냐 하는 것이다. 수용의 정도와 변화에의 열망에 따라 그 에너지의 표현은 상당한 수준차이를 보인다. 마음이 얼마나 열려 있는가에 따라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간에 서 있던 예수는 공기 중에서 빵을 만들어 냈지만 나머지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다. 자연의 법칙은 동일하게 작용하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마음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피라밋도 마찬가지이다. 피라밋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모든 것이 달려 있으며 그 사람이 바로 모든 것의 주인이다. 그리고 올바른 주인이 되었을 때 하늘은, 천국은, 신의 길은 바로 그 앞에 놓여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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