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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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언어는 하느님입니다.
이 언어 속에는 이미 하느님이 거하십니다.
두 번째로 가장 강력한 언어는 신성입니다.
하느님과 신성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이 두가지 언어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근원과 본질이며 천리가 이 안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한 나라와 한 인간은 동일합니다.
하나의 나라에는 중앙수도가 있고 수도 안에는 왕이 거하는 궁궐이 있습니다.
또 궁궐을 수비하는 부대와 병사들이 있습니다.
궁안에는 임금이 거하며 나라에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임금이 조회를 하면 각 부처의 장관이 모여서 나라의 정사를 논의 합니다.
한나라의 구조는 한 사람의 내부 구조와 일치합니다.
왕이 정신을 안 차리면 신하들이 정신을 못차리게 되고 나라의 정사가 어지러워지게 될 것이고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게 되며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나라가 혼란하게 됩니다.
이것을 계속 방치하면 결국에는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나라의 국정을 잘 운영하려면 임금과 신하가 정치를 잘 해야 합니다.
만약, 임금이 방탕하여 정사를 잘 돌보지 않게 되면
관리들이 부패하고 세상에 도적과 강도가 들끓게 되고
부정부패한 세상이 되어 결국에는 그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임금이 정사를 잘 돌보면 나라가 크게 번성하지만
만약, 임금이 방탕함녀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일까요?
이와 같이 사람도 국가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인간의 몸에도 왕이 있으며 신하가 있고 백성이 있고 군대와 병사가 있습니다.
궁은 임금이 거하는 처소라면
마음은 신성이 거하는 성전과 같습니다.
그 사람의 정신은 그 나라의 정신과 동일합니다.
그 나라의 의식 수준이 있습니다.
사람도 그 사람의 의식수준이 있습니다.
의식이란 그 사람의 존재상태를 말합니다.
의식이 높으면 존재상태가 높은 것입니다.
국가의 의식수준이 그 나라의 존재상태입니다.
국가의 존재상태가 좋다는 것은
임금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의 의식수준이 높은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의식이 깨어 있으면 강성한 나라와 같으며 의식이 죽어 있으면 혼란한 나라와 같습니다.
사람의 의식이 깨어 있으면 높은 수준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의식이란 신성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이 깊은 잠을 자면 평생을 에고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에고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에고의 삶이 지옥의 삶입니다.
신성의 길이 천국의 삶입니다.
임금이 방탕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과 같이 에고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에고의 삶이란 탐욕의 삶이요 전쟁의 삶이며 딜래마의 삶입니다.
에고의 삶은 허망한 삶입니다.
임금이 어리섞고 관리들이 부정부패를 일삼으면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 부패하면 전쟁이 일어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게 됩니다.
그로서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나와 의식이 깨어나지 못하면 평생에 고난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질투하며 늘 싸움을 하고 남의 탓을 하고 늘 고통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이 혼란한 나라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의식이 깊은 잠을 자면 어쩔 수 없이 허망한 삶을 위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는 꿈속에서 꿈을 꾸는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어떻게 살든지 자유입니다.
그것은 각자의 선택입니다.
자유의지니까요.....
사람이 세상을 왜 살까요?
이 심오한 질문에 대해서 깊이 숙고 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의식이 깨어나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의식이 깨어난다는 것!
사람의 의식이 깨어 나지 못한다는 것은 마치 번데기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나비의 같은 삶입니다.
사람의 의식이 상승되어 빛의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의식이 깨어나지 못하면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부에 신성이 거합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은 신성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그 신성이 하느님의 분령입니다.
이 거룩한 신성은 영원히 죽지않습니다.
의식이 각성하면 빛의 존재가 됩니다.
신성은 하느님으로 부터 왔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의식상승입니다.
여러분의 신성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신성과 하느님을 자각한 존재가 바로 빛의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내부에 거하시는 신성을 인식하고 못하고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그것은 각자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신성으로 살 것인지 에고로서 살 것인지를 말입니다.
그것이 운명입니다.
에고는 신성이 아닙니다.
에고는 물질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에고적이라는 것은 그 만큼 물질적이라는 뜻입니다.
현대식으로는 오직 돈밖에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죠.
에고는 돈을 중심으로 살고
성인은 신성을 중심으로 삽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별차이가 아닌 듯해도
이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신성을 자각하지 못하면
결국은 에고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에고의 삶이란 환영의 삶입니다.
환영의 삶이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며 실재가 아닌 삶을 사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 것과 같습니다.
에고의 삶이란 평생 허망한 것을 쫒아다니다
결국에는 물거품과 같이 사라지는 삶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자각만하면 바로 신성으로서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에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명료한 원리를 거의 모든 대중들이 알지 못하므로
아직도 하느님을 구만리 밖에서 찾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바로 옆에 상대가 있는 것처럼 서로 대화를 바로 나눌 수 있듯이
나의 내면의 신성이 깨어나면 하느님과 바로 통하게 됩니다.
신성은 하느님과 동질의 파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성은 고감도 수신기와 같습니다.
주파수를 맞추면 곧바로 하느님과 통합니다.
이런 것을 심령이 통한다 영통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구만리 우주 밖에 계심이 아니요.
주파수만 맞추면 항상 바로 옆에 계십니다.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나의 존재상태가신성으로 돌아가면 하느님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나의 마음을 어린아이처럼 천진무구한 본질로 환원해야 합니다.
마음을 유리알과 같이 깨끗하게 닦아 나가면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는 신성으로 돌아 갑니다.
나의 마음이 본질로 환원하면 하느님과 통하게 됩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만나면 매우 기쁜 것이지만
옛낡은 경전에는 사람이 하느님을 보면 죽는다고 서술했습니다.
천륜을 나누는 이 인위적인 언어는 무지한 인간의 언어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보아야 하고 하느님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강하게 느껴야 합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가까울 때 부모와 자녀의 상봉이 이루어집니다.
이로서 지상에 천국이 열리게 됩니다.
지구에서의 삶이란 선택의 문제입니다.
우주는 사람이 어떻게 살든 각자의 자유이며
어떤 마음이나 생각을 해도 어떤 행동과 말을 해도 통제하지 않습니다.
우주는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살도록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그렇게 만들뿐 우주는 사람에게 벌을 주거나 통제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 결관만이 남게 됩니다.
그것은 누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다 스스로 그렇게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운수를 삭감하고 스스로 자신의 운수를 좋게 합니다.
죽음도 삶도 다 자신이 그렇게 만듭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천박하게 합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각자 스스로가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자각입니다.
타각이 아니고 자각입니다.
하늘은 인간의 선택에 따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 둡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각자 스스로 선택합니다.
인간세상의 추수는 각자가 스스로 합니다.
누가 그렇게 만든바가 하나도 없으며 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실로 여러분의 본질은 신성입니다.
하느님은 근원이시고 신성은 본질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동질입니다.
부디 하느님을 구만리 밖에서 구할 바가 아니요
내 안에 하느님이 거하심을 알면 됩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하느님이 거하는 성전이며
사람의 몸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자각할 때 여러분의 존재 상태는 이미 신성으로 존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
빛과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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