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치유함으로써 지구를 치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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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치유함으로써 지구를 치유하자"
[화제의 신간] 미셀 오당의 <농부와산과의사>
우리나라에서 조산원은 거의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고도의 의료장비가 갖춰진 환경에서 아기를 낳는다. 제왕절개 수술의 비율은 전체의 40%나 되며, 임신한 여성에게 초음파 검사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들 중 하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출산 전 관리(antenatal care)가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다. 이 때문에 부모들은 끊임없이 아이의 성별, 장애 여부, 산모의 건강에 대해서 노심초사하다 아이를 맞는다. 이런 현실이 과연 '문명화된 징표'일까?
20년 넘게 프랑스 파리 근교 피티비에 병원의 외과 및 산과 의사로 일해 온 미셀 오당은 <농부와 산과의사>(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에서 단호하게 반박한다. 이는 문명화된 징표가 아니라 '새로운 재앙'을 부르는 것일 뿐이라고. 그는 이미 전 세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가정의 분위기와 흡사한 분만실과 수중분만을 도입한 것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산과의사다. 그는 1990년 이후에는 '초기 건강연구 센터'를 창립해 사람의 삶의 초기(임신과 잉태의 순간에서 첫 돌까지) 동안에 일어난 일이 그 사람의 나중 행동과 건강 또 사회 문명에 미치는 관련성을 연구해왔다. 이 책은 바로 그 연구 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비정상적인 제왕절개 수술 비율 40%, 네덜란드ㆍ스웨덴ㆍ일본 등보다 4배 이상 높아
먼저 편견부터 깰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른바 문명화된 다른 나라들도 우리나라와 아기를 낳는 환경이 비슷할까?
네덜란드는 30%가 가정 출산이고, 수술에 의한 제왕절개 수술 비율은 10% 안팎이다. 이러다보니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투여되는 에피듀랄 마취제는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5% 미만으로 투여될 뿐이다. 이것은 네덜란드만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다. 스웨덴 역시 제왕절개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이웃 일본의 경우도 제왕절개 비율은 10% 안팎이며, 에피듀랄 마취제 사용 비율은 네덜란드보다도 더 낮다.
미셀 오당은 이런 통계의 이면에 있는 공통점을 지적한다. 이렇게 출산할 때 과학기술의 개입이 적은 나라들일수록 산과의사의 수는 적은 반면에,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을 지켜보고 필요에 따라 돕는 조산원의 수가 많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서 임신한 여성은 대개 (산과의사가 아닌) 독립적인 조산원을 만나고, 스웨덴에는 9백만명 인구에 조산원 숫자가 무려 6천명이나 된다. 일본의 경우도 조산원이 많아 출산에 있어서 거대한 산과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일본의 큰 산과병원에서 1년 평균 출산 수는 5백명 정도로 우리나라의 수천명과는 비교가 안 된다.
미셀 오당은 여기서 인상적인 통계들을 펼쳐 보인다. 출산할 때 과학기술의 개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일본의 주산기 사망률(임신 6개월 이후부터 출생 1주 이내에 아기가 사망하는 수)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유럽의 여러 나라들 중 네덜란드에서 왜 낙태, 투옥, 10대의 임신 비율이 가장 낮으며, 마리화나와 해시시를 자유롭게 파는데도 약물 중독 비율이 비교적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하는 능력'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미셀 오당, <농부와 산과의사>(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프레시안
미셀 오당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사람의 삶의 초기가 그의 나중 행동과 건강 또 사회 문명에 큰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것은 통계적 근거뿐만 아니라 문화인류학적 근거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는다. 생존을 위해서 사람들 사이에 친밀감과 협력이 필수적이었던 농경 이전 시대에는 출산이 임박한 여성은 적당한 장소를 찾아 깨끗이 치우고 혼자서 아기를 낳았다. 미셀 오당은 농경 이전 시대의 모습을 비교적 그대로 복원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쿵족에게서 그와 같은 모습을 발견한다. 이런 전통이 깨진 것은 사람들 사이의 경쟁이 격화돼 사랑하는 능력보다는 공격 본능이 강조된 이후부터이다. 예를 들어 초유가 오염됐다며 아이와 어머니의 첫 접촉을 방해했던 많은 전통들이 그 흔적들이다.
미셀 오당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사람의 삶의 초기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 안겨, 서로 눈을 맞추고(eye-to-eye contact), 어머니의 젖을 문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는 사랑하는 능력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살밖에 안 된 두 아이 중 하나는 다리가 잘린 개미의 길을 내주고, 다른 아이는 그 개미를 발로 짓밟는 차이는 이렇게 밖에 설명될 수밖에 없다.
산업화된 출산, 의학과 과학기술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루어지는 출산은 바로 우리의 사랑하는 능력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출산을 치유함으로써 지구를 치유하자"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해서 미셀 오당이 근대 이전의 원초적인 '자연분만'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왕절개 수술을 하지 말자는 어리석은 주장과도 거리가 멀다.
미셀 오당이 강조하는 것은 아이가 태어나는 지극히 중요한 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한 의학과 과학기술 때문에 산업화된 출산을 다시 문화적으로 통제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런 치유를 위해서 산업화된 출산의 다음과 같은 관행들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여성이 아이를 낳는 과정이 지극히 사적인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 막 진통이 시작한 여성에게 입원 수속을 밟기 위해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포함한 온갖 것들을 묻는 풍경을 생각해보라. 아이의 상태를 감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록되는 전자 감시 체계와 여성을 둘러싼 의료인과 카메라 속에서 과연 여성이 아이를 낳는 데만 몰입하는 게 가능할까? 그 과정에서 여성의 몸에 투여되는 각종 호르몬들 역시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남편이 입회하는 최근의 출산 풍경 역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남편이 출산 때 입회하는 것은 여성을 심적으로 안정시키는가? 수많은 출산을 지켜본 미셀 오당은 남편이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울 때 아이를 낳는 많은 여성의 예를 알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의사들이야말로 위험할 만큼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산과의사의 수는 3만6천명 정도이고, 1년의 출산 건수는 3백60만건 정도이다. 평균적으로 의사 한 사람이 1년에 1백건의 출산을 맡는다는 뜻이다. 전형적인 미국의 산과의사는 1년에 한 번 정도 쌍둥이 출산을 경험하고, 태반이 방해가 돼 아기가 나올 수 없는 경우(전치태반)를 한 번 보려면 10년의 의료 경험을 해야 한다. 태아의 위치가 잘못돼 제왕절개 수술을 할 경우에는 교과서를 찾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아이를 낳는 것이 무슨 일인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남성들이다.
미셀 오당은 산업화된 출산이 보편화된 나라일수록 제왕절개 비율이 높고, 온갖 의학적 개입이 출산에 필요하게 된 까닭이 바로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들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개입이 없을 때 오히려 자연스럽고 앞에서 말한 '사랑하는 능력'을 고양하는 출산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우병과 구제역 파동이 산업화된 농업 때문에 발생한 재앙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어쩌면 앞으로 산업화된 출산이 우리에게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할지 모른다. 아니 이미 갈수록 사람과 생명을 사랑하는 능력을 잃고 있는 우리는 그런 재앙의 길에 들어섰을 수도 있다. 미셀 오당은 마지막으로 외친다. "출산을 치유함으로써 지구를 치유하자."
강양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