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10 - 3가지 깨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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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10) 3가지 깨우침
이제 영적 평화조정자의 12가지 특징들을 검토했으므로, 우리는 밀사의 바퀴의 진짜 기능이 무언지 알아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은 단지 기하학적 상징이며, 심령적 영적 수준에서 정보를 알려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것이 내면의 여행에 대한 외적인 상징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여러분의 개인적 변형의 여행이죠. 지금 우리는 밀사의 바퀴의 진정한 기능에 대해 우리의 가슴과 생각을 열 텐데, 이 바퀴는 여러분의 인간적 경험의 의도를 '신성한 문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에너지 출입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신성한 문맥을 깨닫고 체험할 때, 이 행성에서의 여러분의 역할을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밀사의 바퀴를 응시할 때조차도 내면에서 일어나는 어떤 강력하거나 미묘한 움직임들을 이미 알아챘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강좌를 진행해 나가면서 아주 길게 이것에 관해 논의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느끼고 있는 것이 정말로 진짜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기하학적 도형들은 단지 그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물리적이고 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효험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대부분은 이미 이것을 알았고 여러분의 이해를 돕는 자기 경험들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이용한 특정 형태는 고대 이집트의 신비적인 교단에 의해서 수천 년 동안 사용되어 왔으며, 그 후 어떤 비교(秘敎)적인 기독교 전통에 의해 채택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세인트 존(St. John)'이라고 부르고 저는 친구라고 부르는 분에 의해 창립된 "사랑스러운 원리들의 공동체"가 주로 그런 전통에 속했습니다. 세인트 존은 제가 제공했던 진실과 가르침들을 구체화 할 수 있었고, 바퀴를 통해서 그것들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 바퀴는 강력한 에너지를 투사하기 위해 초기 공동체의 확장모임에서 사용되거나, 혹은 인류가 그 영적인 진화과정에 계속해서 전진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진 공동 기도에서 사용되어 왔습니다. 빛의 밀사들은 이 강력한 명상을 행하고 그 바퀴를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장 최근의 그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초기 그룹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이 바퀴가 여러분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분이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어떤 형식으로 확장하기로 선택하느냐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바퀴가 야기할 변형은 실로 중요하며, 그래서 이 강좌의 많은 부분이 그 바퀴에 초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음 3주 동안 우리는 이 변형의 열매에 주목할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3가지 깨우침"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것은 [ 1. 빛나는 지성 2. 각성된 가슴 3. 깨달은 영혼 ] 입니다.
지난 몇 번의 레슨동안 검토한 12가지 특성들은 첫 번째 깨우침을 구성하며, 가운데 삼각형에서는 두 번째 깨우침이 발견되고, 바퀴의 가운데 있는 원은 세 번째 깨우침을 나타냅니다.
궁극적으로, 다음 문구는 이 모든 것을 통해 여러분이 배우게 된 것입니다:
"신의 사랑의 특징은, 여러분의 신에 대한 사랑의 특징과 같다."
이것이 우리가 인정하고 성취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의 첫 번째 경향은 이 진술을 지적으로 이해하려고 든다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여러분은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소 빨리 깨달을 것입니다. 지성으로는 그것(역주: 신의 사랑과 여러분의 신에 대한 사랑)이 어떤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들을 명백한 진실로 변환할 수 있는, 지성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경험이 있습니다. 지성은 텅 비고 고요할 것이지만, 여러분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사고의 일렁이는 파도를 견뎌낼 더 깊은 대양을 위해서, 잠시 동안 지성은 옆으로 젖혀졌습니다. 여러분이 일단 이 장소에 다가가기만 하면, 다른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고를 억누르는 '신의 평화'는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고, 여러분은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제 옆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의 사랑의 성질을 고찰함으로써 시작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이 신의 사랑을 이해해야 하며, 그리고 나서 여러분의 신에 대한 사랑과 비교해야 합니다. 여기에 미스테리가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을 여러분 가슴속에서 체험하세요. 여러분의 진보가 빨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지성으로 시작하지만, 늘 그렇듯이 모든 진짜 배움이 일어나는 더 깊은 맥동을 추구할 것입니다.
이 둘 중에 하나는 신으로부터 뻗어 나오는데, 다른 하나는 되돌아옵니다. 지성은 이것들이 두 개의 행동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정말로 하나라는 점을 깨달을 만큼 이미 충분히 멀리 왔습니다. 신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것은 신과 함께 머무릅니다. 여러분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것도 여러분과 함께 머무릅니다. 만일 이 방정식에서 '두 개의 여러분'이 정말로 있다면, 어떤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할 것입니다. 신은 여러분을 향해 움직이지 않았고, 여러분은 신을 향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정 자체 혹은 "두개의 여러분"이라는 개념 중 하나는 거짓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진실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신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것은 완벽하게 신이 받습니다. 신은 그 자신에게 줄 뿐, 여러분은 그 수여(Giving)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 수여(Giving)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누구인가에 관한 것이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이 누구인지 부인하려고만 해왔습니다. 고맙게도, 여러분은 이러한 시도에서 가엽게도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그 후 인식된 '분열'을 바꾸어왔던 것처럼 보입니다만,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어떤 것과 실제로 일어나는 것 사이에는 다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실패가 여러분의 구세주입니다. 실패는 수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신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고, 여러분이 '신의 선물'이면서 동시에 '신의 수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더욱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이 이미 아시다시피, 여러분은 '신과 함께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완벽한 원을 그립니다. 우리가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 온 거죠. 저는 처음에 이 점을 말씀드릴 수 있었으며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했을 것입니다만, 이 꼬불꼬불한 길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아직은 인식할 수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개념을 명백한 진실로 전환할 수 있으면서 지성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체험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러분의 '무조건적인 항복'입니다! 지금 그것을 수용하세요.
Br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