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必要)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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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必要)의 의미
필요(need) : 중요한 사항, 꼭 중요한 사항
必 반드시 필
①반드시, 틀림없이, 꼭 ②오로지 ③가벼이, 소홀히(疏忽-) ④기필하다(期必--), 이루어 내다 ⑤오로지, 전일하다(專一--)
要 요긴할 요
①요긴하다(要緊--), 중요하다(重要--) ②요약하다(要約--) ③모으다, 합치다(合--) ④원하다(願--), 바라다, 요구하다(要求--) ⑤맞히다, 적중하다(的中--) ⑥바루다 ⑦얻다, 취득하다(取得--) ⑧이루다,...
필요란 반드시 되어져야 할 것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의미 한다.
모든 사물은 필요에 의해서 돌아간다.
모든 사물은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절대적 필요성에 의해서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필요라는 말은 의식상승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왜 필요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일까?
특히나
질병이나 사고는 부주의에 의해서 일어나는 경우보다
필요에 의해서 많이 발생하는데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왜 질병이 있을까?
이제는 그 의미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질병에 걸린 사람은 질병이 일어나는 의미를 알아야 하고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경우는 사고가 왜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질병이나 사고는 나쁘다고 생각하는게 통념이지만
그 의미를 안다면 질병과 사고는 나쁜 차원을 넘어
어떤 메시지를 전해 주는 것이라는걸 알 수 있다.
질병 사고 가난 무지 이런 고통스러운 것 속에는 각각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의미를 알게 하는데 있어서
질병 사고 가난 무지와 같은 고통이 반복된다.
언제까지 그러한가?
그러한 이유를 알아 차릴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단지 병은 나으면 좋은 것이고 사고는 없으면 좋은 것이며
가난과 무지는 벗어나면 좋은 것으로 알지만
이것에 담겨 있는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마치 진귀한 보석을 놓치는 것과 같다.
에고는 질병과 사고 가난과 무지와 더불어 존재한다.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서 고통 받으며 그렇게 에고는 투쟁과 대립 속에서
항상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애씀에 머물고 있다.
에고는 고군분투의 삶 자체를 그 목적으로 하는지도 모른다.
영은 인간의 주인이다.
영은 주인이지만 주인인척 하지 않는다.
마치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삶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보통의 인간은 의식이 깨어 나지 못하고 에고에 머물수 밖에 없다.
에고의 삶속에서는 욕심과 집착과 애씀에 있다.
인간은 끊임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면 정도를 넘어 서게 된다.
멈출줄 모르는 인간의 에고는 파멸의 길로 걸어 간다.
이걸 가만 놔두면 결과적으로 큰 재앙을 일으키게 된다.
본질과 근원으로 부터 벗어난 인류는 궤도를 이탈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파멸한다.
자신과 외부의 세상을 파멸로 몰고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게 될 때
이 때 영은 본질을 회복하도록 개입이 일어나게 된다.
영이 사용하는 도구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인 질병과 사고와 가난과 무지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의식이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면 영은 분리되고 에고가 불타오르게 되면 결국 파멸이다.
에고에게는 삶과 죽음이 모든 것이다.
에고는 삶에서 시작되고 죽음에서 끝난다.
그러나 영에게 삶과 죽음은 한번 옷을 입고 벗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영은 선택을 한다.
영은 능히 기달릴 줄 알지만
인간이 에고의 삶을 위주로 살아갈 때
스스로의 공력을 쇠하게 하는 행위를 멈추기 위해서 영이 개입한다.
질병을 유발하든지 사고를 일으키던지 해서 삶을 마감하게 한다.
공부하지 않는 인간은 영을 조금도 잘 모르지만 영은 인간을 매우매우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궤도이탈이라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위험한 지구에 들어오는 것을 누가 선택하였는가?
그것은 각자의 영이 스스로 선택을 한다.
하늘은 영에게 기회를 준다.
영이 지구에 들어오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여기 지구는 영성을 높이는 학교와 같다.
영성을 높여 상승하기 위해서 지구에 들어 오는 것이다.
그럼 영성은 어찌 하면 높아지는가?
핵심은 인의이다.
인이란 곧 타인에게 베푸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의란 스스로 올바른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나는 지금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영의 입장에서는 상승하러 왔는데
에고가 주인인척 한다.
영과 분리되어 의식이 오로지 에고의 삶을 살아 갈 때
공력이 줄어들게 되는데 이 때 영은 스스로 질병을 유발한다.
이곳 지구에서의 삶은 너무나 위대한 것이지만
많은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공력을 소모하면서 파멸의 길을 걸어간 예는 너무도 많다.
에고가 주인이 되면 결과적으로 파멸한다.
공력을 소진하는 에고를 멈추게 하기 위해
영은 질병과 사고를 쓴다.
질병과 사고는 에고를 멈추게 하는 도구다.
겉모습만 보면 마치 질병이 잘못되고 사고는 재수가 없어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의식이 영으로부터 분리된 인류는 질병과 사고를 통해서 깨닫는다.
무지도 좋은 도구다.
무지를 통해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영의 마음은 사람을 하대하거나 업신여기지 않는다.
배운자의 교만과 방자함이 하늘을 찌를 때
무지한 자는 밑바닥을 기어가다 보면 오히려 겸손과 감사에 머물수 있다.
대다수 인간은 밑바닥에 떨어져봐야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가난도 좋다.
뼈아프게 가난한 자는 스스로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잘하면 천리를 깨달을 수도 있다.
인간은 가난해도 깨달지 못하고 무지해도 못 깨닫는다.
스스로 보석을 다 내다 버리는 격이다.
분초각으로 보석을 얻을 수 있다.
세상에 선행이 널려 있으나 힘써 행하기 어렵다.
다수가 그러하다.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하지만
대다수의 인류가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원망하고 탓하면서
공력을 낭비하고
매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나와 남을 비교한다.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을 찾아서 몸부림 친다.
그러면서 열등감 자격지심 자기 비하 자기 경멸과 같은 감정으로 방황한다.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 없다는 생각
자괴감으로 스스로를 고통속으로 몰아 넣는다.
비교는 인류의 대표적인 질병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소중함을 모르는 인류는
끊임없이 낭비와 소모를 하면서 자꾸만 오염을 일으키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스스로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
결국 자신과 마주한 사람을 하대하고 무시한다.
그러면서 더 좋은 것 더 낳은 것을 찾아서 방황한다.
영을 자각하기 못하는 한 인류에게서 질병과 사고 가난과 무지는 계속 된다.
사람이 스스로 깨달음이 없으면 질병과 사고 가난과 무지가 반복된다.
에고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데
영은 고군 분투의 삶을 붕괴시켜 스스로 생각할 기회와 시간을 준다.
그럼에도 깨닫지 못하고
에고의 불길에 휩싸여 그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면
결국 스스로의 삶을 파산에 이르게 한다.
에고의 끝은 파멸이다.
영은 번영이다.
영성은 사람의 본질이며 근원은 하느님이다.
이것을 자각해야 한다.
이것을 모르게 되면 에고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것은 고통의 바다다.
에고는 끊임없이 실패를 반복한다.
에고는 유한하다.
물질이 발하는 마음이 에고의 마음이다.
에고는 영을 부정한다.
물질이 있으면 거기 에고가 있다.
에고는 유한하기에 죽으면 끝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죽으면 끝이야
죽으면 끝나는 거야
영에게는 죽음이 없다.
영은 육신의 옷을 벗는 것을 죽음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
영은 각성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한 생애동안 자각이 없으면 또 다음 생으로 넘어 간다.
다음생에서도 못깨우치면 또 다음 생으로 그리고 또 다음 생으로 환생을 반복한다.
깨달을 때까지 반복한다.
그렇게 인류는 수억만년동안 환생을 반복해 왔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이유는 진화 상승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상승하기 위해서 세상을 산다.
인간으로서 영을 각성하면 그것이 영통이다.
인간이 영을 통하면 성인이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류는 영에 대해서는 관심 없고 오직 돈과 물질을 추구한다.
욕만의 노예 탐욕 방탕 중독 마약 도박 사기 등등 낡은 의식에 머물고 있다.
이로서 고통을 추수하게 된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꿈은 깨고 나면 모두 사라진다.
각성하지 않는 삶이란 고해의 바다이다.
남은 곧 나와 같다.
의식상승이 늘 남이 곧 나다. 라고 했으나
어찌 남이 나일 수 있느냐?
이 말의 뜻을 잘 알아 듣지 못한다.
남이 나는 아니다.
그러나 내가 있어서 남을 보게 되니 나와 같다.
내가 없으면 남은 존재할 수조차 없다.
내가 있어서 내가 보는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나온 시간 동안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 생각과 마음에 대해서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남들이 나에게 서운하게 했던 일들, 상대의 잘못된 일이나 허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대개 대중이란 것은
자신이 잘 못한 것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다 자신이 잘한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오래 동안 기억한다.
남이 잘 못한 것은 각인이 되어 잊지 못한다.
남이 잘한 것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원망 미움 보복으로 전쟁이 일어난다.
밤낮없이 욕을 하고 음해를 하고 비방과 모함을 한다.
이 세상이 아비규환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대인관계다.
의식이 각성된 존재를 군자라 한다.
의식을 각성한 존재는
남의 잘한 것을 또렸이 기억하고
남의 잘 못한 것을 모두 기억에서 지워 버린다.
나의 잘한 것을 잊어 버리고 나의 잘 못한 것을 또렸이 기억하여
더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음을 텅비워 나간다.
수행이란 비워나가는 공부이고
지식이란 채워나가는 공부이다.
사람의 주인이 영이다.
사람이 길을 잘못가게 국 영이 개입을 한다.
사람이 길을 잘가면 영이 편안하다.
길이 어긋나면 마음의 고통이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룬다.
사람에게 질병이나 사고가 일어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업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해도 맞다.
사실은 영으로부터 제재를 받는다고 하면 더 정확하다.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영의 개입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많다.
영은 주인이고 에고는 종이다.
종은 주인이 아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한다.
에고는 종이지 주인이 아니다.
종이 주인 노릇하면 난리가 난다.
주인은 영이다.
사람의 의식이 각성되지 않으면
에고가 주인행세를 한다.
그러나 에고는 주인이 아니다.
에고가 주인 노릇을 잘 할리가 없다.
에고는 결국 파멸한다.
에고는 주인이 될 수 없다.
에고가 광란할 때 질병이나 사고가 일어난다.
에고는 주인이 될 수 없다.
에고는 주인이 아니다.
에고는 영원하지 않다.
에고는 실패를 반복한다.
에고가 주인행세를 하면 결국 파멸한다.
의식이 강성되면 에고는 사라지고 영이 발현한다.
영은 주인이다.
영은 영원하다.
영은 실패하지 않는다.
사람의 본마음이 양심이고 양심은 영의 마음이다.
우리가 한 장의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그림을 그리다가 혹여 잘못 그리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그림을 지우거나 태우거나 파쇠해 버린다.
그리고 나서 다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삶이란
늘 새로운 그리는 이치와 같다.
농부는 농사를 지으면서
그 농사가 잘못된 경우에는 모두 갈아 엎어 버린다.
그러나 나서 다음해의 농사를 기약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를 잃으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영의 입장에서 완전히 길이 어긋나서 통제가 안될만큼 심하게 벗어나게 되면
영은 생을 빠르게 정리하고 다음 생을 기약한다.
물론 잘 할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려 주고
다시 기회를 주고 모든 것을 다해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악행지수가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면 그때는 판을 마감한다.
인간이 통제 불능하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이다.
스스로 통제가 안되면
천지의 제재 조상의 제재 신명의 제재를 받는다.
이러한 제재를 받기 전에 영이 스스로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사람이 영으로부터 심하게 벗어나면 에고가 주인행세를 하게 된다.
그러면 에고는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게 된다.
용광로처럼 펄펄 에고가 끓어 오르게 된다.
에고는 결국 모든 것을 불태울 것이다.
지금의 때를 알아야 한다.
지금의 때는 우주가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한 때가 되었다.
지금은 인간완성의 시대다.
지금 시대에 태어난 인류는 완성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보면 된다.
과거처럼 습관적으로 다음생 또 다음생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번 생에서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생이 가장 중요하다.
우주가 생겨나서 이제 완성의 때가 되었다.
우주를 만든 목적이 바로 지금이다.
영의 입장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환생을 반복했으나
이제는 환생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시대는 의식을 각성하여 상승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이 바로 우주가 결실하는 때다.
태고적부터 영이 환생을 반복해서 지금에 도달하였다.
지금은 인간이 완성되는 때다.
영은 안다.
한 생을 허비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영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삶에 대하여 허망하다 했다.
인간의 삶에 대하여 허망하고 또 허망하다고 하였다.
왜 그러한가?
삶을 허비하고 낭비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 어찌 허망하지 않겠는가? 하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이지만
그릇된 일을 해서 망하게 되면 그것은 정말 매우 허망한 일이다.
의식이 에고에 이르러 낭비와 허비가 반복되면서
스스로 자기 궤도를 이탈하게 되면
영의 입장에서는 삶을 마감시키려 할 것이다.
그것이 질병과 사고다.
사람이 길이 어긋나면 강력하게 경고를 한다.
그것이 질병과 사고이다.
사람이 길이 어긋나서 질병과 사고로 시달리다가 죽게 되면 그것보다 더 허망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사람은 자기 길을 잘가야 한다.
지금은 정말 사람이 길을 잘가야 한다.
조심 조심 또 조심해서 나비가 되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거의 다 되어 간다.
영은 인간을 성공하게 하고 본질로 환원하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지만 모든 일을 일일이 다 개입하지는 않는다.
사람으로 태어 났으면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자기가 할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
내 인생을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주인임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 길을 잘가야 한다.
삶이 곧 드라마와 같다.
자신이 맡은 배역을 스스로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인류는 각자 역할이 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해야 한다.
그런데 드라마의 배역을 잘 하는 것보다 열배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적 각성이다.
즉 나의 의식을 높이는 일이 더 중요하다.
사람이 영적 각성이 일어나면 그때부터는 더는 드라마를 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인류는 보석과 같다.
의식이 높으면 영성이 높고
의식이 낮으면 영성이 낮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나는 곧 영이다.
영은 태고적 부터 있었다.
영은 영원한 존재다.
영은 영원지 죽지 않는다.
이제 인류는 본질로 환원하여 근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바로 인간이 완성되는 때다.
자기가 누구인줄 모르면 의식이 에고에 갇혀 에고로 살아간다.
에고의 세상은 고해의 세상이다.
대다수 인류는 부모를 잃은 고아와 같다.
그래서 자기 부모를 알지 못한다.
영은 사람의 본질이고 근원은 영이 나온 곳이다.
이 지구에서의 삶 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지금 지구의 물질 세상이 크게 번성하고 있다.
물질의 번영은 꽃이다.
머잖아 열매가 열린다.
사실 물질의 번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식의 각성이다.
앞으로 모든 것이 종결될 것이다.
인류는 본질로 환원하여 근원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의식이 각성되지 않으면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과 같다.
삶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면 환영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허망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것은 보석을 모으는 것과 같다.
당신은 지금 얼마나 많은 보석을 모았는가?
사람은 필요하면 뭐든지 한다.
필요한 것은 강력하게 끌어 당길 것이고
불필요한 것은 버리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끌어 당기고 있는가?
여러분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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