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농법 - 벼농사 이야기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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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우렁이가 노니는 논
지금 우리 농장의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논에서는 한여름의 열기를 한껏 머금은 벼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첫눈에 보기에 그렇게 잘 자라지는 못했지만 논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지 다른 논과는 차이가 나는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벼 포기 여기저기에 마치 꽃이 핀 것처럼 분홍빛 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오는 이들 마다 신기해서 물어보곤 한다. 그건 바로 우렁이 알이다. 물 속에서는 크게 자란 우렁이들과 방금 알에서 태어난 새끼 우렁이들이 정답게 노니는 모습도 보이고 올챙이와 개구리들도 보인다. 그리고 이슬이 내린 날 아침에 나와 보면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하얀 거미줄들이 곳곳에 쳐져 있는 모습이 참 정겹게 느껴진다. 논 아래 위 모두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우굴거리고 있다.
작년까지는 농장에 논을 마련하지 못해 다른 이의 땅을 빌려 벼농사를 짓기도 하고 건강한 쌀을 먹기 위해 심지어는 밭에다 벼를 심어 쌀을 생산하기도 했다. 밭에다 모를 심어놓고 키워보니 물을 가둘 수 있는 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 여름 돈과 시간을 들여 굴삭기를 불러다 농장의 일부(약 600평 정도)를 밭의 높낮이를 조정하여 논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물을 가둘 수 있도록 논두렁도 만들고 돌도 골라내고 거름을 깔기까지 우리 농장을 방문했던 많은 손길들의 도움을 얻기도 했다.
처음 만든 땅이라 울퉁불퉁한 곳도 많아서 고르느라고 힘들기도 했고, 천수답이라 제 때에 물을 댈 수도 없어 밤을 새울 때도 있었다. 돌덩이들도 많아 발을 다쳐 가면서도 이웃 공동체 식구들을 불러 함께 모를 심었다. 모심기를 하고 7일만에 왕우렁이를 넣어주었다. 다른 농부들의 논에는 그 때 쯤 제초제가 듬뿍 뿌려졌다. 그에 비해 우리는 손가락 굵기의 우렁이를 적당히(100평에 1kg정도) 넣어주고 물을 넉넉히 대주었다.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더라도 우렁이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풀을 먹어주기 때문에 우렁이가 살고 있는 논에는 제초제를 친 곳 보다 더욱 맑고 깨끗해 보인다. 우렁이는 풀만이 아니라 벼를 못살게 구는 벼물바구미와 같은 해충들도 먹어치우기 때문에 어린 모가 튼튼하게 자라는데도 도움을 준다.
그래서 그런지 장마철에 접어든 후 다른 사람들의 논에는 도열병이 발생하여 농약을 여러차례(보통 3-6회) 뿌려댔지만 우리논에는 병충해가 발생했다하더라도 농약대신 다른 방법을 찿았겠지만 아무런 병이 없어 전혀 다른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일부 땅이 고르지 못한 곳에서 우렁이가 먹어치우지 못한 풀들을 약간 뽑아준 것이 전부였다.
이처럼 논에 우렁이와 거미를 비롯한 갖가지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제초제나 살충제 살균제와 같은 농약을 뿌리는 시간과 비용도 줄일 수 있게 되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쌀을 생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는 우리 아이들(한솔, 아림)과 논을 만들기 위해 돌을 골라내는 일도 하고 줄을 잡아가며 모심기도 하고 우렁이도 함께 넣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우렁이알을 예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 아이들과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벼가 자라가는 모습을 보며 애기도 나눈다. 우렁이도 자라고 거미도 함께 사는 논을 보며 사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참 좋은 교육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2000년 8월 15일)
(2000년 8월 15일)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며칠 전 태풍 사오마이가 지나갔다. 엿새동안 그야말로 숨 한 번 크게 못 쉬고 은근히 불안에 떨며 지냈다. 다행히 우리 생명누리농원에는 눈에 띄는 큰 피해 없이 지나갔지만 이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낙동강 가의 농민들을 비롯하여 이 땅 수많은 농민들의 가슴에 큰 슬픔과 상처를 남기고 사라져갔다. 단 며칠 사이에 특히 직접 우리나라를 지나간 하루사이에 그렇게도 무섭게 이 땅을 할퀴고 지나갔다. 새삼 자연의 거대한 위력 앞에 참으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인간의 능력이 초라해지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올해도 벌써 몇 차례 태풍이 지나갔고 작년 재작년 해마다 여름이 되면 가슴을 졸이며 태풍의 소식을 접한다. 태풍이 오기 전부터 최신 기상장비들이 동원되어 태풍의 가는 길을 알려주었고 방송에서는 바람과 비의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 대책을 마련하라고 날마다 주의를 집중시켰다. 때로는 그런 대비책들이 너무 싱거울 만큼 태풍이 가볍게 지나가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며 지나갈 때는 그 피해의 중심에 있는 농민들에게는 언제나 다시 희망을 가지기 어려울 만큼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고 가기가 일쑤다.
농사를 지으면서는 전에 보다 참으로 염려가 많아졌다. 자식 많은 가지에 바람잘 날 없다는 말처럼 수많은 가족들과 함께 하다보니 더욱 그렇다. 우리식탁의 주된 친구 벼들, 고추친구들, 얼마 전 모종을 옮긴 배추와 무우들, 사과나무 배나무 자두나무 등 여러 과일나무 형제들, 60통이나 되는 수십만의 꿀벌 친구들 등등. 내게는 돌보고 살펴야할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그런 나의 친구들 때문에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걱정 꿀벌들이 먹을 양식은 떨어져가는데 꽃은 언제 피려나, 한 달만 비가 안와도 논밭의 곡식들이 다 타들어가며 목말라하는 것 같아 또 염려, 바람이 심하게 불어도 과일나무들이 쓰러지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이고, 구름만 잔뜩 끼어 있어도 일조량이 부족하지 않을까 조바심을 한다.
농사를 지으면서 더욱 분명히 실감하는 일이지만 농업이야말로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 하늘이 돕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하며 산다. 초보 농부시절에는 농부가 거름 넣고 씨뿌려서 열심히 땀흘리며 정성을 들이기만 하면 어떤 농사든지 잘 될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벌써 10년째 농사를 지어보면서는 농사는 농부가 10퍼센트를 담당하고 90퍼센트를 하늘의 도움으로 짓는 것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분명해진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 농사가족들을 돌보는 일이 나혼자 염려하고 걱정해야될 일들이 아니라 하늘과 더불어 해나가야할 일임을 알기에 너무 염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땅 농민들의 처지를 하늘이 보살펴주기를 기도하고 어떤 좋지 않은 조건에서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우리농사 가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격려하고 칭찬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한다.
사오마이의 피해를 입고 절망감에 싸여있는 우리 농민들이 다시금 희망을 가지고 일어설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한다. (2000년 9월 20일)
가장 위대한 농사꾼
우리농장을 찾아오거나 전화로 문의하는 사람들은 내가 주로 어떤 농사를 짓고 있는지를 자주 묻는다. 만평이 한곳에 모여있는 땅 중에서 집터와 길과 언덕들을 제외하고 나면 경작지만 대략 7천평 정도 되는 우리농장에는 벼를 비롯하여 각종 곡식들과 과일나무들 그리고 야채들이 자라고 있는 때가 많다. 그 종류가 대략 30-40가지는 되는 셈이다. 벼 보리 밀 기장 수수 메주콩 약콩 넝쿨콩 강낭콩 속청 팥 완두콩 땅콩 옥수수 호박 감자 고구마 배추 무 상추 시금치 부추 대파 쪽파 고추 가지 피망 오이 토마토 수박 참외 미나리 우엉 사과 배 감 자두 대추 등등. 하우스 재배는 없고 모두가 노지에서 철을 따라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들이다. 내가 심고 가꾸어본 것들은 이외에도 제법 많다. 대부분이 이 땅의 일반적인 농부들이 심고 가꾸는 것들이다.
내게 질문한 이들 중에는 왜 돈이 되는 특용작물이나 약초 같은 것들을 재배하지 별로 돈벌이가 안되는 그런 평범한 것들만을 가지고 씨름하느냐고 의아해 한다. 그러면서 어떤 작물을 심으면 잘되고 전망이 있는지를 조언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대체로 그런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며 내가 왜 이처럼 가장 일반적인 작물들을 심고 가꾸는지를 말해주면 그때서야 어느 정도 수긍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반작물들은 대부분이 일상적으로 우리의 밥상에 오를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매일 밥과 야채로 이루어진 밥상을 차리고 먹어야만 일상적인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지만 특용작물(대형 비닐 하우스를 이용한 오이 딸기 토마토 수박농사 등)이나 약초(당귀 더덕 두릅 홍화 작약 등)는 가끔만 먹어도 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년 중 한철이나 가끔만 먹어도 되는 것들만 잔뜩 심고 가꾸어 돈을 벌고 일상적인 먹거리들은 시장에서 사다 먹는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나처럼 농약 제초제 쓰지 않고 건강하게 생산하는 농산물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이 농약 범벅이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농사는 간식이나 특식이 아니라 건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다른 어떤 것 보다도 우리의 밥상이 건강할 때 온국민이 건강해지고 우리나라도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대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농사꾼은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일상적인 먹거리는 젖혀두고 돈이 될만한 작물만을 골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에 보기좋은 작물만을 키워내는 농사가 아니라 건강한 밥상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해 자신의 정열을 쏟아 부으며 애쓰는 농사꾼이다. 이 땅 모든 농민들이 먼저 자신의 밥상을 건강하게 차리고 이어서 남의 식탁도 자기식탁처럼 건강하게 만들어가려는 생각을 가진 농사꾼이 되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2000년 10월 18일)
가을비
아직 세 시도 안된 이른 새벽인데 새벽 잠결에 어렴풋이 들리는 빗소리 때문에 신경이 쓰여 눈이 저절로 떠진 채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처마밑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음악적으로 들렸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내게는 가슴을 에이는 아픔처럼 느껴진다. 언제쯤 저런 소리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까. 어제 이른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어제 하루 종일을 내리고도 모자라 이제는 굵은 빗줄기가 되어서 아직도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기세좋게 내리고 있다.
아 가을비가 너무도 많이 와 비설거지 덜한 농사꾼의 심정을 태우고 있구나. 타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묘수라도 있을까 싶어 연신 131을 돌려보건만 시원스런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어제 낮 동안은 그래도 느긋한 마음으로 장에 나가 씨마늘과 양파모종을 사면서 두부도 한 모 사고 어머니 구워드릴 갈치도 한 무더기 사올 수 있는 여유가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마음이 차분해 질 수가 없다. 당장이라도 나가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커다란 천막이라도 쳤으면 좋겠다. 엊그제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움직임이 그렇게도 분주해 보이더니 이처럼 길어질 가을비를 예상이라도 했었나 보다.
건강한 밥상을 차리는데 으뜸인 쌀을 남의 논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 작년부터 벼르고 별러 농장안에서 가장 낮은 땅 육 백 평 정도를 일부는 전문가의 도움도 받고 나머지는 내손으로 포크레인 움직여가며 논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저께부터 이틀동안 지난봄부터 땀흘리며 심고 가꾼 탐스러운 벼이삭들을 소중한 자식새끼인양 가슴 뿌듯해하며 함께 사는 공동체 식구들과 기쁜 맘으로 낫질하며 첫 소출을 안아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논으로 만들어진 후 시간이 별로 없어 변변히 거름도 주지 못한 채 처음으로 심어본 벼였지만 그런 대로 소출이 많아 보여 탈곡하여 곡간으로 옮기기만 하면 열 명 정도 되는 우리 공동체 식구들의 일년 양식도 되고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하기에는 충분할 것 같아 참으로 가슴이 벅찼다. 비가 온다는 예보도 들었던 터라 딴에는 비에 대한 대책으로 벼들을 논에서 들어내어 약간 경사진 공터로 옮겨 널어 말리는 심정으로 잘 펼쳐두었다. 게다가 속맘으로는 가을비가 오면 얼마나 올까 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늘어놓은 벼이삭들이 이제는 젖어들다 못해 아예 싹이 나버리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가슴이 젖다 못해 아예 꽁꽁 얼어붙는 느낌이다. 아침에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나 비가 그치는 대로 비에 젖은 벼이삭들을 뒤집어 줄 수라도 있게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여전히 신경은 온통 빗소리에 쏠려 가 있다.(2000년 10월 30일)
나락가마니를 곡간에 쌓으며
가을비를 잔뜩 맞히긴 했지만 몇 번씩 뒤집어가며 널어 말려서 좋은 날 잡아 겨우겨우 탈곡을 위한 준비를 했다. 탈곡기는 내 트렉타를 가끔 빌려다 쓰는 아랫마을 젊은 농부에게 빌려왔다. 내가 한번도 경운기에 연결해 쓰는 탈곡기를 사용해본 경험이 없기에 그 청년이 직접 경운기 몰고 와서 시범을 보여주기로 했는데 아예 함께 탈곡하는 일까지 돕고 저녁을 먹고서 한참이나 애기나누고 갔다. 약 5백평 정도의 논에서 거두어들인 벼를 탈곡하는 데 그 청년뿐 아니라 우리 공동체 식구들 4명까지 힘을 합해서 했는데도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작년에는 이웃마을 콤바인을 가진 농부에게 평수에 따라 삯을 쳐주고 부탁했더니 올해의 절반밖에 안되는 분량이긴 했지만 단 20분만에 나락이 들은 포대 5개를 내 차에 실어주는 것으로 끝났었다. 그에 비해 올해는 논이 질어 트렉타를 부르기가 곤란할 것 같아 벼를 베서 탈곡하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품앗이를 하는 입장에서 서로 돕는 관계로 함께 일하긴 했지만 벼를 베느라고 4명이 하루종일 넘게 걸렸고 마른 땅으로 옮겨서 널어말리느라 또 며칠동안 돌봐야했다. 게다가 탈곡하는 데까지는 너무 많은 인력과 시간이 들었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계를 될 수 있으면 쓰지 않으려고 하는 입장이지만 콤바인 한 대가 처리해낼 수 있는 능력이 대단하구나 싶다.
벼를 위해서는 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고 농장 안에서 가장 낮은 곳을 논으로 만들어 올해 처음으로 농사지은 곳이어서 별로 큰 기대 못했는데 그래도 탈곡을 해놓고 보니 수확량이 예상보다는 많아서 참 기뻤다. 일반농부들의 경우라면 500평에서 나락으로 750kg정도 나와야 평년작이라고 친다. 우리 논에서 나온 수확량은 약 600kg이 되었다. 일반농부들의 논은 그동안 계속 농사를 지어오던 땅이고 거름 비료 제초제 농약비용이 제법 많이 들었는데 비해서 우리 논에는 생산비가 훨씬 적게 들었다. 첫해 농사였지만 거름으로는 오로지 작년 가을에 위생공사에 부탁해서 공짜로 뿌려놓은 인분 세차가 모두였다. 4차가 필요했는데 땅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 한곳은 전혀 못 뿌렸다. 그것만 되었으면 700kg는 무난했을 것이다. 제초를 위해서는 왕우렁이 5kg를 넣은 것이 모두였다. 그래도 전혀 병이 걸리지 않아 다른 농부들처럼 5-6회나 농약치는 수고로움이 덜어졌을 뿐 아니라 건강한 쌀을 생산해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소득이다.
혼자서 들기에도 무거운 나락 15포대를 창고로 옮겨 쌓으면서 참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이제 다시 햇볕 좋은 날 도로가에 널어 말린 후 방앗간에 가지고 가 쌀로 찧어 햅쌀로 따끈한 밥도 해먹고 주문한 이들과 아는 이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을 하니 마음은 더욱 즐겁다. (2000년 11월 14일)
맛있는 쌀을 나누며
창고에 들어있던 나락을 햇볕좋은 날을 택해 며칠간 도로에 널어 말리는 수고를 거친 후 드디어 나락 몇 포대를 싣고 이웃마을 방앗간으로 향했다. 방앗간에 당도하니 함께 생명농업으로 농사짓는 작목반원들인 창모 학진이네가 먼저 와 있다. 소출이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락을 찧으러 오는 마음은 모두가 풍요로와 얼굴마다에 잔잔한 기쁨이 배어있다. 세포대는 칠분도(반현미)로 찧고 나머지는 현미로 찧어달라는 주문을 했더니 지금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까다로운 주문을 한다 싶은지 방앗간 할아버지의 낯빛이 약간 변할려다 만다.
씩 웃으며 잘 찧어주기를 부탁하고 시간을 벌기도 하고 볼일도 있고 해서 읍내 여기저기를 다니며 필요한 것들을 사고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방앗간에 들렀다. 알곡이 충실한 쌀을 보니 참 반갑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이 쌀을 어떻게 나눌까 내 생각하며 차를 몰았다. 형님댁과 누님댁에도 보내드리고 혼자 사시는 장모님께도 좀 드리고 함께 일을 도운 이들과도 나누어 먹어야지. 이 쌀이 생산되기까지 거들어주었던 모든 이들 그리고 그동안 농사짓는다고 하면서 연락도 잘 못드렸던 선배님들과 친구들에게도 나누어 주고싶다. 또 우리쌀을 주문한 이들도 더러 있는데 그러자면 쌀이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우리논을 더 늘이든지 이웃논이라도 빌려서 더 많은 벼농사를 지어야겠다.
집에 당도해 10kg와 20kg들이 포대를 만들어 보낼 곳들에 따라 분류를 해보았다. 어떤 곳은 쌀만 보내기가 아쉬워 솔잎발효차나 꿀을 함께 넣기도 하고 콩이나 통밀을 조금씩 넣기도 했다. 모자라는 쌀은 또 방앗간엘 다녀와야겠다. 이것들을 모두 다해보았자 내게 그리 큰 수입을 안겨주는 것도 아니고 주문한 이들 외에는 내가 좋아 그냥 보내는 것인데도 다른 어떤 것보다도 매일의 생명양식이 되는 쌀을 그것도 내 손으로 땀흘려 지은 건강한 쌀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웬지 모르게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2000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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