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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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의 불가능한 세계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명화와 장난치기
2007/04/29 00:00
http://blog.naver.com/goldsunriver/90016977309
어렸을 때 재미있게 본 영화 중에 “라비린스(래버린스 Labyrinth, 1986)”라는 판타지 영화가 있었다. 어떤 십대 소녀가 고블린 왕에게 납치당한 남동생(아기였음)을 구출하기 위해서 커다란 미로(라비린스) 끝에 있는 고블린 성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이야기였는데...
주인공은 요정 같이 예뻤던 제니퍼 코넬리
그리고 그녀와 대결하는 고블린 왕은 뮤지션 데이빗 보위였다. (쫄바지 의상이 좀 거슬렸으나 나름 멋있었다. ^^)
이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고블린 성 장면인데,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 헷갈리는... 계단과 아치형 입구로 가득한 그로테스크한 공간이었다.
이 이상한 계단 공간에서는 중력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서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대한 기억이 대부분 흐릿해진 다음에도, 이 계단 장면만은 뚜렷하게 기억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인터넷에서 에스헤르 Maurits Cornelis Escher (1898-1972), 흔히 영어식으로 M. C. 에셔라고 불리는 네덜란드 판화가의 작품을 보고는 이 계단 장면이 그 작품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더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영화 제작팀이 에셔 재단과 라이센스를 체결하고 이 장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바로 이 그림이다.
상대성 Relativity (1953)
석판화, 27.7 × 29.2 cm
이 그림에서 중력은 세 가지 방향으로 서로 직각을 이루며 작용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림 아래쪽이 바닥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림 오른쪽면이 바닥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림 왼쪽면이 바닥이다. 그리고 각각의 중력공간에서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 세 중력공간이 겹쳐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기이한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특히 맨 위 계단을 걸어가는 두 사람... 그들은 아주 가까이 있지만 서로 다른 중력의 작용을 받고 있고, 각기 계단의 다른 면으로 걷고 있다. 이런 장면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
그리고 이 그림은 철학적인 질문도 떠오르게 한다. 과연 누가 자기가 서있는 바닥만이 진짜 바닥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자기가 근거한 논리만이 진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림 제목 또한 의미심장하게도 “상대성”인 것이다...
에셔는 이렇게 서로 다른 중력 공간이 겹치는 그림들을 여러 번 판화로 제작했는데 아래 그림은 좀더 예전에 만든 것이다.
또다른 세계 (1947)
목판화, 31.8 × 26.1 cm
에셔는 이 그림들 외에도 시각적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판화들을 많이 제작했고, 그 판화들은 영화에 곧잘 응용되곤 한다. 혹시 “어벤저 The Avengers (1998)”라는 영화에서 (흥행에 실패했지만 우마 서먼의 섹시한 검은 가죽 의상은 유명했다 ^^) 우마 서먼이 미치광이 과학자(숀 코너리)의 저택에서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사각형으로 구부러진 계단로를 내려가는데, 내려갔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 장면은 에셔의 이 그림에서 온 것이다.
석판화, 35.5 × 28.5 cm
여기 나오는 끝없는 계단은 사실 실제의 3차원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3차원의 세계가 2차원의 지면에 표현되었기 때문에 이런 왜곡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이런 불가능한 세계를 이렇게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비례를 정교하게 비트는 에셔의 솜씨 덕분이다. 이 그림에서 한 줄의 사람들은 올라가고 있고 한 줄은 내려가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내려가는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즉...
“이것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내려가는 것도 아니여… 이것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내려가는 것도 아니여...” (진정한 같기도의 경지에 오른 그림이군...-_-)
"어벤저"의 장면 동영상은 구하지 못했지만 대신 이 에셔의 그림을 응용한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하나 가져왔다. 즐감하시기를.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에셔의 또 하나의 대표적인 작품이 이 “폭포”다. 이렇게 끝없이 순환하는 물로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현실세상에서 가능하다면 발전사업과 에너지 공급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
이 그림은 흔히 “펜로즈의 삼각형 Penrose Triangle”이라고 해서 3차원의 공간에서 불가능하지만 2차원의 평면에 가능한 삼각형을 설명할 때 나오곤 한다.
바로 이런 삼각형인데, 폭포 그림의 수로와 기둥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 세 개의 펜로즈 삼각형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을 만들기 전에 에셔는 주로 테셀레이션 tessellation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테셀레이션이란 보도블록이나 목욕탕 타일처럼 한 가지나 몇 가지의 도형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빈틈이나 겹침 없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을 말한다. 테셀레이션을 이용한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에스파냐에 있는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인데, 에셔는 이 알함브라 궁전을 방문했다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에셔는 단순히 중세 건축물에 있는 것 같은 장식적인 테셀레이션을 만든 게 아니다. 이를테면 흑백 문양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테셀레이션에서 어떤 사람들은 흰 것을 무늬로 검은 것은 배경으로 생각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흰 것을 배경으로 검은 것을 무늬로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에 착안해서 에셔는 배경과 무늬가 서서히 서로 역전되게 하는 재미있는 테셀레이션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여기 있는 하늘과 물 (오타 지적해주신 분 감사 ^^) 이다.
하늘과 물 I (1938)
목판화, 43.5 × 43.9 cm
목판화, 43.5 × 43.9 cm
그러고보니 초등학교 참고서에서부터 반전도형의 예로 나오는 작품들 중 상당수가 에셔의 판화들이었던 것이다.. 왜 진작에 그를 알지 못했을까. 참 대단한 사람이다. ^^
여기 에셔의 테셀레이션을 이용한 짧고 아름다운 애니메이션도 하나 가져왔다. 역시 즐감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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