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e는 "있음"이란 뜻입니다. 고요한 풍경처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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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없이 살기란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직업을 때려치우거나,
하던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하는 일이
기쁘고 즐거운 상태일 뿐입니다.
어쩌면 일정 없이 산다는 게
훨씬 많은 일들을 하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이 기쁨 속에서 행하여지는 것이라면
아무리 많은 일이라도 기꺼이 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정 없이 살기란
지금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모든 것과 함께 춤 출 수 있는 것입니다.
신성한 호흡과 함께
삶의 리듬에 맞추어
기쁨의 향연을 벌이는 것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꽃향기에도
옆을 지나치는 이웃집 아저씨에게서도
창공을 가르는 독수리의 날개 짓에서도
흐뭇한 미소로 답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일정 없이 살기란
모든 것 안에서 신성을 보는 것입니다.
배신자의 비열한 미소 속에서도
패배자의 처절한 울음 속에서도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여유가 묻어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일정 없이 살기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가 가진 유일한 것은 기쁨..
그가 아는 유일한 것은 사랑..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
흔히들 깨달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는 깨달음을 얻었다느니,
의식이 높다느니..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있는 깨달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마치 삶을 소유할 수 없듯이...
그것은 또 다시 텅빔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더 큰 깨달음을 향하도록 말입니다.
만약 자신이 깨달았다고
그 깨달음을 움켜쥐고 있다면
그 집착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들어올 더 커다란 빛을 차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삶이 하나의 과정이듯이
깨달음도 하나의 과정일 뿐
근원을 향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얻은 지식도, 깨달음도
놓아버려야만
새로운 깨달음이 들어올
공간이 생깁니다.
흔히들 깨달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면
무슨 대단한 능력이나, 신기한 현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의 삶이 메시지인데도
타인의 신성한 메시지를 듣고자 하거나,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깨달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 것도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장황한 이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저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나의 주변의 모든 일상 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축복하며
아침에 먹는 밥한 술에도,
감사와
사랑의 눈길을 주고,
잠을 깨우는 새소리에 기쁨을 느끼며
하루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의식상승님에 의해 2008-02-27 17:29:36 쉼터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의식상승님에 의해 2008-02-27 17:29:36 쉼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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