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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6장-곡신불사,생명력의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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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도덕경 6장 원문]
 
谷神不死  是謂玄牝
 곡 신 불 사   시 위 현 빈
 
원문해석( 한자어의 뜻에 맞추어서):
골짜기의 신(神)은 죽지 않는다.
만물 너머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신령(神靈)스러움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다.
 
이 신령스러움이 거(居)하고 있는 깊은 골짜기를 일컬어
현빈(玄牝)이라 하는 것이다.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현 빈 지 문    시 위 천 지 근
 
원문해석( 한자어의 뜻에 맞추어서):
이 신비스럽고 그윽한 현빈(玄牝)의 문(門)이,
바로 천지(天地)가 생겨나오는 뿌리라 할수 있는 것이다.
 
 
綿綿若存  用之不勤
 면 면 약 존    용 지 불 근
 
원문해석( 한자어의 뜻에 맞추어서):
이것에서 흘러 나오는
천지 자연(自然)을 운행하는 보이지 않는 그 힘과 작용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지만,
천지(天地)와 더불어 끊임없이 이어지나니, 
 
유유히 흐르는 큰 강물처럼 결코 서두름도 없고,
망설임도 없고, 지침도 없이, 제 법도대로 나아간다.
 
이렇듯 이 흐름의 작용은,
다만 그 스스로의 그러함(自然)을 따를뿐이지,
 
힘들여 애태우며 애쓰는 일이 없다.
 
 
 
 
강의 내용 정리:
 
노자의 도덕경 제 6장의 내용중에 '곡신불사(谷神不死)'라는 한자어가 등장 합니다.

이 곡신불사를 제목 그대로 해석하면,
골짜기의 숨어있는 신(神)이 죽지않는다라고 해석하게 되고,
이 뜻을 은유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계곡의 정신은 죽지않는 것이어서 온 세상에 가뭄이 들어 메말라가고
온 식물이 타들어가도 계곡의 물은 마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곡신(谷神)'의 의미를,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자의 생식기라는 의미로서 받아들이거나,
혹은 이것을 확대해석하여 자연의 생산성이라는 의미로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반적론 관점입니다.
 
하지만, 곡신불사(谷神不死)라는 글 속에는 더욱 깊은 우주적 철학이 숨어있어서,
"생명력이 소멸하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되고 있는 것"을 상징하는 것과 더불어
순수한 생명에너지의 생동성을 포함한 포괄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곡신불사라는 한자어 속에 숨어있는 속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식물들이 가진 순수한 생명력이 외부에 어떻게 반응하고,
그 에너지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순환하는지를 관찰해 보는것은
가장 좋은 방법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식물에 깃든 요정들과 채널링을 통하여 얻어진 내용들이 있는데,
이 내용들 중에는 자연이 가진 순수한 생명력의 신비로움과 그 순환성을 알려주는
놀라운 사실들이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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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링 내용:
꽃에 있는 요정들과의 채널링
 
[[꽃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요정이 있습니다.
요정들은 2차원계의 존재이며, 다르게는
식물에 깃든 정령들 이라고도 설명을 합니다.
식물뿐만 아니라 생명성이 강한 곳에는 요정들이
존재합니다.
요정은 생명이 있는 존재들에게 들어있는 생명의 정령입니다]]

인간들은 육체의 사라짐을 두려워하거나
이를 회피하기 위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식물들에게는 죽음이나 두려움 등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공포, 두려움, 저항감 등의 감정의식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들이 그들의 의식으로 부여한 상상적 개념일 뿐,
식물들이 두려워하거나 슬퍼한다는 식의
감정적 반응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정들은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들어가서 존재할 수 있고,
생명이 없으면 그 곳을 떠나면 그만인 것입니다.
 
식물은 죽음이라는 말의 의미를 모릅니다.
조건이 맞으면 자라고 성장하고 조건이 안맞으면 그냥 사라질뿐입니다.
 
인간들이 식물을 학대하고 생장조건을 나쁘게 만든다고 해서
이것을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을 뿐이고 그냥 사라질 뿐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잘 보살펴주고 아껴주는 마음이 있을 때,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그 마음에 대해서 반응을 하게됩니다.
식물은 사랑하는 마음만을 느끼지 반대되는 개념이 없습니다.

인간이 위협할 때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생명력의 보호본능에 가까운 것일 뿐 이것을 축적하거나
카르마를 형성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에 대한 분노, 증오, 원망 등이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식물은 사랑이라는 긍정적 에너지 작용에만 반응을 합니다.
그것은 온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식물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서 바라보면서 에너지를 주면
이 에너지에 대해서는 반응을 하여 식물도 역시 에너지를 보내줍니다.
사랑에 대한 감정을 받고서 반응을 하는 것이 식물들에게는
가장 큰 에너지 반작용입니다.
사람이 1이라는 사랑의 에너지를 주면, 식물은 7~8 배의 사랑의 에너지를
사람에게 돌려줍니다.
반면에 사랑에 반대되는 공포 두려움 증오 분노 등의 부정적 에너지에
대해서는 아주 미미하게 반응을 할 뿐입니다.
 
 
채널링 일자: 2015년 1월 11일
채널링 장소: 청주 빛의 생명나무 공부방
채널받은 사람: 반가사유상
채널의 진실도: 77%
 
 
* 요정과 정령
정령은 2차원의 존재들로서
주로 원소를 정화하고 전체와의 균형을 이루게 하며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에게 신성함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주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령은 크게
우리 몸의 건상상태를 주관하는 몸의 정령(인간의 영혼백에서 백과 동일한 존재)과
흔히 '요정'이라고 알려진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들어있는 생명 정령들과
원소들의 균형과 평형을 유지하고 정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원소 정령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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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동기감응의 원리에 따른 식물정령의 내재(內在)
동기감응의 원리라는 것은, 같은 진동수와 파장대를 가진 존재들은 비슷한 것끼리
서로 공명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특정 식물에 발병하는 병충해원인균과 벌레들은
그 특정식물에게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다른 식물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서로 진동수대역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생명성을 유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꽃들에 요정들이 있다는 것도 동기감응의 원리와 비슷한 것인데,
꽃의 생명력은 그 자체가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생명의 에너지로서만
존재하는 자연의 정령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요정들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정은 아주 맑고 순수하고 깨끗한 생명의 에너지만을 추구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요정이 들어오는 것도 동기감응의 원리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며,
꽃이나 생명체의 진동수에 맞추어서, 그에 상응한 요정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만약, 요정이 있는 꽃의 생명성이 떨어지면 그 장소를 떠나면 그만인 것입니다.
 
순수한 생명의 에너지와 이를 상징화한 정령들과 요정이라는 존재들은,
온전한 생명의 에너지 자체이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 두려움 등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식물들을 바라보면서,
그 식물들이 슬픔과 분노 공포감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 감정으로 판단하여 바라본 것일 뿐입니다.
 
이처럼 순수한 자연의 생명에너지는 그 자체로서 영원히 순환하면서 존재하는 것이지,
그 자체에 죽음과 존재의 사라짐이라는 관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명의 기본적인 순환"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노자는 '곡신불사'라는 단어로 표현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Ⅱ 식물의 감정작용과 에너지 반응도
인간이 날카로운 금속성 도구를 들고서, 꽃이나 나무를 베어버리거나
훼손하려고 의도를 품고서 다가서면, 그 식물에서는 강력한 붉은색의
오로라 에너지가 분출되면서 경계를 하게 된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내용이 있습니다.
이 실험내용에 따르면, 식물 역시 인간과 비슷한 인격이 있고 감정이 있고
지능이 있다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빛의 생명나무 공부방에서 행해진 꽃의 요정들과의 채널링 내용에 의하면,
식물들이 내보내는 두려움의 반응들은 생명력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보호본능일뿐이지, 이것이 마음에 새겨지는 원한의 형식으로 오랫동안 축적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식물들은 생명보호에 대한 기본적인 두려움만 있을 뿐이지, 자신을 해하는
인간에 대해서 분노 원한 원망 등이 축적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조경 분재 등을 하면서 꽃을 꺽고 베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것을 오랜 세월동안 게속 하게 되면,
그 사람이 다치거나 관절을 상하게 되는 사고나 질병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오랜세월을 지내온 한 지역을 관할하는 수호신 격의 큰 나무를
베려고 하면, 베려는 사람에게 불운한 사고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그 나무 자체에서 저주의 에너지를 발산해서 사고가 생기는 경우가 아니라,
그 나무에 외부로부터 들어와 있는 다른 고차원 존재의 영향력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마을을 관장할 정도의 힘이라면, 그것을 가능케 할 정도의 주술적 능력을 가진
인격신이 붙어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 인격신으로 인하여 특이한 사고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분재를 오랫동안 하면 관절이 상한다는 것도, 동기감응의 법칙에 따라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실제로는 다른 요인이 더 지배적입니다.
살아있는 식물은 가위나 칼로 깍을 경우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두려움의 에너지를 미미하게나마 발산하기 때문에,
이것이 오랜 세월 인간의 몸에 축적된다면 질병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정적 에너지에 비해서 사랑과 같은 긍정의 에너지에 대해서는 7~8 배 이상
더 강한 반응을 하기 때문에 분재를 하면서 행복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서 작업을 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의 몸이 더 건강해지는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이것은 분재를 하는 사람의 평소 생활습관과 마음가짐에 따라서 더 큰 변화가 생긴
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식물들은 원망 미움 증오 등의 부정적 에너지를 자신의 내부에 남기지 않기 때문에
식물의 몸체에는 부정적 에너지의 카르마가 베여있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채식위주의 식습관이 우리의 몸을 맑게하고 에너지를 정화한다는 것은
아주 설득력 있는 것입니다.

식물이 사랑의 긍정적 감정에너지에 대해서는 아주 강한 반응을 하고,
부정적에너지에 대해서는 미미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새로이 깨닫게 만들어줍니다.
식물이 행복하다는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판단하여 주변환경적으로
좋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식물들은 그 자신 스스로가 세상에 존재하면서 생명성을 누리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행복함이라는 것입니다.

식물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생명의 에너지 자체가 사랑의 긍정적 감정에 대해서 7~8배
이상으로 반응을 한다는 것은, 생명력 자체가 바로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득한 존재에게는, 오로지 생명을 낳아서 기르고 가꾸는 것에
서 행복함을 누리는 것이 있을 뿐, 존재가 사라지거나 죽거나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Ⅲ 식물은 온전히 의식의 성장을 이루었다.
의식의 경계( the boundaries of consciousness)는,
의식을 가진 생명체가 가진 의식능력의 한계성이
어느 정도이냐를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크게 식물과 동물의 경우로 구분하여 설명하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경우는
의식이 성장하고 지각능력이 발전할수록 두려움과 공포감의 부정적 감정이
늘어나게 됩니다.
반면에 빛의 생명나무에서 채널링을 통하여 알아낸 식물의 감정체계는
생명보호의 본능에 따른 일시적인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있지만,
그 이상으로 부정적 에너지를 발산하거나 축적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인간과 동물들은 자기 생명보호와 방어기제에 따른 자기학습화의 결과물들이
 지속적으로 의식층에 각인되어가는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여 인간과 동물들에게는 무의식층이라고 부르거나
혹은 "혼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구조가 있다고 해석을 합니다.
이러한 의식구조 때문에 인간과 동물들은 일상 생활중에 갑자기 무의식층에서
표면의식으로 돌출되어져 나오는 부정적 감정들의 발현이 있게 되고,
이것이 끝임없이 자신에게 두려움과 증오 분노 미움 시기 질투 등의
부정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면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옥죄이는 현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나 동물의 의식 구조에서는, 한번의 부정적 현상으로 인하여 발생된 부정적 감정과 기억은
결국 카르마(고착화된 에너지체의 작용)로 형성되어져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식의 경계(the boundaries of consciousness)라는 것은,
생명체가 진화발전하면서 더욱 더 자신의 행복함을 스스로 만족해 할수 있는
정도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단순히 이성적 지능을 사용한 물질적 발전의 정도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적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환경의 혜택이
더욱 풍요롭게 변화해간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의식의 경계를 한정짓는 결정적 요소는, 위에서 언급한 식물의 감정에너지 반응도
를 보고서 판단하건데, 두려움과 죽음에 따른 공포심을 얼마나 극복했느냐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르게 표현하여, 두려움을 극복해가는 것이 의식의 경계를 확장해가는 것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들은 죽음의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세계에서는 이미
의식의 확장을 온전하게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관점은 식물의 세계라는
2차원적 관점에 국한된 설명이지만, 분명히 식물은 스스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행복을 누리면서, 그들만의 '향락'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물은 오로지 존재하는 것에서 행복함을 가지며, 이미 존재 그 자체로서
온전하게 신성(神性)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Ⅳ 두려움을 극복해야 '인식의 경계'를 확장할 수 있다.
인간들은 일방적인 그들의 기준잣대로서,
그들만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체들의 특수성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관점으로만 받아들여서 비하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지구생명체들의 다양한 존재를 설명하면서, 그것을 진화론적 관점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동물은 식물보다 더 월등히 진화되어진 우월한 존재이며,
식물들은 2차원적 낮은 수준의 생명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두려움을 이미 극복하여, 온전히 신성을 내재하고 있는 식물들이 과연
인간들이 가진 인식의 경계(the boundaries of consciousness)보다 더 뒤쳐진 것인지
는 정말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인간들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내면 행복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정신 수양을 통한 의식의 성장, 혹은 영혼의 성장이라는 것을
갈구하지만, 여전히 육체적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감을 극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인식의 경계'는 식물들보다 아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자신의 내면에 어둠의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하여,
동기감응의 법칙에 따라서 그에 상응한 두려운 존재와 사건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의식의 성장을 추구하는 인간이 더 나은 행복함을 가지고 싶다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극복하는 것인데,
희망과 용기와 도전의식을 잃지 않고서 두려움을
느끼는 현실의 어려움들을 이겨나가기 위한 '스스로의 자유의지 발현'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두려움이 줄어들고 모든 존재들에 대한 감사함과
사랑의 마음으로 긍정적 에너지가 충만해져 갈 수 있을 때에, 인식의 경계(the
boundaries of consciousness)가 확장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Ⅴ 각 차원에는 그들만의 존엄성이 있다
3차원은 2차원보다 더 월등한 것이고, 4차원은 3차원보다 더 월등한 것이라는
관점은 지극히 인간의 물질계에 국한된 인식범위의 한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진화를 위한 윤회시스템에서 자신의 상위자아가 존재하는 차원층이 더 높을수록
그에 대한 우월감을 가진다는 것은 덜 성숙된 인간의 교만함일 뿐이지,
각 차원에 속해있는 존재들은 그 차원별로의 특수성과 신성함이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구조는 하부구조 차원이 존재하지 못하면,
상위구조 차원이 존재할 수 없는 상호공존 관계이기 때문에,
상위차원 존재가 하위차원 존재를 강압적으로 억누르거나 마음대로 강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다만, 고차원 존재가 하위차원의 진화과정에 도움을 주기위해서 지도자급의 존재들이
간혹 하위차원의 세계로 이동해올 수는 있지만, 이것 역시 각 차원의 특수성과 그 존
재성을 인정하는 상호 존중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구라는 행성은, 우주의 다양한 차원에서의 존재들이 모두 다 섞여들어와
윤회시스템을 거치면서 초단기에 성장해가려는 목적으로, 우주에서 특수한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경우이기 때문에,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다양한 영혼의 진화정도에
따른 현실적 차이는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각 차원에 따른 그들의 특수성을 상호존중하고 인정하면서
공존하려는 의식을 기본으로 깔고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차원별 존재들을 수직적 우월성의 잣대로 보려는 것은 인간 의식의 발전이
아직은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편인 것입니다.
 
5차원 존재들은 5차원계에서만 그들끼리의 공존을 하면서 행복함을 추구해 나아가는
것이고, 7차원 존재들은 7차원계에서만 그들끼리의 공존을 하면서 행복함을 추구해나
아가는 것입니다.
2차원계에서 식물군은, 이미 그 차원계에서는 온전한 성장을 이룩한 것이며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여 순수한 생명의 에너지로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편견으로서 식물군이 이룩한 의식의 경계를 가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영성인들이 주장하는 차원의 수직적 서열화는 지극히 인간적인 개념일뿐
고차원이 더 좋고 저차원이 나쁘다는 식의 구별은 정말 무의미한 것입니다.
 
 빛의생명나무  http://udecat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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