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두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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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두려운 이유?
사람을 보면 그 속에 영혼이 들었는데요.
나의 영이 상대의 영에게 인사하는 것을 나마스테(Namaste)라고 하죠.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하는 것은
나의 영이 당신의 영에게 인사드립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곧 영과 영이 통하는 것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진심으로 너를 대할 테니
너도 나에게 진심으로 대하라는 요구와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함에
진심과 진심이 통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요.
인간이라는 것은
두 가지의 존재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즉 영과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불안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정제되지 않은 탁한 물과 같습니다.
영이라는 것은 사람의 양심이자 진아인 것입니다.
영혼은 샘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과 같습니다.
영은 맑고 투명합니다.
영은 근원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완성을 이루고자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도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완성의 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루고자 하는 길은 다릅니다.
사람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대개가 인위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욕망을 채우는 일입니다.
사람은 인위적 욕망이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길이 어긋나게 됩니다.
이렇게 영이 가는 길과 사람이 가는 길이
서로 다를 때
거기에서 파생되는 것이 질병과 사고입니다.
모든 전쟁의 시작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인류가 세상을 살아가되 어려운 것은
영이 사람에게 통하지 않기 때문에
영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통 하지 않은 인류는
상대에게는 나를 영으로 대하라 하지만
정작으로 내가 상대를 대할 때는 나의 영이 아닌 사람으로서
상대를 대하는 것이죠.
즉 나는 좋은 것은 내가 가져가고
상대에게는 안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하면 망합니다.
누군가와 식사를 하는 경우에도
나는 밥을 잘 안 산다거나
사람을 대할 때 상대를 하대 하는 것
이것이 모두 인위적인 길입니다.
상대에게는 영성을 내라 하면서
나는 인위적인 사람의 모습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류가 전쟁하는 이유입니다.
이제는 인류가 각자의 본질로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지금은 본질로 환원하여 근원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사람이 영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때 입니다.
영이란 그 사람의 진심, 양심입니다.
영이란 맑은 샘물과 같으며
영혼은 새와 같고
영혼은 꽃과 같으며
영혼은 빛과 같습니다.
사람은 전쟁을 합니다.
영은 사랑을 행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개의 사람은 영을 보기 어렵습니다.
영이 없는 세상은 전쟁터와 같아서
사람이 인위적인 욕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러한 까닭에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게 되면
서로 간의 영혼을 보여주기 어렵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전쟁은
가족 전쟁입니다.
거의 모든 전쟁이 가족 간의 전쟁에서 시작되게 됩니다.
수행을 통해서 정제되지 않는 사람은
인위적 욕망이 가득한 존재이며
인위적 욕망이 가득한 인류는
궁극에 있어서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본시 영혼은 맑고 투명하므로 욕심이 없습니다.
영은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에 욕심이 없습니다.
하늘은 욕심이 없으나 물질로 이루어진 사람은 욕심이 있습니다.
욕심이란 것은 모두 땅의 기운 즉 물질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108개의 원소의 기운은
사람의 욕망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을 두고 인위적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늘의 기운
영의 기운으로 존재하며
영으로 사는 것
이것을 무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영은 하늘로 되돌아가며
사람은 땅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사람이면서 영을 통하고
빛나는 영으로 존재할 때
모든 전쟁이 사라지게 됩니다.
영은 곧 무위이며 진심이자 양심입니다.
인류는 영이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의 진심을 알기 어렵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진심으로 대하지 못할 때
그때 오해가 생기게 됩니다.
사람 간에 오해가 생기며 화가 나고
상대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탓이 생겨납니다.
인류가 물질의 몸으로 이루어진 사람으로만 존재하게 되면
인위적인 기운에 의해서 대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볼 때는
그 안에 내재한 영혼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영혼이 상대의 영혼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맑은 샘은 영혼과 같으며
맑은 샘물은 목마른 나그네의 갈증을 해소하게 합니다.
영이 통하는 자는 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영이 맑은 자는 인위적인 욕망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대함에 있어 극진한 마음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로서 모든 분쟁이 해소됩니다.
그래서 영으로 존재하는 길을 연마해야 하기 때문에
삶이란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을 잘 대우하라는 것은
사람에 대하여 상대의 영혼을 대하듯이
진심을 통하는 뜻입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항상
영혼을 대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대우하라는 것은
그 사람의 영을 극진히 대우하라는 뜻입니다.
의식상승이 세상을 살아보니
사람을 잘 대우하기 어렵고 그래서
사람을 잘 대하지 못할 바에는 피하는 것이 최상의 수입니다.
수에서 삼십육계 줄행랑은 매우 좋은 수입니다.
이렇게 하면 자연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산상에 올라 초목을 먹고 짐승을 바라보며
홀로 지내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혼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좋은가요?
산속의 면벽 수도 천년보다는
사람을 극진히 대우하는 길이 더 높고 큰 수행의 길입니다.
사람을 대함에 잘 대우하여야 좋은 결과를 낳습니다.
사람을 잘 대우하지 못할 것 같으면 사람을 지극히 두려워하여
만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나마스데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사람을 대함에 진심으로 대우하는 것
흐트러진 자와
망한 자와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와
방탕한 자를 대할지라도
나는 당신의 영혼을 보며
당신에 영혼을 축복하겠습니다.
이것이
깨달은 존재의 마음가짐입니다.
이러한 전략을 썼던 분이
바로 과거의 평강공주입니다.
그가 온달을 대함에
진심으로 대하여 상대의 진심을 끌어오는 전략을 썼습니다.
내가 영으로 돌아갈 때
상대도 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서로 같은 것은 공명하면서같은 것을 끌어 드리는 것이 자연의 원리입니다.
낮은 진동은 높은 진동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대하여
내가 상대를 극진히 대우해야 상대도 나를 극진하게 대우하게 됩니다.
진면목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을 대우함에 극진히 대우하면 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극진하게 대우하지 못하면 화가 되므로
차라리 두려워 하여 미래를 대비하라는 뜻입니다.
어려운 것이 사람 간의 관계이며
사람은 대개가 인위적이어서
나의 이득을 먼저 앞세우므로 큰 환란이 오게 됩니다.
그러한 까닭에 사람을 극진히 대우하지 못할 바에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 편안한 길이 됩니다.
이것이 사람을 두려워서 한다는 말의 본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