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길을 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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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길을 갈 때
두 가지의 중요한 정보가 있는데요.
이 두 가지의 정보를 무시하거나 망각하는게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면으로 부터 흘러 나오는 절박한 정보입니다.
(여기서 길이라 함은 인생 길을 말합니다.)
첫째는 느낌(feeling)입니다.
사람이 길을 갈 때 항상 어떤 느낌을 받는데요.
느낌! 필링이란 것은 영의 언어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쏟아져 나오는 느낌에 대해서 잘 이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낌은 반드시 그렇게 하라는 내면의 명령입니다.
느낌을 무시하면 반드시 망하는 결과를 초래 합니다.
사람들은 내면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느낌을 무시하고
머리의 판단을 선택하는데 머리로만 선택하는 것은
그것이 될듯하나 나중에 보면 끊임없는 실패를 반복합니다.
둘째는 기분(mood)입니다.
사람이 길을 갈 때 늘 기분이 작용하는데
기분이 좋으면 내가 지금 길을 잘가고 있다는 뜻이며
기분이 나쁘면 내가 지금 길을 어긋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딘가에 갔는데 누군가 나에게 시비를 걸어서
나를 무시하면서 업신여기고 욕을 하고 화를 내게 되면
갑자기 내 기분이 몹시도 나빠 집니다.
분명히 그것은 상대의 무례나 시비가 분명합니다.
그러니 그 사람으로 인해서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은 상대를 기분 나빠하고
싫어하게 되며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싫어할 때는 거기에도 사실은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상대는 그 이유를 절대 설명하지 않습니다.
나와 등을 지고 전쟁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안달을 합니다.
상대의 시비전술에 말려 들어가게 되면 그 때부터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 역시 극도로 화가 났으니
이제는 상대를 같이 미워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것이 심해지면 상대를 죽도록 미워하다가 원망하고 탓하며
엄청나게 사무치도록 미워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 넣어야 직성이 풀리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대중의 길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그러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지상정이요. 사람의 마음입니다.
어떤 누가 그러하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공부하지 않는 대중은 늘 죽음을 밟고 다니게 됩니다.
역전환의 수
우리가 세상을 산다는 것은 역전환의 수를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역전환이란 역으로 뒤집는다는 뜻입니다.
나쁜 것을 좋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안 좋은 일을 좋게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안 좋은 것을 좋게 만드는 일입니다.
시련을 내가 성장하는 발판으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이런 것을 역전환의 수라고 합니다.
수가 모자라면 전환을 못하기 때문에
그대로 맞아서 상충으로 인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서
결국은 다같이 멸망하게 됩니다.
군자가 길을 갈 때에 조급함은 일을 망치는 원인이 됩니다.
사물을 볼 때 굽어보는 능력은 일을 망치는 원인이 됩니다.
심성을 바르게 하는 연습을 수천만번 하지 않으면 늘 휘어서 보게 되는데요.
그러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부러진 나를 곧게 펴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만 합니다.
굽어질 때로 굽은 것은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세상이 다른 사람이 나를 통하면서 휘어지는 스팩트럼의 역할을 한다면
나는 세상에서 빛이 되지 못하고 사랑이 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이 인간관계라 합니다.
어떤 누구라도 다른 사람과 알고 지내면 반드시 위험한 과정이 있게 됩니다.
관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관계를 유연하게 서로가 서로를 대처하지 못하면
그것이 마음대로 흘러가면서 결국은
서로에게 사무치는 원한을 맺게 됩니다.
인자무적이라고 하는 것은 날마다 참회하고
날마다 갈고 닦는 경지를 말합니다.
절차탁마라고 합니다.
깍고 떼어내고 갈고 닦는 과정을 말합니다.
인생은 그렇게 일평생 수행을 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인간이 교만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현재란 과거에 대한 반영이며
또 나의 현재가 곧 미래인 것입니다.
미래를 멀리서 볼것이 아니라 나의 현재를 보면 모든 미래를 다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하는 마음과 말과 생각과 행실이 나의 미래이지
이것을 벗어난 미래는 없습니다.
지금이 곧 나의 미래인 것입니다.
거의 틀림 없습니다.
나를 마주한 이들에 대하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천만번 기도하라고 합니다.
사랑할 때까지 기도하라고 합니다.
누군가는 일만시간을 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늘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반드시 감흥이 있어서 응답이 오게 되는데요.
천지는 다 그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기도에 달인에게 길을 열어 줍니다.
기도란 인류를 사랑하는 언어 입니다.
기도를 할 때 그 언어가 보석이 되어 원대한 사랑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만번 기도하라고 합니다.
얇팍하면 되는 일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원대한 염원의 기도를 늘 할 수만 있다면
그럴 때 역전환이 일어 나는데요.
그야말로 사즉생의 수인 것입니다.
이것이 극즉변이라고 합니다.
극즉변이라는 것은 사람이 그 끝을 넘어 갔다는 것입니다.
끝을 넘어 가면 반드시 변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때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참는 힘입니다.
참는 것이 능력이며 참는 것이 곧 깨달음입니다.
다가오는 위험을 넘지 못하고 매사에 포기를 하면
인생이 늘 그모냥 그 꼴이며 신수가 펼날이 없게 됩니다.
귀인으로 살고 싶으면 늘 말에 덕을 달아야 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하며 늘 정신통일을 해야만 합니다.
극즉변 이란 쇠가 금강석으로 전환되는 이치입니다.
돌맹이가 보석으로 거듭나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혼이 정신통이 되어 빛으로 화할 때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교만방자함이란 나는 옳고 상대는 틀리다는 데서 시작하게 됩니다.
내가 상대를 볼 때 약 95%가 허상을 보게 되는데요.
서로 헛개비 춤을 추게 됩니다.
오해에 오해를 거듭하고 쌓고 또 쌓아 철옹성을 만들어 두면 실감사는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그로서 서로가 사무치는 원한을 맺게 됩니다.
상대가 언제나 틀렸다는 생각으로 인해 교만방자함이 하늘에 닿게 됩니다.
그로서 나의 인생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착시현상이라고 합니다.
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눈과 심안이 없기 때문에 굽어질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의 이간계에 걸려서 상대를 등지는 사례가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중들의 삶입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든 안하든 그것은 상대의 몫이지만 나는 그려면 안 됩니다.
내가 세상에 내려 온 것은 사랑하기 위해서 내려 온 것이지 사무치는 원한이나 맻으면서 평생을 허비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오래동안의 가르침에서 상대는 곧 나라고 이야기 한 것은 마주하는 모든 것이 다 나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그러합니다.
그를 덕으로 잘 대우하고 나면 살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와 걸려서 서로 대립하면 언젠가는 살을 맞으며 그 살이 되돌아가서 상대를 죽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대병입니다.
상대는 나인고로 그를 마음속으로 극진히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인생살이 입니다.
상대야 알든 모르든 나는 그렇게 늘 연습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역전환의 묘수가 열리기 마련입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든 말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상대를 사랑하고 잘 대우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상대를 존경하고 우대한 것은 나의 할 일을 다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할 때 여러분의 일이 이루어지고 여러분의 사업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대중이란 그러하지 못한 까닭에 사무치는 원한을 맺어 일을 망치고
사업을 망하게 하면서 인생을 막아버리게 됩니다.
그러한 까닭에 여기 의식상의 길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노력을 하는데
그것이 의식을 상승하고 인간을 완성하는 길로 나아가도록 안내합니다.
사람이란 누구든 존귀한 것입니다.
본연의 모습이 진실로 그러합니다.
그가 도둑이든 거지든 창녀든 사기꾼이든
그들은 하나같이 낡은 옷을 입고 있을 뿐
본연의 영혼이란 겉모습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자는 항상 사람을 대할 때는 존경의 마음으로 대해주면 그만입니다.
상대의 태도는 그 사람의 몫이니 내려 놓아야만 합니다.
세상을 보건데 삶을 해석하는 능력이 없는 자는 어둠속으로 들어갈 확률이 높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이란 먼저 의식을 상승하고 인간을 완성하는 공부를 하든데 있습니다.
그것이 본질로 환원하여 근원으로 되돌아 가는 능력입니다.
하심(下心)이란
하심이란 나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도 나늘 낮추는 경지입니다.
하심이란 나보다 부족한 사람이라도 내 앞에 세워주는 경지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해도 상대를 무시하거나 얕보는데서 결국은 거대한 패배를 불러오게 됩니다.
바둑을 두는 분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바둑을 두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바둑의 고수가 되고 나면 그 맛으로 사는데 모두가 고수가 되면 자신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죠.
원래 아는자는 아는자의 즐거움에 취해서 하수들을 보는 재미로 사는지도 모르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세상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빛과 사랑의 세상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낡은 세상의 원리는 지배의 원리입니다.
상대를 강하게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속에 있게 됩니다.
강성한 것은 약한 것의 머리가 됩니다.
약한 것은 강성한 것의 팔과 다리가 됩니다.
이렇게 세상은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서로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상은 그런것이 아니라 존경의 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대중이든 공부자든 사람을 극진히 대해야 산다는 것을 누구나 다 깨닫게 될 것입니다.
치심이란 것은
내가 상대의 어리석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은 다 나로 말미 암지 아니함이 없으니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으며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나는 모든 것의 주체자이며 의식이 각성하지 않으면 대중의 길을 가면서
자신의 권능을 타인에게 세상에 모두 내어 주고 몸부림 치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상대를 원망하면서
고해의 바다를 표류하면서 외롭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다 바둑에 고수가 된다면
이 세상은 그렇게 난장판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리가 없지요.
모두가 무공의 고수라면 맞을 일도 별로 없을려나요?
무공의 최고 경지라는 것도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바둑의 최고 경지란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것입니다.
나는 늘 외부의 세상을 말하지만
실상 그 세상을 해석하는 나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그 나는 모든 것의 주인이면서도 나를 모르면 고해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항상 좋은 느낌을 받고 좋은 기분을 유지 하기 위해서는
가슴 깊은 곳에서 원대한 사랑으로 되돌아 가야만 합니다.
인류가 부모의 마음처럼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다면 여기가 지옥은 아니였을 것입니다.
삶이란 결국은 추수의 시기가 오며
추수는 얼마나 세상을 사랑했는가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람을 사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서도 사랑을 잊지 않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선택에 있습니다.
늘 좋은 선택을 끊임없이 한다면 상수가 되며 상수는 추대를 받아 지도자가 됩니다.
항상 좋은 선택을 잘하기란 공부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대중이 날마다 함정에 빠지고 날마다 방황을 하며
날마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날마다 고뇌를 하게 됩니다.
사고나 질병이 모두 그러한 증거입니다.
가슴은 늘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가슴은 늘 참회하라고 말합니다.
가슴을 늘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교만한 장수는 반드시 패전하게 됩니다.
사람을 존경하고 존중하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보복 당하게 됩니다.
핵심은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도박이나 마약이나 술이나 담배와 같이 해로운 중독성 물질을 통해서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은
영혼이 기분 좋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분 좋은 것입니다.
내재된 영혼이 기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이러한 즐 거움은 반드시 백사장에 모래알 같은 회한과 고통을 불러 오게 됩니다.
그러한 회한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끊임없이 마약을 공급해주겠으나
결국을 병을 얻어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기분을 좋게 느끼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킬 수 있으나
결국은 영혼이 황폐해지면서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기분 좋은 느낌이란 그런 것을 통해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선행지수를 높이거나 덕을 기르거나 하는데서 얻어지는데
사람을 사랑하는데서 사람의 길을 가는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기쁨지수를 마약의 쾌락이 절대 따라오지 못합니다.
선택을 잘 못하면 영혼이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분을 좋게 하는 능력은 사물을 잘 해석하는 지혜에서 얻어지게 됩니다.
결국은 사물을 좋게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전생이든 현생이든 상관 없습니다.
서로 못마땅하고 서로 싫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이제는 멈추어야만 합니다.
나와 마주한 이가 전생에 나에게 당한 만큼 반드시 이번 생애에서 보복을 합니다.
상대는 나를 칠 기회를 노리다가 내가 가장 약할 때 치고 들어와 나를 짓밟아 버리게 되는데요.
그것이 왜 그런 줄을 알아야만 합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수행자라고 하는 이들이 수도 없이 원한이 사무쳐서 서로 죽고 죽이며 보복하고 살륙을 일삼는 것을 오래 동안 봐왔습니다. 운명입니다.
내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절대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인덕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를 방어하는 최대의 경지입니다.
무공을 통해서 상대를 때려줘 봤자 결국은 반드시 보복당하게 됩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언젠가 내가 약할 때 나를 치게 됩니다.
의식상승이 아는 어떤 이가 무공에 고수 인데
하루는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시비가 붙어서 죽기 직전까지 맞았던 사례가 있습니다.
무공을 연마하였으되 심성을 닦지 못한 까닭에 그러한 것입니다.
능력으로 상대를 짓눌러 봤자 언젠가는 보복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식상승하는 자는 상대를 이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영혼으로서 극진히 상대를 존중해 주는 선에게 끝나야만 합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괴롭히고
상대가 여러분을 괴롭히고
내가 나를 괴롭히고
모든 것이 나를 괴롭게 하는데
이런 것을 잘 못 해석하게 되면 안 좋은 선택을 합니다.
아니 안 좋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좋은 선택보다 안 좋은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안 좋은 선택을 해서 같이 드라마을 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습니다.
사람은 상대에게 보복을 할 때 통쾌함을 느끼게 되는데요.
이것이 거대한 화가 되어 되돌아와서 사람을 죽이는 기운으로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치고 죽이고 모함하고 중상모략하게 되면 나중에는 폐인이 되고 맙니다.
이런 것을 자주 즐기게 되면 죽을 때 힘들게 죽습니다.
덕지 덕지 심술보를 혼에 담아가지고 귀가하는데 그 때에 가서 땅을 치면서 후회 할 것입니다.
사람으로 사는 동안 공부를 하고 선행을 쌓고 덕성을 기르러 왔다가 갈 때 빈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길이 어긋나면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길이 어긋났음에도 계속 진행해 나가면
머잖아 고립이 되며 고립이 되면 일을 할 수 없고 계속 진행하면 도태 됩니다.
사람이 싫어서 돈에 대한 욕심이 싫어서 홀로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사는데
그렇게 되면 인류가 세상에 내려온 목적을 잊습니다.
지금 인류가 이 세상을 사는 이유는 진화 상승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진화는 각성하는 것이요 상승은 빛으로 화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다 상승하고 또 상승하며 빛나는 존재로 무한히 거듭나는데 있습니다.
지금은 인간완성의 시대입니다.
이제는 본질로 환원하여 근원으로 되돌아 가야 할 때 입니다.
본질은 나의 영혼이며
근원은 나를 낳은 하느님을 뜻합니다.
그 하느님은 인간 영혼이 나온 근원입니다.
근원의 씨앗은 곧 사랑입니다.
사랑은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사랑이 없으면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모두 동일합니다.
인간의 도태되어 가는 것은 사랑이 사라질 때 입니다.
사랑은 빛나는 등불이며 사랑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군자의 삶이라는 것은
늘 기분좋게 만들어 가는 능력입니다.
늘 내면으로부터 솟아나오는 느낌을 알아채는 능력입니다.
늘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늘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늘 감사하는 능력입니다.
늘 참는 능력입니다.
늘 공부하는 능력입니다.
여러분이 빛나는 등불입니다.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감사합니다. ^^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