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속에 존재하기
컨텐츠 정보
- 55,650 조회
- 1 추천
-
목록
본문
아직 인류(人類)의 삶은 험난한 여정 속에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분들의 아픈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상담도 해드리고 하면서 정말 너무나 많은 분들이 커다란 고통의 그물망 같은 것에 갇혀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지난날 석가불이 보리수 아래에서 득도 후 이 세상을 떠나려 하다 삼계를 관하여 보니 인류가 커다란 고통 사슬에 갇혀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외면할 수 없어서 인간 세상에 남아 80년간 설법하였습니다. 물론 지금의 세상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나 현재나 인류는 짙은 어둠에 매여 커다란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오직하면 외계의 존재들이 지구를 “슬픈 별”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부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둘만 모이면 서로 싸우고 서로 헐뜯고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류는 지금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인류는 이 같은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류가 수 만년동안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영이 짙은 어둠의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게임을 창조한 이유는 인류의 영적 성장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오래 동안 게임을 해온 나머지 이제는 그 게임 자체가 고통이 사슬이 되어 인류를 옭아매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하고 있는 모든 게임은 게임을 졸업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지금 게임을 반복하는 인류는 자신이 지금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일어났던 양자도약을 계기로 지구 인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양자 도약은 의식의 대전환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지구로 무한히 쏟아져 들어오는 광자에너지가 양자 도약 이전보다 더 많이 증폭됨에 따라 그동안 깊은 잠을 자던 인류가 점점 더 깨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인류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는 깊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잠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들은 게임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게임이 게임인줄 모르고 그 게임에 온힘을 다해서 꽉 붙잡고 있습니다.
의식이 상승한다는 것은 낡은 방식으로 살아 갈 때보다 훨씬 더 편리한 것입니다. 상승을 하면 쉽고 편안한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류는 이제 의식상승을 해야 합니다. 상승의 걸림돌은 낡은 의식입니다. 낡은 의식은 새로운 에너지에 저항합니다. 새 에너지는 새로운 사상입니다. 머지않아 그들은 낡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인 새로운 에너지에 적응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게임은 낡은 의식에 의해 아직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인류는 수 만년동안 돌고 나면서 뿌리 깊은 게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게임이 무엇이냐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입니다. 모든 것에 이원성에 입각하여 선과 악을 구분하고 싫고 좋음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게임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자신보다는 상대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반복적으로 상대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상대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직 나의 생각이 옳다고 말합니다. 나는 옳으니 내 생각을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상대만 바꾸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 깊이 각인된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로는 결코 서로의 관계가 좋아지지 못합니다. 이제 인류는 모든 게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시점입니다. 인류가 게임을 종식시키려면 그것이 게임인줄 알아야 합니다. 게임은 진정으로 하나의 꿈과 같습니다. 꿈은 깨고 나면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게임이라는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깊은 이해와 완전한 용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아직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깊은 이해와 완전한 용서에 대해 잘 모릅니다. 게임이 종식되려면 먼저 자기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명확히 아는 사람은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서 상대를 알고 그것으로 상대를 완전히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적절한 것입니다. 의식상승에서 전에 “용서하기”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읽어 보신 분들은 다른 사람을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계실 것입니다. 나의 가슴속에 단 한명이라도 미워하는 사람을 남겨 두지 말고 그들을 모두 용서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라는 것(에고적 자아)에 대해서 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삶이란 본래 전쟁과 같다. 이 치열한 생존경재 속에서 나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꼭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남을 이겨야만 한다. 경쟁에서 지는 것은 죽음이다.” 이것은 현재까지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받침 생각이기도 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생각들입니다. 이것은 낡은 패러다임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나는 신성이다. 나는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모든 사람을 존중한다. 나는 남과 더불어 하나이다. 나는 남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 도와가면서 서로 같이 잘되는 길을 갈 것이다. 신성은 언제나 무한한 창조를 한다. 신성은 무한한 풍요속에 있다. 모든 것은 무한한 풍요속에 있다. 나와 남이 서로 나누어 쓰고도 넉넉하다.” 이제는 에고의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는 신성(神性)의 시대입니다. 모든 사람은 본래 신성입니다. 신성의 시대는 풍요의 시대입니다. 이제 모든 존재가 서로 상생하며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에고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제한되어있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신성의 시대에는 모든 존재가 앞다투어 상극적으로 경쟁하지 않고서도 서로 상생(相生)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풍요의 시대입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我)라는 존재에 대하여 깊이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소망은 무엇인가? 나의 갈 길은 무엇인가?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 무엇이 진정한 가치인가? 등에 대한 깊은 탐구가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거의 해본적도 없이 그저 외부적인 낡은 가르침에 의해서 생존 경쟁에 빠져 살다보니 낡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고난의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래도록 걸려있는 최면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최면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방치된 채로 버려져 있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는 명상을 해야 합니다. 명상을 하면 깊은 잠에서 깨어 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간혹 자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마저도 자신에 대한 미미한 이해 속에서 자신의 참된 가치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대하면서 깊은 이해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완전한 용서를 하였습니다. 그는 또 모든 존재에 대하여 완전한 용서를 하였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진정한 깨달음입니다. 수많은 성자들이 걸어갔던 길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가 누구인지 정확히 깨닫는데 있습니다. 수행(修行)의 길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자기가 누구인지 정확이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는 이미 성자와 같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정확히 아는 사람을 스승이라 합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불과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모든 존재가 자기를 알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일부 존재들만이 수행에 주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인류가 수행을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수행(修行)에 대하여
그렇다면 수행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수행에 대하여 선택된 일부 사람들만이 가는 길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인류 전체가 수행의 길을 가는 시대입니다. 즉 현재 모든 인류는 수행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산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삶 자체가 수행입니다. 사람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의 몸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수행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존재하되 상승을 하면 빛의 존재가 됩니다. 상승을 하지 못하면 아직 어둠속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깨달음의 시대이고 영적 수행의 시대입니다. 그 수행의 첫머리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그다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고 나면 자신이 현재 선택한 삶에 대해서 열심히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자기 자신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삶에 대한 탐구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면 삶의 가치를 무한이 증대할 수 있습니다.
과로와 열정의 차이
나는 나입니다. 나는 나이므로 나는 이제 내가 소망하는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과거에는 삶에 대해 제한된 언어를 가르쳤습니다. “누구나 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이라도 해야만 한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힘들어도 해야 하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원치 안아도 해야 된다.”라는 식의 낡은 생각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낡은 세상은 사람들의 소망이라든지 원하는 직업 등을 제한하고 통제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들이 신성으로 존재한다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나는 근심과 걱정 속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소망하는 바를 이룰 것이다. 나는 나의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하여 항상 열정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사랑한다. 나는 나를 지극히 존중한다. 나는 다른 사람도 존중한다. 나는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면서 살아 갈 것이다. 나는 늘 기쁨 속에서 살아 갈 것이다. 나는 늘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내가 소망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 갈 것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사랑한다. 나는 실패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불안에 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성이다. 신성으로 나는 사랑과 자비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신성은 언제나 풍요와 기쁨 속에 머물고 있다. 나는 심플하고 명료하다. 나는 깊은 이해 속에서 모든 것을 바라본다. 신성은 결코 실패하거나 막히는 일이 없다. 나는 내가 선택한 나의 길을 간다. 나는 기쁘고 행복하다.”
사람은 자신이 소망하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면 때로는 과로한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소망하는 길이 아니고 내가 원하지 않는 피동적인 삶이란 언제나 과로를 동반합니다. 억지로 하는 일은 많은 스트레스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능동적인 삶을 살아갈 때 과로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살아있는 열정일 뿐입니다. 내가 신성으로 존재할 때 나는 열정 속에 있습니다. 그는 하루 3시간을 자든지 4시간을 자든지 즐겁고 행복하며 오히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삶이란 에고적인 삶입니다. 에고적인 삶이란 제3자적인 삶입니다. 억지로 하는 삶은 과로하기 쉽습니다. 과로 했을 때 좋은 결과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수많은 사고를 일으키게 됩니다. 모든 사고는 내가 주체적이지 못하고 피동적인 삶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사고라는 말은 일의 연고 즉 까닭을 뜻합니다. 모든 사고는 연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변형될 때 나의 삶속에서 사고라는 것은 하나둘 사자지다가 끝내 나의 삶속에서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삶은 진정으로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나는 주체자로서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하였으므로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명상을 통한 삶
내가 나로서 살아갈 때만이 삶에 여유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유로운 마음이 새로운 기운으로 변형되는 것입니다. 삶의 여유라는 말은 명상을 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타이거우즈라는 골프선수는 지금도 하루에 두 시간 정도 명상을 한다고 합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명상을 하는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명상은 사람을 확연히 변화 시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고 자신의 소망을 명확히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언제나 명상 속에 있습니다. 명상은 참된 삶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명상이란 바른 자세로 반듯하게 앉아서 두 눈을 감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모든 외부적인 것을 멈추고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을 말합니다.” 명상이란 외부로의 모든 여행이 아니라 나의 내 면 속으로 하는 여행입니다. 명상은 존재하기입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명상은 생활을 통해서 얼마든지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명상을 하기위해서 사람들이 없는 절이라든지 토굴 속에 들어가야만 명상이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명상이란 장소 구분 없이 자기 자신을 고요하게 들여다보는 연습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상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명상은 생활 속에서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생활명상을 통해 삶 자체가 명상이 되도록 해나가세요. 하루에 30분정도라도 명상을 생활화 해보세요.
여러분이 명상을 할 때는 여러분 앞에 크리스탈피라미드를 놓고 하는 의식상승명상을 해보세요. 크리스탈피라미드명상을 하면 신성과 만날 수 있습니다. 크리스탈피라미드를 통한 명상은 그동안 방치 되어 있던 여러분의 실체인 신성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의식상승명상을 자주해나가다 보면 여러분은 신성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내가 무엇을 소망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만큼 강력한 존재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 명상을 통해 보석처럼 빛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내십시오. 여러분은 본래 신성입니다. 여러분은 본래 빛의 존재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깊이 있게 바라보시고 심오한 이해를 하세요. 나아가 모든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에 이르도록 하십시오. 또한 자신이 가야할 바를 명료하게 발견하십시오. 그것은 아주 심오한 깨달음입니다. 여러분이 의식을 최상위까지 상승한다면 여러분은 우주의 대한 깊은 이해에 이르고 우주와 완전한 하나가 될 것입니다. 명상을 생활화 하다보면 모든 것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명상을 통해 체험체득 되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날마다 명상을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깊은 이해 속에서 모든 사물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반복하는 삶이 아니고 창조적인 삶입니다. 명상을 통해 높게 상승한 존재는 언제나 기쁨 속에 머물 것입니다.
늘 기쁨 속에 머무세요.
기쁨이란 슬픔의 반대말로서 기쁨이 아니고 어떤 대향성이 없는 기쁨을 말합니다. 그것은 통합적인 기쁨입니다. 의식상승에서 여러분에게 늘 기쁨 속에 머무세요. 라는 인사를 합니다. 여러분에게 왜 그러한 인사를 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기 “기쁨은 신성의 존재 상태입니다” 기쁨이라는 말 한마디에는 강력한 근원의 에너지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신성과 하나 될 때 여러분은 늘 기쁨 속에 머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늘 기쁘고 행복한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세상의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내가 기쁘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나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항상 나를 중심으로 작용합니다. 본래 여러분은 신성입니다. 언제나 여러분은 신성과 하나 되십시오. 그리하여 늘 기쁨 속에 머무세요.
늘 행복하세요. ^^
빛과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