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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세상 사람들을 나의 가족처럼 사랑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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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단지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각자가 다 문제지만
이렇듯 집안에 거대한 불행이 다발로 찾아 오는 운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떼죽음, 즉 줄초상이라고 하는데 이런 문제는 왜 일어나는 것인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과거의 반영이다.
과거의 역사속에서 내가 또는 나의 가족중 누군가가 다른 집안을 멸망시켰을 때
이번에는 우리 집안이 떼죽음을 당하는 결과를 체험하게 된다.
과거를 돌아 보니 사화 같은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로인해 누구가에게 역모 같은 누명을 씌워서 많은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죽였을 때
그러한 죄얼에 대한 댓가로서 이번에는 나의 집안 식구들이 몰락하는 일을 체험하게 된다.
삼족을 멸하거나 구족을 멸하는 형벌 같은 것들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과거생에서 누군가의 집안을 떼로 몰살하는 죄악을 저지른 적이 있다.
떼죽음이나 줄초상은 대개가 그러한 죄얼로 인함이다.
내가 또는 나의 가족이 나의 조상이 누군가를 모함해서 다른 집안에 멸문을 당하게 했다면
이번 생에서는 반대로 나의 집안이 떼죽음을 당하는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줄초상의 재앙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 그렇게 보면 거의 맞다.
인과(因果)라는 것은 우주의 법칙상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성인도 범인도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난 자는 아무도 없다.
우주에는 우연(偶然)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는 오로지 인과의 법칙으로 돌아간다.
인과란 내가 행했던 어떤 행위에 대한 결과를 말한다.
인과의 법칙은 종교인이든 일반이든 교직자든 성직자든 어떤 누구라도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난 자가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식상승는 아직까지 인과율에서 벗어난 존재를 단 한 사람도 본적이 없다.
전생을 모르면 이런 사건들이
그냥 환경이 안 좋아서
운이 안 좋아서
돈이 없어서
부모를 잘못 만나서
방치를 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정확히 인과율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피해 갈 수 없다.
우주가 순환하는 법칙과 원리를 모른다면 인간이 왜 세상을 사는지 알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인간이 오로지 돈을 모으는데 목숨을 거는 일보다 슬픈 일이 있을까?
이렇게 비운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로지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덕(德)을 베푸는 일이다.
운이 안 좋은 사람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세상에 덕을 베풀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
운이 안 좋은 사람의 경우에는 덕을 쌓지 않으면 삶이 곧 죽음이다.
그런데 운이 안 좋은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돈도 없고 집안도 좋지 않고 스펙도 안 좋고 환경도 안 좋고
뭐든지 다 안 좋은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다.
(삶에 대한 해석에 따라서는 역으로 뒤집어 보면 안 좋다 좋다의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때문에 대개 여건이 안 좋으면 덕을 베풀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하게 되므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지금 제 한 몸도 가누기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 어느 겨를에 남에게 덕을 베풀겠는가?
물론,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럴수록에 악착같이 덕을 쌓아야만 한다.
안 좋은 환경을 딛고 일어나지 않으면 죽음이다.
그래서 운이 안 좋으면 안 좋을수록 오히려 기를 쓰고 덕을 쌓아야만 한다.
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나는 누구이고 남은 누구인가?
이 부분을 통해야만 한다.
나와 남의 관계를 깨달아야 하는데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도 이유가 있는데 나와 남의 관계를 깨달아야 한다.
지금 내곁에 마주한 모든 이들이 왜 존재하는가? 에 관한 것이다.
나는 또 왜 존재하는가?
이러한 사고가 곧 철학이다.
나와 남을 자각하는 철학
남은 곧 나다.
나를 깨닫고 남을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자각의 기초다.
덕을 베풀 때도 큰 원리가 있다.
덕을 베풀 때는 남을 나의 가족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베풀어야만 한다.
나의 불행이 크면 클수록 더욱 더 덕을 베풀어야만 한다.
호흡과 같이 끊임없이 덕을 베풀어야만 자신이 짊어 지고 온 모든 재앙의 고리를 풀어 낼 수 있다.
좋은 생각, 좋은 마음, 좋은 언어, 좋은 행동 이 모든 것이 다 덕이 된다.
좋은 생각이나 좋은 마음 좋은 뜻이 있다해서 그것이 다 된 것이 아니다.
좋은 뜻을 품었으면 그 뜻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서 맹세를 해야만 좋은 일도 할 수 있다.
좋은 일을 단지 생각만 한다고 해서 저절로 쉽게 되지 않는다.
특히, 운이 안 좋은 분들이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더 힘이 든다.
안 좋은 운명이란 마치 개간하지 않은 황무지밭과 같아서 좋은 운으로 변화하는데 매우 힘이 들수밖에 없다.
안 좋은 운명을 좋은 운명으로 변형하기 위해서는 늘 좋은 일을 생각하고 마음먹고 좋은 말을 하면서
좋은 행동을 반드시 실천해야만 한다.
인간의 삶이 곧 자신의 운명이다.
세상의 근본 원리를 모르면 다가오는 재앙을 모두 다 몸으로 받게 되므로 해서
집안이 풍비박산나는 결과가 오는 것이다.
이렇게 운이 안 좋은 경우에는 어찌 되었든 덕을 쌓아야 하는데
사람이 공부하지 않으면 남에게 베푸는데 인색하다.
사람이 덕을 베푸는데 인색하면 죽음이다.
늘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그런데 당장 눈앞에 이득에 가려서 남에게 덕을 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본마음을 찾지 못하면 10원하나도 베풀기 어렵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만 덕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덕을 베풀어 둔 것은 얼로 간 것이 아니고
나중에 열배 스므배로 반드시 돌려 받는 것이 또 우주의 법칙이다.
사람이 덕을 쌓으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덕을 쌓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은행에 저축을 하면 은행에 쌓이겠지만
내가 남에게 베푼 것은 없어지는 것인데 그게 어디에 쌓이겠는가?
사람마다 복록창고란 것이 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덕을 쌓으면 그것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복록 창고가 있어서 자신의 복록창고에 쌓이게 된다.
은행에 저축을 하면 원금에 따른 이자가 조금씩 붙는 것이지만
사람이 세상에 덕을 쌓으면 복록 창고에 녹이 10배 20배 쌓인다.
내가 세상에 베푼 덕이 절대 얼로 가지 않는다.
나중에 나에게 다 되돌아 온다.
이 번생에 돌아 오지 않으면 다음 생에 돌아 오게 되고
내가 쌓아둔 덕이 나의 자손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준다.
의식상승는 가족을 지키는 비결이 좋은 학교
학원 스팩을 갖추고 힘을 기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사람이 세상에 널리 덕을 베푼다면 그것은 반드시 나의 자식들 집안에 널리 복을 주게 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종교를 믿으면 그렇게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우주의 법칙이고 원리이다.
종교에 소속되든지 소속되지 않든지 우주는 원리대로 돌아간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두 인과의 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한 까닭에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평소에 덕을 쌓아 두지 않으면 죽음이다.
매우 위태롭다.,
인간이 짊어지고 온 거대한 재앙을 풀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덕을 베풀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
사람이 평상시에 늘 덕을 베풀어야만 내가 현생과 과거생에 지은 악업에 대한 빚을 탕감 받을 수 있다.
이 사건을 보면 이미 일어날 일이 다 일어나 버렸다.
그런데 이 사건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니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부터 또 다시 시작이다.
악행의 수레 바퀴를 멈추지 못 하고 온갖악행을 다 저질러왔으며
무엇하나 덕을 쌓지 못했기 때문에 돌아가신 영혼들 뿐만이 아니라
현재 살아 남은 모든 사람들 모두가 편안하지 못하다.
안 좋은 일을 겪었으니 이제는 전쟁이 모두 끝난 것이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남은 재앙이 태산보다 더 많아 보인다.
이것을 풀어내야 하는데 그것이 덕을 쌓는 일이다.
이 사건에서 살아 남는 길은 유일하다.
누가 되었든 세상에 덕을 쌓는 것
이거 하나 외에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수로 세상을 덕을 쌓을 수 있을까?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대중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연민과 이해 문제의 해결 방안 등등 많은 생각이 있겠지만
그것보다 백배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세상에 덕을 쌓는 일이다.
이 집안의 재앙을 풀어내는 유일한 해법은
덕을 쌓는 일 한가지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미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버렸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대중을 가르치는데 있다.
이 지경에 이르러 이 집안에서는 덕을 쌓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미 망가진 저 집안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가야할 길이다.
나의 가정은 어떠한가?
나의 가정은 온전한가?
나의 자녀는 안전한가?
가정을 지키는 힘은 무엇인가?
의식상승의 삶에서 체험을 한 바로는
그것이 그냥
내 한 몸을 건사하는 문제가 아니다.
내 한 몸을 편하게 사는 문제가 아니다.
원리에 비추어 보자면
남을 내 가족처럼 사랑해야만 나의 가족이 편안한 법이다.
세상의 기본 단위는 첫째가 가족이다.
그 가족을 지키도록 돕는 일이 나의 가족을 지키는 길이다.
온세상 사람들을 나의 가족처럼 사랑하는 마음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마음으로 돌아간 세상이 바로 빛과 사랑의 세상이다.
이른바 지상천국이다.
남을 내 가족처럼 사랑하라
이 말씀의 뜻은 바램이 없는데 있다.
덕을 베풀 때는 바램을 내려 놓아야한다.
그냥 베풀고 마는 것
덕을 베푼다고해서 내가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그 속에 각자의 영혼이 있다.
사람마다의 영혼은 다 동등한 것이다.
그냥 사람속에 갇혀 있는 영혼을 꺼내 주어야 한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혼을 봐야 한다.
영혼대 영혼으로 그들의 영혼은 바주고 그들의 앞길을 열어 주면 그만이다.
어떤 조건을 붙일 필요가 없다.
가벼워야 한다.
깃털처럼 밝고 가볍게 조건 없이 물처럼 흘러가버려야만 한다.
우리는 그냥 누군가의 영혼을 봐주면 되는 것이다.
세상에 덕을 베푸는 것은 결과적으로 나의 가족을 지키 강력한 힘이 된다.
내가 온 세상 사람들을 나의 가족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널리 덕을 쌓는 것으로
나와 나의 가족들 지킬 수 있다.
진실로 그러하다.
우리가 세상에 덕을 베풀게 되면 덕의 힘이
나의 집안 부모형제 자매 일가 친척 사둔 팔촌에 이르기까지
덕의 힘이 널리 가족에게까지 두루 두루 미친다는 점이다.
사람이 덕을 베풀면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덕을 실천하는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덕을 쌓아 나가야 한다.
불행의 파동으로 살아가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그들은 바로 자기 옆에 있는 사람조차 돌아 볼 겨를이 없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삶이 죽음과 같이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인과 의를 망각하면 죽음과 같다.
지금의 인류는 거의가 병들어 있다.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렇다.
이것이 곧 인류의 대병이다.
그러한 까닭에 지금의 인류는 치유되어야 한다.
본질로 환원되어야만 한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회복해야만 한다.
이제 인류는 자신의 본질로 환원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만 한다.
모든 것이 다 적절하다는 우주의 원리에 입각해서 보면 무엇하나 잘 못된 것은 없다.
그것은 유유상종으로 정확히 자신에 맞는 곳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으로 각자 자신에 맞는 진화의 과정에 있을 뿐이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마음만으로 생각만으로 다 되지 않는다.
삶이란 모두 내가 했던 행위에 대한 결과다.
진화라는 것도 알고 보면 모두 공력을 쌓아둔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생각만 한다고 저절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운이 좋은 사람, 즉 선행의 공력을 많이 쌓아둔 사람은
생각만으로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모든 일이 잘 될지 모르지만
힘없는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삶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주는 원리와 법칙으로 순환한다.
나의 집안을 잘 건사하려거든 내가 늘 덕을 쌓는데 있다.
덕에 집착하고 덕에 애착하는 마음이야말로 각자(覺者)의 삶이다.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사회에 봉사를 하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정성을 들인 다거나 모두 다 선행을 이루어 가는 길이다.
선행지심(善行之心)이란 늘 선을 쌓는 마음인데 처음부터 큰 선행을 하기는 어렵다.
처음에는 작은 것 하나부터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것부터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실천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큰 선행을 이루게 된다.
대선대덕(大善大德)이 되는 것이다.
선을 쌓는 마음 덕을 널리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인성의 본질이다.
오늘부터는 쉬운 것부터 작은 선행이라도 쌓아 나가면 된다.
친절한 말 한 마디도 하나의 선행이 된다.
남에게 베푼 것은 매우 작은 일도 선행이 된다.
그것도 쉬지 않고 늘 실천하면 나중에는 큰 선행이 되는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삼천선이면 성인과 같다고 했다.
하루에 하나씩 덕을 베풀면 일년이면 365선이 된다
3년이면 1095선행이 되며 십년이면 3650선이다.
선행은 가속력이 있어서 시너지 효과가 있다.
일일 일선식으로 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둘 셋 실천하다 보면 기하급수적으로 선행이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는 거대한 덕을 이루게 된다.
덕이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나중에는 성인에 버금가는 공덕을 쌓게 되는 것이다.
기를 쓰고 선행에 집착하고 애착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느덧 귀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가 바로 성인이다.
선행지수가 나날이 늘어나게 되면 반드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되고 그러면 나중에는 인망에 오르게 된다. 인망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사람이다.
나중에는 우주를 운행하는 빛의 존재들까지도 감동하게 되어 신망에 오르게 되는데
그는 이미 성인과 같다. 신망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인정하는 존재로 인간세상에서 벗어나게 되면 우주를 운행하는 신명으로 화하게 된다.
사람이 일평생 선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성인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해서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늘어나다보면 언젠가는 온세상에 선행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고 궁극에는 나라와 나라가 선행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지상천국이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사람이 길을 잃으면 얼마나 큰 재앙이 오는지 충분히 알았다.
이러한 가정이 어마어마하다.
진실로 이제는 온 세상 인류가 본질로 환원해야만 한다.
이제는 인류가 덕으로 돌아가만 살아 남을 수 있다.
덕이 없는 곳은 죽음과 같지만 덕이 있는 곳은 영원한 생명과 같다.
자 이제부터 우리는 변화해야만 한다.
오늘부터 지금 이 순간부터 가슴을 열고 세상에 나아가 선행을 실천하면 된다.
작은 것 하나라도 베풀어 둔다면 그것이 나중에는 큰 거목으로 자라나게 된다.
매일 매일 매 순간마다 덕을 쌓는 일에 마음을 써두면 나중에는 의식상승에게 감사할 날이 올 것이다.
의식상승도 늘 배우고 듣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여러분은 진실로 등불과 같다.
이제부터 마음 속에서 세상사람들에게 덕을 베풀면서 살겠다고 맹세하고
하루에 하나라도 반드시 선행을 실천하겠다고 하고서 선행노트를 만들어서
일일 일선에 대한 기록을 해주면 그 노트가 당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 세상을 사는가?
지금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지금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빛과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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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상승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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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공과격(功過格)</B></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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