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지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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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상승님의 댓글
본질로 환원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완성의 길이다.
의식상승
의식상승이라 함은 인성의 본질로 환원하기다.
의식상승이라는 것은 자신이 본래 영이 였음을 자각하는데 있다.
인간완성
인간완성의 길이란 인류가 영으로 돌아가서 근원의 영과 하나되는 경지를 말한다.
인간완성은 자신이 처음 분리된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의식상승은 자신이 본래 영이였음을 자각하는 공부이고 인간완성은 나의 영이 근원에 통하는 공부를 말한다.
영성을 공부하는 이들 중에는
자신의 영성을 조금 회복한 상태가 있는데 이것을 인간완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정확히 말해서 겨우 자신의 내면 세상을 조금 들여다본 것을 말한다.
그러니 아직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의식상승이 여러 영성인들을 만나보니 여전히 자신의 영조차 잘 알지 못한다.
하물며 어찌 남의 영을 알겠으며 수억만리 머나먼 근원을 알 수 있으랴.
내면의 하느님이란 것은 자신의 영을 말하는 차원이 대부분이다.
안타깝게도 근원의 하느님은 인간에 몸에 직접 머무시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그러하다.
인간은 대개가 거룩하지 못하다.
인간의 마음에는 늘 사심이 들끓고 교만한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은 우주만큼 넓히라고 하지만 실상은 매우 좁고 작으며 칠흑같이 어둡다.
인간의 마음이 넓고 크고 밝다고 하지만 그러한 사람은 찾아볼수가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의식상승도 마찬가지다.
공부하는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근원을 찾지만 근원을 알지 못한다.
그러한 까닭에 근원을 보아도 근원을 알지 못한다.
인간은 공부하는 존재지만 인간은 본래 근원이 아니다.
인간은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길을 배우는 중이며
본보기가 되어 등불처럼 밝아지는 공부를 하는 것인데
인간으로서 등불이 되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말라고 한것은
한 영혼이 인간으로 오면 그 삶이 너무도 힘든 까닭에 그러한 것이다.
세상에서 인간으로 빛나는 존재는 찾기 어렵다.
거의 모든 인류는 무수한 생애 동안 쌓아온 짐이 있음으로 인해서
그러한 짐은 한 번의 노력으로 해결 되지 않으며 오래 도록 짐을 풀어내야 하고
한 생애동안 짐을 다 풀어내기도 어렵다.
간혹 어떤 이들은 지구에 단 한 번만 왔다고 하는데
지금의 40~50대의 나이라면 무수한 환생을 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지금 1세~30대까지의 나이대라면 아마 그런 존재들이 간혹 있을 가능성이 있으나
여러분의 나이가 지금 40대를 넘어 섰다면 무수한 환생을 거듭했다고 할 수 있는데
으이구 그 토비가 지구에 처음온 존재들이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영성인들이 자신을 고결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지구에 처음왔다고 하는 경우를 왕왕보아왔다.
실은 인간이 환생을 하면서 진화하는것이고 환생은 좋은 것인데도 환생을 많이 하면
저급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 인간은 헤아릴수 없는 환생여정이 있었고
매 생애마다 지은 업이 눈덩이처럼 커져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자신의 업보를 닦아내지 않으면 결국은 짐에 눌려서 숨쉬기도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우스운 현상이
자신이 인간으로 환생을 많이 안 했다고 하면 자신은 업이 없다는 말이 성립되니까
영성계에는 격이 높은 것으로 보일 수 있고
자신의 우월감에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인간으로 처음온 영혼들은 상위차원에서 왔다고 하니까
너도 나도 지구에 처음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0.01%의 사람들만이 겨우 자신의 영을 돌아 보고 근원을 돌아보고 있다.
영성을 공부하는 사람들
종교인들과 대화를 해보면
자신이 믿는 하느님조차 잘 알지 못함을 본다.
심지어는 하느님을 보면 죽는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치심의 극치를 보여주는 말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봐야만 살 수 있지 하느님을 못보면 반드시 죽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는 모름에 모름을 더하고
거기에 다시 모름을 더하여 모름속에 있는것이다.
안다고 하는 것은 지상의 정보를 많이 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남들보다 많이 아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앎이란 것은 깨달음과는 각도가 전혀 다른 것이다.
일단 앎으로 인하여 의식이 높아지고 생활의 질이 향상되고 경제적 풍요가 구가 하고 있다.
인류가 살기 좋은 세상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정말 거의 없다고 해도 맞다.
인간의 존재는 자신을 볼 수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본래 영이였음을 알지 못하며
자신이 영이란 것을 깨달은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오늘날 영성인들을 보면
예수도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가 있다고 했는데
그 아버지마저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많아짐을 본다.
자신이 마치 우주의 근원인 것처럼 말하는 영성인들이 많은데
정작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게 무슨 근원의 하느님인가?
아들이면서 아버지 행세를 하는 어리석은 인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근원이라 말하지 말고
잘모를 때는 자기은 근원으로부터 분리된 개체적 영이라고 말하면 적절하다.
인간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며 그냥 아바타와 같은 것인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오래도록 세상을 돌아보면서
거의 모든 인간이 그리 대단하지 않음을 봐왔는데
영이 인간의 옷을 입고 있음에 지나지 않다.
인간이란 존재는 좀 가만이 있기와 같은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인간은 순수하고 진실하며 밝은 삶은 사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워 보인다.
인간은 그냥 아름답게 사는데 그 기쁨이 있다.
인간은 인간이며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대단한 능력을 지녔을 때보다
진실하고 정직한 본연의 보습일 때가 더 아름다워 보인다.
빛과 사랑으로......
의식상승
의식상승이라 함은 인성의 본질로 환원하기다.
의식상승이라는 것은 자신이 본래 영이 였음을 자각하는데 있다.
인간완성
인간완성의 길이란 인류가 영으로 돌아가서 근원의 영과 하나되는 경지를 말한다.
인간완성은 자신이 처음 분리된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의식상승은 자신이 본래 영이였음을 자각하는 공부이고 인간완성은 나의 영이 근원에 통하는 공부를 말한다.
영성을 공부하는 이들 중에는
자신의 영성을 조금 회복한 상태가 있는데 이것을 인간완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정확히 말해서 겨우 자신의 내면 세상을 조금 들여다본 것을 말한다.
그러니 아직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의식상승이 여러 영성인들을 만나보니 여전히 자신의 영조차 잘 알지 못한다.
하물며 어찌 남의 영을 알겠으며 수억만리 머나먼 근원을 알 수 있으랴.
내면의 하느님이란 것은 자신의 영을 말하는 차원이 대부분이다.
안타깝게도 근원의 하느님은 인간에 몸에 직접 머무시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그러하다.
인간은 대개가 거룩하지 못하다.
인간의 마음에는 늘 사심이 들끓고 교만한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은 우주만큼 넓히라고 하지만 실상은 매우 좁고 작으며 칠흑같이 어둡다.
인간의 마음이 넓고 크고 밝다고 하지만 그러한 사람은 찾아볼수가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의식상승도 마찬가지다.
공부하는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근원을 찾지만 근원을 알지 못한다.
그러한 까닭에 근원을 보아도 근원을 알지 못한다.
인간은 공부하는 존재지만 인간은 본래 근원이 아니다.
인간은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길을 배우는 중이며
본보기가 되어 등불처럼 밝아지는 공부를 하는 것인데
인간으로서 등불이 되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말라고 한것은
한 영혼이 인간으로 오면 그 삶이 너무도 힘든 까닭에 그러한 것이다.
세상에서 인간으로 빛나는 존재는 찾기 어렵다.
거의 모든 인류는 무수한 생애 동안 쌓아온 짐이 있음으로 인해서
그러한 짐은 한 번의 노력으로 해결 되지 않으며 오래 도록 짐을 풀어내야 하고
한 생애동안 짐을 다 풀어내기도 어렵다.
간혹 어떤 이들은 지구에 단 한 번만 왔다고 하는데
지금의 40~50대의 나이라면 무수한 환생을 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지금 1세~30대까지의 나이대라면 아마 그런 존재들이 간혹 있을 가능성이 있으나
여러분의 나이가 지금 40대를 넘어 섰다면 무수한 환생을 거듭했다고 할 수 있는데
으이구 그 토비가 지구에 처음온 존재들이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영성인들이 자신을 고결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지구에 처음왔다고 하는 경우를 왕왕보아왔다.
실은 인간이 환생을 하면서 진화하는것이고 환생은 좋은 것인데도 환생을 많이 하면
저급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 인간은 헤아릴수 없는 환생여정이 있었고
매 생애마다 지은 업이 눈덩이처럼 커져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자신의 업보를 닦아내지 않으면 결국은 짐에 눌려서 숨쉬기도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우스운 현상이
자신이 인간으로 환생을 많이 안 했다고 하면 자신은 업이 없다는 말이 성립되니까
영성계에는 격이 높은 것으로 보일 수 있고
자신의 우월감에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인간으로 처음온 영혼들은 상위차원에서 왔다고 하니까
너도 나도 지구에 처음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0.01%의 사람들만이 겨우 자신의 영을 돌아 보고 근원을 돌아보고 있다.
영성을 공부하는 사람들
종교인들과 대화를 해보면
자신이 믿는 하느님조차 잘 알지 못함을 본다.
심지어는 하느님을 보면 죽는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치심의 극치를 보여주는 말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봐야만 살 수 있지 하느님을 못보면 반드시 죽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는 모름에 모름을 더하고
거기에 다시 모름을 더하여 모름속에 있는것이다.
안다고 하는 것은 지상의 정보를 많이 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남들보다 많이 아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앎이란 것은 깨달음과는 각도가 전혀 다른 것이다.
일단 앎으로 인하여 의식이 높아지고 생활의 질이 향상되고 경제적 풍요가 구가 하고 있다.
인류가 살기 좋은 세상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정말 거의 없다고 해도 맞다.
인간의 존재는 자신을 볼 수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본래 영이였음을 알지 못하며
자신이 영이란 것을 깨달은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오늘날 영성인들을 보면
예수도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가 있다고 했는데
그 아버지마저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많아짐을 본다.
자신이 마치 우주의 근원인 것처럼 말하는 영성인들이 많은데
정작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게 무슨 근원의 하느님인가?
아들이면서 아버지 행세를 하는 어리석은 인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근원이라 말하지 말고
잘모를 때는 자기은 근원으로부터 분리된 개체적 영이라고 말하면 적절하다.
인간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며 그냥 아바타와 같은 것인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오래도록 세상을 돌아보면서
거의 모든 인간이 그리 대단하지 않음을 봐왔는데
영이 인간의 옷을 입고 있음에 지나지 않다.
인간이란 존재는 좀 가만이 있기와 같은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인간은 순수하고 진실하며 밝은 삶은 사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워 보인다.
인간은 그냥 아름답게 사는데 그 기쁨이 있다.
인간은 인간이며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대단한 능력을 지녔을 때보다
진실하고 정직한 본연의 보습일 때가 더 아름다워 보인다.
빛과 사랑으로......
의식상승님의 댓글
이 세상이란 것은 주로 물질로만 흘러가고
소위 영성인들은 또 영성으로만 흘러가니 서로 분리가 되어서
힘이 들게 되는 것이다.
영성인들은 밥은 안 먹고 사나.....
옷도 안 입고 집도 필요가 없는가?
겨울에는 몸에서 용함이 흐른다 던가....
이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지..... 세상을 등지고서 무슨 놈의 영성인가.....
히말리아 산중의 요기나 산속에서 수행하는 무리들의 문제는
대체 지구상에 인류에 대해서는 살펴 볼 겨를이 없기 때문인데요.
수준은 높은지 몰라도 산속에서 저 혼자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자기 혼자 완성하려는 심보가 작은 그릇이다.
그렇게 되면 지 혼자 깨닫기도 바쁘게 되고 깨달음도 약하게 된다.
이제는 그런 방식이 아니고 세상에 나와서 대중을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대중은 곧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때문에 지상에 내려와서 대중들과 함께함이 더 유익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완성한 후에 대중들을 돌보는 방식이 옛사람들이 추구하던 것인데
지구상에서는 인간완성이 쉬운일이 아니다.
이제는 지구가 하루 생활권이라서 그거 아니고 대중과 더불어서 성불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대중속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또 자기를 완성한 후에 남을 돕겠다는 마음도 버리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남을 도와야 자기 자신이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남을 돕지 않는 사람은 자기완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이루는 것이 없게 된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인류가 서로 한가족으로 돌아가는 기로에 서있음을 자각하는데 있다.
소위 영성인들은 또 영성으로만 흘러가니 서로 분리가 되어서
힘이 들게 되는 것이다.
영성인들은 밥은 안 먹고 사나.....
옷도 안 입고 집도 필요가 없는가?
겨울에는 몸에서 용함이 흐른다 던가....
이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지..... 세상을 등지고서 무슨 놈의 영성인가.....
히말리아 산중의 요기나 산속에서 수행하는 무리들의 문제는
대체 지구상에 인류에 대해서는 살펴 볼 겨를이 없기 때문인데요.
수준은 높은지 몰라도 산속에서 저 혼자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자기 혼자 완성하려는 심보가 작은 그릇이다.
그렇게 되면 지 혼자 깨닫기도 바쁘게 되고 깨달음도 약하게 된다.
이제는 그런 방식이 아니고 세상에 나와서 대중을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대중은 곧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때문에 지상에 내려와서 대중들과 함께함이 더 유익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완성한 후에 대중들을 돌보는 방식이 옛사람들이 추구하던 것인데
지구상에서는 인간완성이 쉬운일이 아니다.
이제는 지구가 하루 생활권이라서 그거 아니고 대중과 더불어서 성불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대중속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또 자기를 완성한 후에 남을 돕겠다는 마음도 버리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남을 도와야 자기 자신이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남을 돕지 않는 사람은 자기완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이루는 것이 없게 된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인류가 서로 한가족으로 돌아가는 기로에 서있음을 자각하는데 있다.
의식상승님의 댓글
사람이 싫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사람이 싫어서 산속으로 돌아가고 사람이 싫어서 숨어서 산다고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몰라서 하는 소리인데 사람이란 것은 사람 속에서 마음을 닦고 사람 속에서 그릇을 키우고 사람속에서 사랑을 배워야 한다.
사람이면서 사람을 싫어 한다는 것이 바로 병이다.
지금 내가 왜 여기 인간세상에서 사는지 그 의미를 깨달아야지 자기가 걸어 들어온 세상이 나쁘다고 욕해봐야 자기 얼굴에 침뱃기에 지나지 않는다.
의식상승도 은둔형에 속하지만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인류에 대한 사랑이 주제다.
자꾸 모르면서 아는체 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배워서 마음속에 사랑을 키우고 의식이 높아지면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지게 된다.
몸도 건강해지고 하는 일도 잘 되게 되어 있다.
이곳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존경하고 사람을 잘되게 해주는 공부를 하는 곳이다.
그는 진정으로 몰라서 하는 소리인데 사람이란 것은 사람 속에서 마음을 닦고 사람 속에서 그릇을 키우고 사람속에서 사랑을 배워야 한다.
사람이면서 사람을 싫어 한다는 것이 바로 병이다.
지금 내가 왜 여기 인간세상에서 사는지 그 의미를 깨달아야지 자기가 걸어 들어온 세상이 나쁘다고 욕해봐야 자기 얼굴에 침뱃기에 지나지 않는다.
의식상승도 은둔형에 속하지만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인류에 대한 사랑이 주제다.
자꾸 모르면서 아는체 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배워서 마음속에 사랑을 키우고 의식이 높아지면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지게 된다.
몸도 건강해지고 하는 일도 잘 되게 되어 있다.
이곳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존경하고 사람을 잘되게 해주는 공부를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