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교실의 풍경 속에 빠져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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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책상에 줄지어 앉아 교탁 앞에 선 내게 주목하고 있다.
모두가 집중하여 눈을 맞춘다.
햇살은 칠판에 쓰여진 학습내용을 비추며 새로운 지식을 건네주는 내 목소리를 낭랑하게 밝혀준다.
알아들은 듯한 여유로운 표정과 아직이해하지 못한 미완의 눈빛이 엇갈린다.
교단에 앳된 여교사는 자기가 알고있는 모두를 가르쳐 주려는 듯 지치지 않는다.
시간의 강을뛰어 넘어 옛 교실의 풍경 속에 빠져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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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이번 밸런타인스 데이는 토요일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왜 아니겠어, 최소한 와이프한테 긁힐 염려가 없으니 천만다행이지.” 정원에
며칠 전, 친구들과 담소하던 어느 찻집에서 청년 둘이 앉아 나누는 대화를 흥미 있게 들었다. 홀 안이 비교적 한산한 편이어서 그들의 새촘한
이야기가 잘 들렸다. 지난해 아들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회사 여직원들이 밸런타인스 데이에 근무처로성급한
배달되어 오는 꽃에 무척 예민해 있다고. 마치 남편이나 연인의 사랑의 척도가 꽃다발 크기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이 생각한단다.싱싱한
내일은 밸런타인스 데이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사랑의 표현이 오가는 시기가 이때가 아닌가 싶다. 초콜릿 상점 앞에 길게 줄이 이어지고내가
꽃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유래야 어떻든지 해가 갈수록 과열된 분위기여서 나이와 관계없이 여인이면 꽃이나 초콜릿을 받고 싶어 한다.같은
밸런타인스 데이 증후군은 부부나 연인들이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날임에도 심심찮게 사랑 확인의 언쟁으로 번지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마을이
어느 해였나, 지금은 만혼을 즐기고 있는 나의 절친한 친구가 밸런타인스 데이가 저무는 늦은 저녁 장미 다발을 안고 들어섰다.나무들이
장미를 받았는데 집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아 꽃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꽃을 받으며 의아한 눈으로 친구를 살폈다.물속에는
밸런타인스 데이 오전에 여자 직원만 8명이 있는 친구의 사무실에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크고 작은 장미꽃 다발이 속속 배달되었다. 아무래도
한낮이 기운 오후까지 꽃을 받지 못한 사람은 독신인 친구와 한 여직원뿐이었다. 그것은 당연했다. 그 두 사람에게는 꽃을 보내올 사람이 없었다. 초여름
다른 직원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상기된 기분으로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그때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는 나이 어린 직원이 남편으로부터 중국
받은 커다란 꽃다발을 삼등분하여 빈손인 두 직원의 팔에 안겨 주었다.펼쳐졌다.
아직은 풋풋한 신혼이고 결혼 후 첫 번 맞는 밸런타인스 데이라 의미가 다를 것인데 남편이 보낸 사랑을 나누었다. 꽃을 건네는 모습이 장식품이다.
참으로 신선하게 보였는데 정작 꽃을 받아든 친구의 마음은 무겁고 시리더란다. 꽃 사이에서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메모지에는 “해피 실물
밸런타인스 데이, 사랑해요.”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았던 꽃을 받고 촛불의
기뻐해야 하건만 눈물이 나오도록 슬펐다는 친구의 말에 외로움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초롱이
살아가노라면 알게 모르게 타인으로부터 배려를 받을 때가 있다. 자상하게 마음 써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이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정크
내가 외로울 때 다가와 위로가 되어 주는 사람. 그런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촛불이
가슴이 따뜻한 사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사랑의 향기일 것이다.모양의
나도 가슴 저린 한 송이의 장미를 받았던 시절이 있다.무역회사를 경영하는 남편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주었다. 그곳엔
그사람은 믿음직스럽고 착실한 사람이라고 남편이 늘 칭찬했다. 칭찬 끝에 불이 붙었는지 막상 돈을 받고는 작정한 두 달이 지나도록비해
아무연락 없더니 종무 소식이었다. 큰 액수의 돈이 빠져나가자 남편의 사업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꼼꼼하여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자리를
남편은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겨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몹시 타격을 받았다. 신용이 생명이라는 장미의
좌우명을 가지고 일구어 번창 일로를 걷던 사업에 붉은 불이 켜졌다.축하해
그해밸런타인스 데이에 밤늦게 들어온 남편이 내게 장미 한 송이를 건네주었다. 온종일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의 여유가 없었고 그날의
수중에 가진 돈도 넉넉지 않아 아예 한 송이만 준비했다고 한다. 그때 남편은 꽃 같은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던 때였다. 꽃을 받고 사람을
고마워 남편을 안아주려 다가서는데 내 앞에 검불같이 바싹 마른 타인이 서 있었다. 매일 함께 지내면서도 의식하지 못했다. 피곤에 친절한
지 곧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한 남자.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그때 나에게 장미 한 송이는 이 세상 장미를 기쁘고
다담은하나가득함, 유일함으로 마음 밭에 깊게 심어졌다. 남편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건네준 마음이기에 밸런타인스 데이를 맞을<정크
때마다 가슴 저린 고마운 기억으로 되살아난다.<장미의
우리가 숨을 쉬어야 살아가듯, 사랑해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 사랑은 번민과 고뇌를 해결해 주고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준다. 사랑은황
담기는 그릇에 따라 빛깔과 향기가 다르지만, 그 자체만은 세월이 바뀌어도 불변한다. 살아갈수록 우리 가슴이 삭막해져서 눈에 나타나 강줄기
보이는 것에 사랑의 초점을 맞추기 쉽다. 더욱이 순수한 사랑, 순수한 인간성이 날로 제빛을 잃어 가고 있어 이 세대는 물질을 얻고 해마다
철학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걱정스럽다.추억의
밸런타인스 데이가 되면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된다. 사랑할 사람도 사랑받을 사람도 없어 이름 있는 날이 제일 싫다던 친구도 이제는보파드(Boppard))에서
만혼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친구도 이맘때가 되면 외로운 누군가에게 장미의 사랑을 열심히 나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표현할
새해를 맞는 각오는 누구나 각별하다. 그 아침에 우리는 ‘새해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동쪽 하늘에서 퍼지기 꽃
시작하는 찬란한 햇빛은 우리에게 무언가 모르지만 한없는 희망에 들뜨게 한다. 매일 떠오르는 똑같은 해이건만 새해 아침에 뜨는 해는하얗게
만물을 신선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한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다짐하고, 결심하게 된다.것은
거창하게 세웠던 계획일수록 작심삼일을 면치 못한다. 아주 작은 일, 쉬울 것 같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 일, 생각이 머물기만 하면 지킬 보파드는
수있는일을 우선으로 계획하여 깊은 내면으로부터 조그마한 변화라도 시도해야 할 것이다.있는
정초가 지나고 며칠 후,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연 전에 오랜 직장 생활을 끝내고 책과 여행을 벗하며 지내는 친구다. 낮과
신년하례식에 참석해 달라는 전언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워낙 기발한 아이디어로 늘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빛의
친구라 뭔가가 있을 것 같은 호기가 동하여 서둘러 채비를 했다.관광객이
친구는 여느 때보다 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바의 “해피 뉴 이어”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신년하례식이라 하여 몇 명이 모이는 줄 음악의
알았는데 찻잔이 두 개 놓여 있었다. “더 올 사람은 없어?” “글쎄-” 친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피아노
차를 따르는 친구는 매사 여유 있고 자신만만하던 기백이 전혀 없이 맥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중병을 앓고 난 것 같이 수척해 있었다. 슈베르트의
근래에 가슴이 시려 견딜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으나 단순한 겨울 앓이로만 생각했다. 그저 흐르는 세월의 무상이 친구를 나약하게 만드는슈투트가르트
줄알았다. 아직도 결혼 적령기가 되지 않아 혼기가 늦어진다고 늘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기에 그의 내면 깊은 곳에 감춰둔 외로움을 눈치채지 못했다.컴퍼티션에서
대화를 나누면서도 친구의 시선은 창밖을 의식하곤 했다. 마치 누구를 가다리기라도 하듯이. 좀 있으려니 창가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보였다.주로
인기척이 났다. 친구가 문을 열었다. 누군가가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혹시 “글쎄”의 주인공이 아닐까? 먼발치로이
봐도캐주얼 차림이 잘 어울리는 젊은이였다.만큼
밝 미소로 청년을 맞는 친구를 보며 머리가 띵했다. 아무리 진보된 세상이라 해도 저렇게 새파란 청년과? 그렇지! 그는 꽃집에서 배달 온 청년이었다.1000번째의
깜짝놀랄만한 이벤트를 가끔 보여 주었기에 '글쎄'를 결혼이라는 폭탄선언으로, 청년을 결혼 상대자로 알았던 나의 순간적 착각이었다.자부심으로
거실중앙에 놓인 꽃으로 집안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작품이다.
우리는 찻잔을 높이 들고 새해를 축하했다. 신부처럼 곱게 차려입은 친구의 멋진 드레스가 올해 안에 웨딩드레스로 변해 주기를 간절히, 산산이
간절히 기원했다. 재스민 티가 주는 깊은 맛과 향기가 꽃과 어우러져 색다른 차의 향을 선사해 준다.슈투트가르트의
누군가 그리울 때, 외로울 때 우리는 편지를 쓰거나 만나고 싶다. 나의 마음을 전하고 상대방을 내 마음에 초대하는 것이다. 친구도 이런잦아드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새해를 자축하고 싶어 자신에게 꽃을 보내고 함께 축하해 줄 사람과 새로운 다짐을 보여주기 위한 인증 자가 필요했던 것,얼마나
어쩌면 그것은 외로움을 떨어내기 위한 안간힘일 것이다.“형님,
사람들은 나름대로 새해 희망을 밝히고 다짐한다. 그것이 해마다 같은 것의 반복이라 할지라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기에 가능성이 있고 그러나
언젠가는- 하는 희망을 품고 있기에 꿈을 꾸며 기다리게 된다. 지난날에 뜻을 세웠으나 지키지 못한 그의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또 한 번 다짐할 일이다. 새롭게 다가올 새날을 위하여그려
갈맷빛 녹음이 드리워진 거실 창가에는 푸르게 고여있는 여름이 남아있는데 풀 섶에 우는 벌레와 지나가는 바람은 가을을 느끼게 한다. 정원 겨우
한 편에 서 있는 “천사의 나팔”이 여름내 시들 거리더니 서늘한 바람이 슬쩍 스치자 생기를 찾은 듯 치자 빛 꽃물결이 한창이다. 종 모양의 “노투르노(Notturno)”,
커다란 꽃들이 바람결에 흔들릴 때마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르는 것 같고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아늑하고 한가로운 아침, 정원을 경우
바라보며 커피의 향에 취할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작품을
“나어제 왔어, 지금 곧 너의 집에 가고 싶은데 괜찮겠니?”슈베르트가
서울친구의 반가운 음성이다. 몇 달 전부터 벼르기만 하다가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보고 싶고 여행도 하자며 겸사겸사해서 왔단다.살롱에서
친구가 좋아하는 작설차를 준비하고 우리가 만날 때마다 들었던 쇼팽의 발레 음악 ‘공기의 정”(Les Sylphides)을 걸어 놓았다.예상하는
달빛이 교교한 숲 속에서 4인이 펼치는 꿈 같은 장면의 1막 발레, 미카엘 포킨이 안무이다. 차갑게 얼어붙은 달의 세계를 감미로운 향기가 의해
감도는 신비의 세계로 표현한 환상적인 음악. 오래전에 친구와 함께 춤추었던 음악이기에 추억하며 공유할 수 있는 대화가 많다.친구
마주르카의 경쾌한 춤곡이 연주될 즈음 친구가 왔다.적이
“얘, 이걸 네게 전해주고 싶어서 피곤했으나 빨리 왔어.”31세의
친구의 손에는 조그만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종이로 싸고 또 싸고 몇 겹이나 쌌는지 한없이 종이를 프란츠
벗겨 내고 나니 비닐봉지 속에 담긴 붉은 덩어리가 보였다.“이게 뭐니.”그는
“봉숭아 찧은 거야. 내가 직접 네 손가락에 물들여 주고 싶어서 가져왔어.”세상을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선물을 받아든 나는 할 말을 잊은 체 그렇게 들고 있었다.슈베르트의
몇 년 전에도 친구는 뜻밖의 선물을 보내 주었다. 유년의 풍성한 꿈을 심어주던 꽈리. 잘 익은 꽈리를 요리조리 비틀 어서 속을 뽑은 그리움이
다음 입속에 넣고 뽀드득뽀드득 불던 생각이 났다. 올망졸망 달린 꽈리를 줄기째로 한 다발 묶어서 벽에 걸어두고 장식하던 꽈리의 향수에 밤이
젖어 고향의 가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었다. 그해 겨울, 친구는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 영국에서
속에 빨갛게 익은 꽈리를 넣어 보냈다. 이번에는 손에 직접 쥐여준 봉숭아 찧은 것. 친구의 손을 잡으며 봉숭아를 내려다보는남편의
내눈 속에 시간 저 너머의 환영이 다가든다.유럽의
내가 어렸을 적에 온 가족이 정성스럽게 가꾸던 꽃밭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봉숭아, 채송화, 활련, 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무서워
있었다. 봉숭아는 빨강, 분홍, 흰색이 있는데 손톱에 꽃 물을 들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 것은 한꺼번에 피었다 지기에 남편이
겨울이 될 때쯤에는 손톱에 꽃물이 초승달만큼밖에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는 손톱을 깍지 않고 안타까워하는 딸들을 보시고 여행할
어느 해부터인가 여름에 꽃씨를 한 번 더 뿌리셨다. 우리 집 화단에는 늦가을까지 봉숭아꽃이 피고 또 피었다. 한겨울을 영국으로
지내면서 내 손톱에는 빨간 꽃 물이 그대로 남아있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새로운
어머니는 초저녁에 탐스러운 봉숭아꽃을 따서 백반과 함께 찧어 두셨다가 밤이 이슥해지면 우리를 부르셨다. 언니, 동생, 내 제1화영국에
손톱 위에 붉은 물이 뚝뚝 흐르는 봉숭아를 놓고 나팔꽃 잎으로 싸고 그 위에 헝겊으로 다시 한 번 잘 여민 다음 실로 동여매 주셨다. “애수”의
행여 헝겊이 빠질세라 밤잠을 설치던 그 시절. 그때 어머니의 고운 모습이 꽃잎 물결을 타고 그리움 되어 밀려온다. 'Candle
나또한 내 딸에게 봉숭아 꽃잎을 물들여 주며 내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아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마이라는
봉숭아 꽃 물을 들여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외지에 와서 살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떠오르는 꽃이지만 결혼
그저 가락 고운 노래로 대신하여 세월의 자락 속에 삭여야 했다.그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 있는 봉숭아꽃에는 슬픈 전설이 담겨 있다.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에 갔을 때 열 손가락 모두 거리의
헝겊을 동여맨 눈먼 궁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 궁녀는 어떤 사정이 있었던지 연유는 모르겠으나 고려에서 원나라로 온마이라는
여인인데 고향이 그리워 울고 울다가 눈이 멀었다고 한다. 그 궁녀는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봉숭아꽃 물들이는 거기에
것으로 대신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한 충선왕이 봉숭아를 가져와 궁궐 뜰에 심고 그 궁녀를 생각했다고 한다.워털루
조선 말엽에도 한 정승의 부인이 봉선화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오랜
여인들의 한과 절개를 노래로 지어 불렀다는 봉선화 노래. 갸름한 잎을 가지런히 느리고 수줍음에 고개 숙인 꽃잎의낮게
모습에서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여인의 슬기가 보인다.마이라가
어느날 샤핑센터에서 우연한 반가움을 만났다. 봉숭아꽃 물들인 손톱. 옷매무세가 한국에서 온 여행객 같았다. “이
우리고유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그 여인이 멋져 보여 관심이 갔다. 물건을 고르는 손끝 따라 내 눈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당신을
나는여인에게 옥색 저고리 치마를 입힌다. 웨이브 진 머리에 쪽을 지우고 옥비녀를 꽂는다. 하얀 버선에 코가 오뚝한 흰 고무신을 신긴다. 중학생
그여인은 아름다운 조선의 여인이 되어 사뿐히 걸어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택할
친구의 정성 어린 선물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든 유년시절의 아름다웠든 기억을 다시 새롭게 떠올리게 하여 가슴 모르며
설레는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친구의 섬세한 배려로 그리운 추억 속의 가물거리던 지난 시절과 만날 수 있었고 가책으로
봉숭아가 꽃 피고 꽈리가 꿈처럼 영글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었다.사랑은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오던 날 아침, 꽃을 따서 꽃잎이 마르지 않도록 찧어가져온 배려가 고맙다. 그들의
시차로 피곤할 터인데 쉴 틈 없이 달려온 친구의 순수한 우정이 그대로 사랑이기에 이 계절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제2화눈이
가족끼리 단출하게 치를 계획으로 준비하며 입양을 알선한 가슨 변호사를 초청했다. 변호사는 빅토리아 생일을 축하해 사철
주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함께 초대해 줄 것을 원했다. 응당 입양기관에 있는 사람이려니 짐작했는데 뜻밖에 심하여
산타바바라에 거주하는 기관장들이 아기를 둘이나 입양하여 모범적으로 키우고 있는 아들네 소문이 근동에 자자하여 이곳이
축하해 주려 온 손님들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람들의 방문으로 잔치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었다. 미국은 아이를요크셔
입양하면 입양기관에서 철저하게 관리한다. 정기적으로 입양 부모들의 모임을 주선하고 교육한다. 입양아를 양육하며 겪는 힌들리와
과정을 토로한다. 윌리엄을 입양해 기른 경력이 있기에 며느리는 다른 입양 부모들보다 모든 면에 익숙하다.학대를
윌리엄이 네 살이 되던 봄, 작은 며느리가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가슨 변호사라 밝힌 그는 3주 후에 모진
태어날 백인 아기가 있는데 혹시 입양할 의향이 있느냐 물었단다. 가슨은 이미 4년 전 윌리엄의 입양 사실을 알고 있었다.불꽃
작은며느리로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제안을 받고 당혹스러웠다.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캐서린이
며느리는 몸이 약해서 감당할 부분이 많지 않고 오직 윌리엄 하나만을 잘 키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힌들리의
그날 밤 아들 내외는 밤잠을 설쳐가며 고심했다. 오늘까지 윌리엄이 잔병치레 없이 잘 자라주어 늘 감사했는데 유머가
의외의 전화는 평화롭던 아들 가정을 걱정과 혼란에 빠뜨렸다. 며칠을 고심하며 열심히 기도했단다. 일면식도 없는 기실
변호사로부터 받은 제의가 심상치 않고 왜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입양문제로 신경을 써야 하는지 답을 구하기 “자신의
위해 꼬박 일주일을 기도했다. 만약에 아기를 데려온다면 윌리엄의 반응이 어떨까가 가장 큰 몇
문제였다. 입양에 따른 제반 비용도 만만치 않기에 심사숙고 했다.그녀의
신중을 거듭한 끝에 아들 내외는 입양을 결심했다. 윌리엄은 5년간 찾아 기다리던 끝에 얻은 아기인데 이번에는이제는
타의에 의해 자녀를 얻게 됨을 감사했다. 10개월 동안 엄마의 피를 받고 자란 아기를 사정이 있어 기를 30세를
수없게된여인의 아픔이 떠나지 않더라 했다. 입양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부지런히 서류를 작성하여 절차를 밟았다.결국,
3주후, 작은 며느리는 산모에게 산기가 돈다는 의사의 연락을 받고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출산 경험이 없는 것이
며느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아기의 탯줄을 끊었다. 예쁜 딸을 품에 안았다. 눈물이 나더라 했다.지금은
산모에게 아기와 작별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한 뒤 아기를 데리고 왔다. 내 손녀로 연을 맺게 된 두 번째 아기 빅토리아다.사람들의
빅토리아의 복 많은 아기다. 마침 그때 작은 아들네는 차를 바꾸려고 쇼핑하러 다니던 때였다. 빅토리아는 새 차 제3화영국
대신아들 집으로 들어온 선물이다. 기를 능력이 없는 아기, 받아 주는 것만으로 감사하지 않을까가 아니다. 배에
입양절차에 드는 비용이 적지 않다. 빅토리아는 잔병치레 없이 잘 자랐다. 예민하여 아들 내외가 자주 밤을 새웠던 당시
윌리엄 때와 달리 성격도 남자 같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아 매사가 순조롭다. 그것은 첫아기를 기른 후라 세계에
경험있어 좀 수월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겠으나 워낙 아기가 무탈하게 잘 커 주었다.반면에
올해는산타바바라에 머문 시간이 많았다. 빅토리아가 프리스쿨 다닐 나이가 되었다. 외할머니가 손녀의 등 하굣길을 평범한
도와주었는데 그 기회를 내게 조금 나누어 주었다. 격주로 가게 되는 샌타바바라까지 편도 160km의 거리가 멀게 생각되지 그때
않은행복한 작업이었다. 잠시나마 손녀를 돌볼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했다. 빅토리아가 3살이 되면서 작은 며느리가 친구가
다직장으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또한, 온전히 외할머니 몫이었으나 사돈께서 나에게도 혜택을 주어 손녀 재미를맞추려는
보게되었다. 기뻤다. 행복했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 내 아이를 기를 때는 경험 없이 부딪혀 어려움이우리가
많았으나 손주는 사랑해 주고 보호해 주는 역할 뿐이다. 나머지는 엄마, 아빠의 몫이기에. 잠시 동안이었으나 천진한 하이델베르크
아이들에게서 때 묻지 않은 세상을 보았다. 아들 내외의 교육도 한몫이겠지만, 아이들 성품이 착해서 곱게 잘 자랐다.웅장한
영국을 거쳐 미국에서 산 지 30년이 넘었다. 작은아들은 어려서 한국을 떠났고 미국인 아내와 미국 아이 둘을 입양했기에 옛날
삶의 방식이 미국식이다. 미국이 자유분방한 것 같이 보이나 봉건적인 나라다. 아들 내외도 아이들에게 무척 엄격하다. 당시로써는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철저하게 절약 정신을 가르친다. 방 정리, 청소를 담당케 하고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다. 특히꿈을
어려서부터 말씨와 행동에 예의를 갖추도록 가정 교육이 철저하다. 1년에 몇 번 가족 모임이 있을 때 보면 부산하지 않아 된다는
요즘 아이들 같지 않다고 칭찬해 주었는데 함께 지내는 동안에 보니 엄한 부모의 가정 교육과 아이들이 순종하며 잘 따라 준 탓이다. 비밀스럽게
내아들 며느리가 낳아도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럽다.생전
각각다른 네 개체가 한 가족이 되도록 준비하고 이끌어 주신 인연. 신앙 안에서 바른 교육을 위해 애쓰는 아들 내외의 세계사를
모습이 아름답다. 손녀 빅토리아가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친부모님을 감사함으로 기억하고, 양부모님의 자녀로 행복한 삶을 누리기 소망한다견문을
근래소식이 뜸하던 작은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부가 궁금하여 수차례 전화했으나 연결되지 않더니 오랜만이다. 이제
아들 내외는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캔자스로 가서 산모 가족과 함께 지내다 왔다고 한다. 출산이 임박한 산모의 보호자 자아가
자격으로 산실에 들어가 탯줄을 자르고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눈물이 나더라 했다. 팔딱팔딱 뛰는 어린 심장의 박동이 봄바람을
가슴으로 전해졌을 때 생명의 신비에 감동하여 감사 기도를 드렸단다. 아들 내외는 산모의 서운함을 덜어 주고 모유도 다시
공급받으며 여유 있게 머물다 왔다고. 2주쯤 후에 아기의 사진을 보내왔다. 건강해 보이는 남자 아기, 흑인 특유의 푸른
넓적한 코가 잘생긴 귀여운 아기다. 몇 년 전 아들이 양자를 들이고 싶다는 말을 언뜻 내비친 적이 있다. 그 후 잊고 지낼만하면 드리없이 불쑥불쑥 그리움이
이야기를 꺼내더니 지난해 성탄절 가족 모임 때 곧 아기를 데려올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911테러 이후 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아기를 잠정적으로 금하고, 백인은 입양아가 거의 없어 아무래도 아기를 많이 낳는 흑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서울에
나는 갑자기 흑인이라는 말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뭐 흑인?' 하고 반문했다. 아들 내외는 인종에 대한 편견이싶다는
있느냐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 쳐다본다. 편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의식 속에 동양 아이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처녀
있었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침착한 아들 내외가 몇 년을 두고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일일 텐데 지금 내 말이 무슨 효력이있을 것인가. 그저 마음이 착잡할 뿐이었다.나는
미국에서는 사생활에 대해 일절 묻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며느리는 백인이고 아들은 동양인인데 아기가 흑인이라면,내가 교편생활을 할 때에는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
내가 교편생활을 할 때에는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 교직의 권위가 지켜졌던 시절이었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따라 주었다. 요즈음처럼 교사들의 집단행동이나 자식이 야단 맞았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학부형은 없었다. 새학기가 되면 아이들은 다른학급과 경쟁하듯 담임교사의 책상 위에 예쁜 주전자와 물컵을 담은 쟁반을 마련했다. 아침이면 당번을 정해 작은 꽃병의 꽃을 올려 주었다. 어느 해의 것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오래된 플라스틱 쟁반 하나를 아직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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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이번 밸런타인스 데이는 토요일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왜 아니겠어, 최소한 와이프한테 긁힐 염려가 없으니 천만다행이지.” 정원에
며칠 전, 친구들과 담소하던 어느 찻집에서 청년 둘이 앉아 나누는 대화를 흥미 있게 들었다. 홀 안이 비교적 한산한 편이어서 그들의 새촘한
이야기가 잘 들렸다. 지난해 아들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회사 여직원들이 밸런타인스 데이에 근무처로성급한
배달되어 오는 꽃에 무척 예민해 있다고. 마치 남편이나 연인의 사랑의 척도가 꽃다발 크기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이 생각한단다.싱싱한
내일은 밸런타인스 데이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사랑의 표현이 오가는 시기가 이때가 아닌가 싶다. 초콜릿 상점 앞에 길게 줄이 이어지고내가
꽃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유래야 어떻든지 해가 갈수록 과열된 분위기여서 나이와 관계없이 여인이면 꽃이나 초콜릿을 받고 싶어 한다.같은
밸런타인스 데이 증후군은 부부나 연인들이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날임에도 심심찮게 사랑 확인의 언쟁으로 번지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마을이
어느 해였나, 지금은 만혼을 즐기고 있는 나의 절친한 친구가 밸런타인스 데이가 저무는 늦은 저녁 장미 다발을 안고 들어섰다.나무들이
장미를 받았는데 집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아 꽃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꽃을 받으며 의아한 눈으로 친구를 살폈다.물속에는
밸런타인스 데이 오전에 여자 직원만 8명이 있는 친구의 사무실에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크고 작은 장미꽃 다발이 속속 배달되었다. 아무래도
한낮이 기운 오후까지 꽃을 받지 못한 사람은 독신인 친구와 한 여직원뿐이었다. 그것은 당연했다. 그 두 사람에게는 꽃을 보내올 사람이 없었다. 초여름
다른 직원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상기된 기분으로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그때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는 나이 어린 직원이 남편으로부터 중국
받은 커다란 꽃다발을 삼등분하여 빈손인 두 직원의 팔에 안겨 주었다.펼쳐졌다.
아직은 풋풋한 신혼이고 결혼 후 첫 번 맞는 밸런타인스 데이라 의미가 다를 것인데 남편이 보낸 사랑을 나누었다. 꽃을 건네는 모습이 장식품이다.
참으로 신선하게 보였는데 정작 꽃을 받아든 친구의 마음은 무겁고 시리더란다. 꽃 사이에서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메모지에는 “해피 실물
밸런타인스 데이, 사랑해요.”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았던 꽃을 받고 촛불의
기뻐해야 하건만 눈물이 나오도록 슬펐다는 친구의 말에 외로움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초롱이
살아가노라면 알게 모르게 타인으로부터 배려를 받을 때가 있다. 자상하게 마음 써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이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정크
내가 외로울 때 다가와 위로가 되어 주는 사람. 그런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촛불이
가슴이 따뜻한 사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사랑의 향기일 것이다.모양의
나도 가슴 저린 한 송이의 장미를 받았던 시절이 있다.무역회사를 경영하는 남편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주었다. 그곳엔
그사람은 믿음직스럽고 착실한 사람이라고 남편이 늘 칭찬했다. 칭찬 끝에 불이 붙었는지 막상 돈을 받고는 작정한 두 달이 지나도록비해
아무연락 없더니 종무 소식이었다. 큰 액수의 돈이 빠져나가자 남편의 사업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꼼꼼하여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자리를
남편은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겨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몹시 타격을 받았다. 신용이 생명이라는 장미의
좌우명을 가지고 일구어 번창 일로를 걷던 사업에 붉은 불이 켜졌다.축하해
그해밸런타인스 데이에 밤늦게 들어온 남편이 내게 장미 한 송이를 건네주었다. 온종일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의 여유가 없었고 그날의
수중에 가진 돈도 넉넉지 않아 아예 한 송이만 준비했다고 한다. 그때 남편은 꽃 같은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던 때였다. 꽃을 받고 사람을
고마워 남편을 안아주려 다가서는데 내 앞에 검불같이 바싹 마른 타인이 서 있었다. 매일 함께 지내면서도 의식하지 못했다. 피곤에 친절한
지 곧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한 남자.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그때 나에게 장미 한 송이는 이 세상 장미를 기쁘고
다담은하나가득함, 유일함으로 마음 밭에 깊게 심어졌다. 남편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건네준 마음이기에 밸런타인스 데이를 맞을<정크
때마다 가슴 저린 고마운 기억으로 되살아난다.<장미의
우리가 숨을 쉬어야 살아가듯, 사랑해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 사랑은 번민과 고뇌를 해결해 주고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준다. 사랑은황
담기는 그릇에 따라 빛깔과 향기가 다르지만, 그 자체만은 세월이 바뀌어도 불변한다. 살아갈수록 우리 가슴이 삭막해져서 눈에 나타나 강줄기
보이는 것에 사랑의 초점을 맞추기 쉽다. 더욱이 순수한 사랑, 순수한 인간성이 날로 제빛을 잃어 가고 있어 이 세대는 물질을 얻고 해마다
철학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걱정스럽다.추억의
밸런타인스 데이가 되면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된다. 사랑할 사람도 사랑받을 사람도 없어 이름 있는 날이 제일 싫다던 친구도 이제는보파드(Boppard))에서
만혼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친구도 이맘때가 되면 외로운 누군가에게 장미의 사랑을 열심히 나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표현할
새해를 맞는 각오는 누구나 각별하다. 그 아침에 우리는 ‘새해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동쪽 하늘에서 퍼지기 꽃
시작하는 찬란한 햇빛은 우리에게 무언가 모르지만 한없는 희망에 들뜨게 한다. 매일 떠오르는 똑같은 해이건만 새해 아침에 뜨는 해는하얗게
만물을 신선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한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다짐하고, 결심하게 된다.것은
거창하게 세웠던 계획일수록 작심삼일을 면치 못한다. 아주 작은 일, 쉬울 것 같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 일, 생각이 머물기만 하면 지킬 보파드는
수있는일을 우선으로 계획하여 깊은 내면으로부터 조그마한 변화라도 시도해야 할 것이다.있는
정초가 지나고 며칠 후,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연 전에 오랜 직장 생활을 끝내고 책과 여행을 벗하며 지내는 친구다. 낮과
신년하례식에 참석해 달라는 전언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워낙 기발한 아이디어로 늘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빛의
친구라 뭔가가 있을 것 같은 호기가 동하여 서둘러 채비를 했다.관광객이
친구는 여느 때보다 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바의 “해피 뉴 이어”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신년하례식이라 하여 몇 명이 모이는 줄 음악의
알았는데 찻잔이 두 개 놓여 있었다. “더 올 사람은 없어?” “글쎄-” 친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피아노
차를 따르는 친구는 매사 여유 있고 자신만만하던 기백이 전혀 없이 맥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중병을 앓고 난 것 같이 수척해 있었다. 슈베르트의
근래에 가슴이 시려 견딜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으나 단순한 겨울 앓이로만 생각했다. 그저 흐르는 세월의 무상이 친구를 나약하게 만드는슈투트가르트
줄알았다. 아직도 결혼 적령기가 되지 않아 혼기가 늦어진다고 늘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기에 그의 내면 깊은 곳에 감춰둔 외로움을 눈치채지 못했다.컴퍼티션에서
대화를 나누면서도 친구의 시선은 창밖을 의식하곤 했다. 마치 누구를 가다리기라도 하듯이. 좀 있으려니 창가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보였다.주로
인기척이 났다. 친구가 문을 열었다. 누군가가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혹시 “글쎄”의 주인공이 아닐까? 먼발치로이
봐도캐주얼 차림이 잘 어울리는 젊은이였다.만큼
밝 미소로 청년을 맞는 친구를 보며 머리가 띵했다. 아무리 진보된 세상이라 해도 저렇게 새파란 청년과? 그렇지! 그는 꽃집에서 배달 온 청년이었다.1000번째의
깜짝놀랄만한 이벤트를 가끔 보여 주었기에 '글쎄'를 결혼이라는 폭탄선언으로, 청년을 결혼 상대자로 알았던 나의 순간적 착각이었다.자부심으로
거실중앙에 놓인 꽃으로 집안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작품이다.
우리는 찻잔을 높이 들고 새해를 축하했다. 신부처럼 곱게 차려입은 친구의 멋진 드레스가 올해 안에 웨딩드레스로 변해 주기를 간절히, 산산이
간절히 기원했다. 재스민 티가 주는 깊은 맛과 향기가 꽃과 어우러져 색다른 차의 향을 선사해 준다.슈투트가르트의
누군가 그리울 때, 외로울 때 우리는 편지를 쓰거나 만나고 싶다. 나의 마음을 전하고 상대방을 내 마음에 초대하는 것이다. 친구도 이런잦아드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새해를 자축하고 싶어 자신에게 꽃을 보내고 함께 축하해 줄 사람과 새로운 다짐을 보여주기 위한 인증 자가 필요했던 것,얼마나
어쩌면 그것은 외로움을 떨어내기 위한 안간힘일 것이다.“형님,
사람들은 나름대로 새해 희망을 밝히고 다짐한다. 그것이 해마다 같은 것의 반복이라 할지라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기에 가능성이 있고 그러나
언젠가는- 하는 희망을 품고 있기에 꿈을 꾸며 기다리게 된다. 지난날에 뜻을 세웠으나 지키지 못한 그의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또 한 번 다짐할 일이다. 새롭게 다가올 새날을 위하여그려
갈맷빛 녹음이 드리워진 거실 창가에는 푸르게 고여있는 여름이 남아있는데 풀 섶에 우는 벌레와 지나가는 바람은 가을을 느끼게 한다. 정원 겨우
한 편에 서 있는 “천사의 나팔”이 여름내 시들 거리더니 서늘한 바람이 슬쩍 스치자 생기를 찾은 듯 치자 빛 꽃물결이 한창이다. 종 모양의 “노투르노(Notturno)”,
커다란 꽃들이 바람결에 흔들릴 때마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르는 것 같고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아늑하고 한가로운 아침, 정원을 경우
바라보며 커피의 향에 취할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작품을
“나어제 왔어, 지금 곧 너의 집에 가고 싶은데 괜찮겠니?”슈베르트가
서울친구의 반가운 음성이다. 몇 달 전부터 벼르기만 하다가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보고 싶고 여행도 하자며 겸사겸사해서 왔단다.살롱에서
친구가 좋아하는 작설차를 준비하고 우리가 만날 때마다 들었던 쇼팽의 발레 음악 ‘공기의 정”(Les Sylphides)을 걸어 놓았다.예상하는
달빛이 교교한 숲 속에서 4인이 펼치는 꿈 같은 장면의 1막 발레, 미카엘 포킨이 안무이다. 차갑게 얼어붙은 달의 세계를 감미로운 향기가 의해
감도는 신비의 세계로 표현한 환상적인 음악. 오래전에 친구와 함께 춤추었던 음악이기에 추억하며 공유할 수 있는 대화가 많다.친구
마주르카의 경쾌한 춤곡이 연주될 즈음 친구가 왔다.적이
“얘, 이걸 네게 전해주고 싶어서 피곤했으나 빨리 왔어.”31세의
친구의 손에는 조그만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종이로 싸고 또 싸고 몇 겹이나 쌌는지 한없이 종이를 프란츠
벗겨 내고 나니 비닐봉지 속에 담긴 붉은 덩어리가 보였다.“이게 뭐니.”그는
“봉숭아 찧은 거야. 내가 직접 네 손가락에 물들여 주고 싶어서 가져왔어.”세상을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선물을 받아든 나는 할 말을 잊은 체 그렇게 들고 있었다.슈베르트의
몇 년 전에도 친구는 뜻밖의 선물을 보내 주었다. 유년의 풍성한 꿈을 심어주던 꽈리. 잘 익은 꽈리를 요리조리 비틀 어서 속을 뽑은 그리움이
다음 입속에 넣고 뽀드득뽀드득 불던 생각이 났다. 올망졸망 달린 꽈리를 줄기째로 한 다발 묶어서 벽에 걸어두고 장식하던 꽈리의 향수에 밤이
젖어 고향의 가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었다. 그해 겨울, 친구는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 영국에서
속에 빨갛게 익은 꽈리를 넣어 보냈다. 이번에는 손에 직접 쥐여준 봉숭아 찧은 것. 친구의 손을 잡으며 봉숭아를 내려다보는남편의
내눈 속에 시간 저 너머의 환영이 다가든다.유럽의
내가 어렸을 적에 온 가족이 정성스럽게 가꾸던 꽃밭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봉숭아, 채송화, 활련, 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무서워
있었다. 봉숭아는 빨강, 분홍, 흰색이 있는데 손톱에 꽃 물을 들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 것은 한꺼번에 피었다 지기에 남편이
겨울이 될 때쯤에는 손톱에 꽃물이 초승달만큼밖에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는 손톱을 깍지 않고 안타까워하는 딸들을 보시고 여행할
어느 해부터인가 여름에 꽃씨를 한 번 더 뿌리셨다. 우리 집 화단에는 늦가을까지 봉숭아꽃이 피고 또 피었다. 한겨울을 영국으로
지내면서 내 손톱에는 빨간 꽃 물이 그대로 남아있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새로운
어머니는 초저녁에 탐스러운 봉숭아꽃을 따서 백반과 함께 찧어 두셨다가 밤이 이슥해지면 우리를 부르셨다. 언니, 동생, 내 제1화영국에
손톱 위에 붉은 물이 뚝뚝 흐르는 봉숭아를 놓고 나팔꽃 잎으로 싸고 그 위에 헝겊으로 다시 한 번 잘 여민 다음 실로 동여매 주셨다. “애수”의
행여 헝겊이 빠질세라 밤잠을 설치던 그 시절. 그때 어머니의 고운 모습이 꽃잎 물결을 타고 그리움 되어 밀려온다. 'Candle
나또한 내 딸에게 봉숭아 꽃잎을 물들여 주며 내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아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마이라는
봉숭아 꽃 물을 들여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외지에 와서 살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떠오르는 꽃이지만 결혼
그저 가락 고운 노래로 대신하여 세월의 자락 속에 삭여야 했다.그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 있는 봉숭아꽃에는 슬픈 전설이 담겨 있다.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에 갔을 때 열 손가락 모두 거리의
헝겊을 동여맨 눈먼 궁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 궁녀는 어떤 사정이 있었던지 연유는 모르겠으나 고려에서 원나라로 온마이라는
여인인데 고향이 그리워 울고 울다가 눈이 멀었다고 한다. 그 궁녀는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봉숭아꽃 물들이는 거기에
것으로 대신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한 충선왕이 봉숭아를 가져와 궁궐 뜰에 심고 그 궁녀를 생각했다고 한다.워털루
조선 말엽에도 한 정승의 부인이 봉선화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오랜
여인들의 한과 절개를 노래로 지어 불렀다는 봉선화 노래. 갸름한 잎을 가지런히 느리고 수줍음에 고개 숙인 꽃잎의낮게
모습에서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여인의 슬기가 보인다.마이라가
어느날 샤핑센터에서 우연한 반가움을 만났다. 봉숭아꽃 물들인 손톱. 옷매무세가 한국에서 온 여행객 같았다. “이
우리고유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그 여인이 멋져 보여 관심이 갔다. 물건을 고르는 손끝 따라 내 눈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당신을
나는여인에게 옥색 저고리 치마를 입힌다. 웨이브 진 머리에 쪽을 지우고 옥비녀를 꽂는다. 하얀 버선에 코가 오뚝한 흰 고무신을 신긴다. 중학생
그여인은 아름다운 조선의 여인이 되어 사뿐히 걸어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택할
친구의 정성 어린 선물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든 유년시절의 아름다웠든 기억을 다시 새롭게 떠올리게 하여 가슴 모르며
설레는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친구의 섬세한 배려로 그리운 추억 속의 가물거리던 지난 시절과 만날 수 있었고 가책으로
봉숭아가 꽃 피고 꽈리가 꿈처럼 영글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었다.사랑은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오던 날 아침, 꽃을 따서 꽃잎이 마르지 않도록 찧어가져온 배려가 고맙다. 그들의
시차로 피곤할 터인데 쉴 틈 없이 달려온 친구의 순수한 우정이 그대로 사랑이기에 이 계절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제2화눈이
가족끼리 단출하게 치를 계획으로 준비하며 입양을 알선한 가슨 변호사를 초청했다. 변호사는 빅토리아 생일을 축하해 사철
주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함께 초대해 줄 것을 원했다. 응당 입양기관에 있는 사람이려니 짐작했는데 뜻밖에 심하여
산타바바라에 거주하는 기관장들이 아기를 둘이나 입양하여 모범적으로 키우고 있는 아들네 소문이 근동에 자자하여 이곳이
축하해 주려 온 손님들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람들의 방문으로 잔치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었다. 미국은 아이를요크셔
입양하면 입양기관에서 철저하게 관리한다. 정기적으로 입양 부모들의 모임을 주선하고 교육한다. 입양아를 양육하며 겪는 힌들리와
과정을 토로한다. 윌리엄을 입양해 기른 경력이 있기에 며느리는 다른 입양 부모들보다 모든 면에 익숙하다.학대를
윌리엄이 네 살이 되던 봄, 작은 며느리가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가슨 변호사라 밝힌 그는 3주 후에 모진
태어날 백인 아기가 있는데 혹시 입양할 의향이 있느냐 물었단다. 가슨은 이미 4년 전 윌리엄의 입양 사실을 알고 있었다.불꽃
작은며느리로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제안을 받고 당혹스러웠다.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캐서린이
며느리는 몸이 약해서 감당할 부분이 많지 않고 오직 윌리엄 하나만을 잘 키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힌들리의
그날 밤 아들 내외는 밤잠을 설쳐가며 고심했다. 오늘까지 윌리엄이 잔병치레 없이 잘 자라주어 늘 감사했는데 유머가
의외의 전화는 평화롭던 아들 가정을 걱정과 혼란에 빠뜨렸다. 며칠을 고심하며 열심히 기도했단다. 일면식도 없는 기실
변호사로부터 받은 제의가 심상치 않고 왜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입양문제로 신경을 써야 하는지 답을 구하기 “자신의
위해 꼬박 일주일을 기도했다. 만약에 아기를 데려온다면 윌리엄의 반응이 어떨까가 가장 큰 몇
문제였다. 입양에 따른 제반 비용도 만만치 않기에 심사숙고 했다.그녀의
신중을 거듭한 끝에 아들 내외는 입양을 결심했다. 윌리엄은 5년간 찾아 기다리던 끝에 얻은 아기인데 이번에는이제는
타의에 의해 자녀를 얻게 됨을 감사했다. 10개월 동안 엄마의 피를 받고 자란 아기를 사정이 있어 기를 30세를
수없게된여인의 아픔이 떠나지 않더라 했다. 입양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부지런히 서류를 작성하여 절차를 밟았다.결국,
3주후, 작은 며느리는 산모에게 산기가 돈다는 의사의 연락을 받고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출산 경험이 없는 것이
며느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아기의 탯줄을 끊었다. 예쁜 딸을 품에 안았다. 눈물이 나더라 했다.지금은
산모에게 아기와 작별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한 뒤 아기를 데리고 왔다. 내 손녀로 연을 맺게 된 두 번째 아기 빅토리아다.사람들의
빅토리아의 복 많은 아기다. 마침 그때 작은 아들네는 차를 바꾸려고 쇼핑하러 다니던 때였다. 빅토리아는 새 차 제3화영국
대신아들 집으로 들어온 선물이다. 기를 능력이 없는 아기, 받아 주는 것만으로 감사하지 않을까가 아니다. 배에
입양절차에 드는 비용이 적지 않다. 빅토리아는 잔병치레 없이 잘 자랐다. 예민하여 아들 내외가 자주 밤을 새웠던 당시
윌리엄 때와 달리 성격도 남자 같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아 매사가 순조롭다. 그것은 첫아기를 기른 후라 세계에
경험있어 좀 수월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겠으나 워낙 아기가 무탈하게 잘 커 주었다.반면에
올해는산타바바라에 머문 시간이 많았다. 빅토리아가 프리스쿨 다닐 나이가 되었다. 외할머니가 손녀의 등 하굣길을 평범한
도와주었는데 그 기회를 내게 조금 나누어 주었다. 격주로 가게 되는 샌타바바라까지 편도 160km의 거리가 멀게 생각되지 그때
않은행복한 작업이었다. 잠시나마 손녀를 돌볼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했다. 빅토리아가 3살이 되면서 작은 며느리가 친구가
다직장으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또한, 온전히 외할머니 몫이었으나 사돈께서 나에게도 혜택을 주어 손녀 재미를맞추려는
보게되었다. 기뻤다. 행복했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 내 아이를 기를 때는 경험 없이 부딪혀 어려움이우리가
많았으나 손주는 사랑해 주고 보호해 주는 역할 뿐이다. 나머지는 엄마, 아빠의 몫이기에. 잠시 동안이었으나 천진한 하이델베르크
아이들에게서 때 묻지 않은 세상을 보았다. 아들 내외의 교육도 한몫이겠지만, 아이들 성품이 착해서 곱게 잘 자랐다.웅장한
영국을 거쳐 미국에서 산 지 30년이 넘었다. 작은아들은 어려서 한국을 떠났고 미국인 아내와 미국 아이 둘을 입양했기에 옛날
삶의 방식이 미국식이다. 미국이 자유분방한 것 같이 보이나 봉건적인 나라다. 아들 내외도 아이들에게 무척 엄격하다. 당시로써는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철저하게 절약 정신을 가르친다. 방 정리, 청소를 담당케 하고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다. 특히꿈을
어려서부터 말씨와 행동에 예의를 갖추도록 가정 교육이 철저하다. 1년에 몇 번 가족 모임이 있을 때 보면 부산하지 않아 된다는
요즘 아이들 같지 않다고 칭찬해 주었는데 함께 지내는 동안에 보니 엄한 부모의 가정 교육과 아이들이 순종하며 잘 따라 준 탓이다. 비밀스럽게
내아들 며느리가 낳아도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럽다.생전
각각다른 네 개체가 한 가족이 되도록 준비하고 이끌어 주신 인연. 신앙 안에서 바른 교육을 위해 애쓰는 아들 내외의 세계사를
모습이 아름답다. 손녀 빅토리아가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친부모님을 감사함으로 기억하고, 양부모님의 자녀로 행복한 삶을 누리기 소망한다견문을
근래소식이 뜸하던 작은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부가 궁금하여 수차례 전화했으나 연결되지 않더니 오랜만이다. 이제
아들 내외는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캔자스로 가서 산모 가족과 함께 지내다 왔다고 한다. 출산이 임박한 산모의 보호자 자아가
자격으로 산실에 들어가 탯줄을 자르고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눈물이 나더라 했다. 팔딱팔딱 뛰는 어린 심장의 박동이 봄바람을
가슴으로 전해졌을 때 생명의 신비에 감동하여 감사 기도를 드렸단다. 아들 내외는 산모의 서운함을 덜어 주고 모유도 다시
공급받으며 여유 있게 머물다 왔다고. 2주쯤 후에 아기의 사진을 보내왔다. 건강해 보이는 남자 아기, 흑인 특유의 푸른
넓적한 코가 잘생긴 귀여운 아기다. 몇 년 전 아들이 양자를 들이고 싶다는 말을 언뜻 내비친 적이 있다. 그 후 잊고 지낼만하면 드리없이 불쑥불쑥 그리움이
이야기를 꺼내더니 지난해 성탄절 가족 모임 때 곧 아기를 데려올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911테러 이후 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아기를 잠정적으로 금하고, 백인은 입양아가 거의 없어 아무래도 아기를 많이 낳는 흑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서울에
나는 갑자기 흑인이라는 말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뭐 흑인?' 하고 반문했다. 아들 내외는 인종에 대한 편견이싶다는
있느냐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 쳐다본다. 편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의식 속에 동양 아이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처녀
있었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침착한 아들 내외가 몇 년을 두고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일일 텐데 지금 내 말이 무슨 효력이있을 것인가. 그저 마음이 착잡할 뿐이었다.나는
미국에서는 사생활에 대해 일절 묻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며느리는 백인이고 아들은 동양인인데 아기가 흑인이라면,내가 교편생활을 할 때에는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
내가 교편생활을 할 때에는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 교직의 권위가 지켜졌던 시절이었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따라 주었다. 요즈음처럼 교사들의 집단행동이나 자식이 야단 맞았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학부형은 없었다. 새학기가 되면 아이들은 다른학급과 경쟁하듯 담임교사의 책상 위에 예쁜 주전자와 물컵을 담은 쟁반을 마련했다. 아침이면 당번을 정해 작은 꽃병의 꽃을 올려 주었다. 어느 해의 것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오래된 플라스틱 쟁반 하나를 아직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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