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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과 강병규의 드라마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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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이 왜 생길까? 세상 만사는 실타래같은 인연의 망이다. 세상에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인간은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정보란 것이 있어서 인간은 정보를 먹고 산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성장할 때까지 정보를 먹고 산다. 요즘은 인터넷에 쏟아져 들어 오는 정보의 홍수다. 인터넷이든 세상이든 뭣이든 정보는 끝이 없다. 정보가 들어가서 인간을 미치게도 만들고 인간을 고난하게도 하고 인간을 죽음으로 몰기도 한다.  
 
어려서 우리에게 최초의 정보를 주는 분은 부모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부모로부터 받는 모든 것은 정보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가정에서 교육을 받고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 끝이 없이 정보가 유입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서 받는 정보가  그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기초적 씨앗이 된다는 점이다. 특히, 유아기를 거쳐서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형성한 정보는 거의 평생을 좌우하는 밑거름이 된다. 그때의 상처야 말로 평생을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사회로 나갈 때까지 들어가는 정보가 인간의 삶을 이루는 중요한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정보의 조합이다. 정보에 의해서 인간의식이 형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의식이 삶의 모든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인연에 의해서 교류 소통으로 이어지면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면서 점차 선악의 시비의 판단이 이루어지고 매 순간마다 선택이 더해져서 복잡해져 간다. 인간의 의식이 매우 명료해지면 좋겠지만 인간관계란 것이 정보의 조합에 의한 결과를 낳는 것이기 때문에 대개는 명료하지 못하고 복잡하다. 그러할 때 인간관계는 복잡해져 가는 것이다. 좋은 정보가 많이 들어가면 인간이 되고 저질의 정보가 많이 들어가면 병이 드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간혹 악연이 되는 데는 반드시 어떤 씨앗이 있다. 그것은 그냥 그러함이 아니요. 최초의 씨앗이 있는데 그것은 현생을 넘어 전생으로부터 이어진다.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역시나 나는 그에게 서운한 상처를 준적이 반드시 있다. 이로서 현생에서 드라마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삶의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보면 지금의 현생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간혹은 있으나 거의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전생으로부터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고로 인간은 운명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대중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그래서 의식상승는 평소에 덕을 베풀어야 한다고 늘 강조해 왔다. 인간세상에는 드라마를 하지 않으려면 덕을 베푸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덕이 높아지면 드라마라는 사슬이 모두 풀려져 나간다. 덕이 모자라면 늘 죽음을 밟고 다닌다.
 
오늘 인터넷에 등장한 두 인물을 보니 그들 역시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에 걸려 있다. 그들이 어찌 과거 생에서도 얽혀 있음을 알겠는가? 과거에도 그러하였음을...... 그대들은 사랑을 배워야 하고 용서를 배워야 하며 이해를 배워야 하고 상대가 곧 너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에게 최초의 정보를 주신 분이다. 만약, 정보가 필요한 결핍되면 반드시 현실에서도 결핍된 정보의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만약 부모가 사랑에 대한 정보를 적게 주면 아이는 결핍된 사랑을 채우기위해서 몸부림을 치게될 것이다. 부모가 주는 정보는 오늘까지 나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것은 틀림이 없다. 인간은 부모의 영향 아내와 남편의 영향 지인의 영향으로 이어지면서 인간삶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인간이란 정보의 존재다. 양질의 정보가 부족하면 반드시 드라마를 펼치게 된다. 양질의 정보는 사랑, 이해, 용서, 깊이, 감사와 같은 정보다. 인간이란 것은 자신이 본래 누구인지 모르면 반드시 드라마를 펼치게 된다. 인간은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면 드라마를 펼치게 된다.
 
인간은 정보가 부족하면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된다. 그로서 삶에 드라마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대하여 삶이 무엇이라고 불균형하게 규정할 때 더욱 강력한 드라마를 펼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의 의식으로는 드라마가 멈추지 못한다. 나 스스로 삶의 드라마를 멈추지 못한다. 그럼 왜 지금 나는 벗어 날 수 없는 드라마를 시작했을까? 그래서 지금의 나는 삶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그것은 곧 나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깨달을때까지 짙은 어둠에서 드라마는 계속 되리라.
 
지혜라는 것은 맨처음 시발점을 보는데 있다. 그러므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딜래마에 걸렸을 때는 맨 처음으로 거슬러 되돌아가보면 처음의 원인을 알 수 있다. 거기 원인이 모두 고스란히 있다. 처음 시작을 보는 훈련을 사색이라 하고 그것을 보는 것을 지혜라 한다.
 
옛날 어떤 이가 "내가 상대에게 베풀고도 원망 안 듣는 것만으로도 감사 해야 한다." 고 했다. 만약, 이러한 정보를 인위적인 수준의 사람이 적용하면 얼마나 한이 되겠는가? 베풀고도 원망을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니 이 얼마나 모순된 이야기로 들리겠는가?
 
그래서 차라리 한 수 더 높아야 한다. 그러면 상대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데 있다.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누구인지 세상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만 한다. 그것이 수를 높이는 길이다. 내가 경지를 높여서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자각해야만 드라마가 끝이 난다. 지금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상대가 누구인지 잘 모르고 있다. 그러면 드라마가 시작된다. 오로지 상대는 불구대천의 원수이므로 악의 고리가 끝이 나지 않는다. 상대가 지 자신인줄 꿈속이나 알고 있으랴.
 
삶이 무엇인지 사람이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자각하지 않는한 드라마는 끝나지 않을 것이고 그로서 고통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서로 죽도록 미워하면서 한마디로 피똥터지게 싸우면서 상대가 나보다 더 저질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가 저질이 되나 서로 동격이 되어 버린다. 언제나 상대가 잘 못되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그게 너 자신인줄 어찌 알랴.
 
인간세상에서 고수가 되려면 고요히 사색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사람이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하다. 매사에 왜 그러한지를 알아야 하고 진정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이 무엇인가? 상대는 누구인가? 에 대한 사색을 통해서 본질로 환원되어야 한다.
 
왜 상대가 나를 끝임없이 괴롭히는지 자각해 한다. 나는 상대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자각해야 한다. 이런 것을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못하고 상대를 죽이고 싶을만큼 미워하고 또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면서 중상모략으로 일관하면 서로 망하게 된다. 그야말로 참상이다. 왜 그런지도 모르고  
 
 
자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이러한 드라마를 하고 있는지 자각해야만 한다. 그는 곧 나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나와 마주하여 나를 정확히 비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곧 나입니다. 진정으로 나와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때까지 반복합니다. 죽도록 미운 그가 왜 나인지를 속히 자각하기 바랍니다.
 
진실로 그는 나입니다. 나는 나를 봅니다. 나에게는 고요한 사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는 내가 떼어내야 할 존재가 아니요 나를 비추는 거울이므로 그를 통하여 나를 깨닫도록하는 나 자신인 것입니다. 그는 나를 위하여 아픔을 전해 줍니다. 진실로 그는 곧 나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는 당신과 드라마를 펼치고 있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말이죠.
 
하여지간 남자는 여자가 웬수여 옛부터 여자땜에 망한 임금님 천지여 술 도박 게임 여자 방탕 뭐 그렇게 .......  누가 누굴 나쁘다 하랴 우리 세상의 적어도 80%는 다 약간씩 이상하더라. 아니 어쩌면 지구 인류의 100%가 다 조금씩 이상하다.
 
지구가 지옥이고 여기는 선악의 시비가 있으며 모든 것이 다 있다. 매순간마다 선택의 문제이고 필요에 의해서 모든 것이 존재하며 싸움질도 결국은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 원인과 결과가 있고 참 쉽지 않은 것이 인간의 길이다.
 
그럼 인간은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반드시 이렇게 사는데는 다 목적이 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인간이 살게 하는 것일까? 그 목적이 무엇일까? 그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크게 깨달아서 등불이 되는데 있다. 삶과 죽음 탕자와 선인 모든 것이 다 순간선택에 달려 있다. 무엇이 나쁘고 무엇이 좋으며 무엇이 그르고 무엇이 옳은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서 이 세상을 살고 있는가?
나는 진실로 무엇을 소망하는가?
상대는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
 
 
빛과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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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의식상승님의 댓글

불안함과 두려움 근심 걱정 욕망 서운함 슬픔 번민 고뇌
이것이 에고이며 이제 마음에서 이러한 두려움을 모두 내려 놓고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색이 필요한 것이지 원한과 증오 원망 보복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당사자들간에 과거로 부터 이어지는 피맺힌 서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면 힘이 듭니다.
고요히 심신을 안정하여 본질로 환원되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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