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눈물만 납니다”…시신위임서 794건 전수 분석

입력 2019.12.25 (13:30) 수정 2019.12.2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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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시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친지나 이웃 주민이 아닌 건물 관리인에 의해, 그것도 숨진 지 한 달 정도 지나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성북 네 모녀’의 장례식. 자원봉사자 두 명만이 빈소 앞을 지키고 있다‘성북 네 모녀’의 장례식. 자원봉사자 두 명만이 빈소 앞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 달여가 지난 12월 10일, 이들 네 모녀에 대한 장례가 비로소 치러졌습니다. 장례는 친지가 아닌 구청이 주관했습니다. 유족을 찾았지만, 유족이 구청에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시신 위임서를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장례를 치를 유족이 없어 서울시 조례에 따라 무연고자 공영장례로 치러진 겁니다.

무연고 사망자 2/3는 연고자 있지만 '시신 인수 거부'

정부의 관련 규정을 보면 무연고 시신에 대해 신원 확인 등을 통해 배우자나 자녀, 부모, 형제자매 등 순으로 연고자 유무를 확인합니다. 연고자가 확인되면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하지만, 유족이 인수를 거부할 경우에는 '시신 처리 위임서'를 받습니다.

유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서 작성한 ‘시신 처리 위임서’. 해당 위임서의 경우 시신처리 위임 사유에 대해 ‘경제적 불충분으로 인한 위임’이라고 쓰여있다유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서 작성한 ‘시신 처리 위임서’. 해당 위임서의 경우 시신처리 위임 사유에 대해 ‘경제적 불충분으로 인한 위임’이라고 쓰여있다

올해 상반기(1월~6월) 전국에서 발생한 무연고 사망자는 1,362명입니다. 이 중 여러 이유로 연고자를 찾을 수 없는 사망자가 467명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895명은 연고자를 찾았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입니다. 무연고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인 65%는 연고자가 있는 겁니다.

유족들이 어떤 이유로 가족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겠다며 시신 인수를 거부한 걸까요. 취재진은 그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국회 윤일규 의원실의 협조로 전국 지자체에서 접수한 무연고 사망자 '시신처리위임서'를 전수 조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눈물만 납니다"…장례조차 버거운 유족들

취재진은 전국 지자체가 접수한 794건의 '시신 처리 위임서' 내용을 확보했습니다.

"막내인 제가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지체 장애 1급으로 혼자선 아무 일도 못한다", "어려서부터 혼자 살아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다"는 등 유족들이 직접 쓴 위임서에는 무연고 사망자만큼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습니다.


또, "죄송하다", "눈물만 난다"며 죄책감과 함께 가족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움을 드러낸 글도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이들이 시신을 인수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뭔지, 그들의 심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위임서에 쓴 표현을 살펴봤습니다. 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단어 빈도수 통계를 내는 '워드 클라우드' 분석을 해봤습니다.

‘시신 위임서’ 단어 빈도수 분석. 글자가 클수록 빈도수가 높음을 의미한다‘시신 위임서’ 단어 빈도수 분석. 글자가 클수록 빈도수가 높음을 의미한다

'시신처리 위임서'에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가족/관계/단절'

'시신처리 위임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관계’와 ‘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절’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연락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가 가장 많았습니다.

상위 10개 단어를 집계해보면 '관계, 가족, 단절, 경제적, 위임, 처리, 시신, 어려움, 연고, 연락'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중 절반은 '관계, 가족, 단절, 연고, 연락'처럼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였습니다.

그다음으로는 '경제적', '어려움' 등의 단어처럼 형편이 어려워서, 장례 비용이 부담돼서 시신을 위임한다는 내용도 상당수였습니다. 결국, 유족들이 시신 인수를 거부한 이유는 오래된 가족 관계의 단절과 경제 형편의 어려움이라는 크게 두 가지로 모아집니다.

서울시복지재단 송인주 연구위원은 이번 분석 결과에 대해 "관계가 계속 단절되었던 사람이다, 그 기간이 굉장히 길었던 가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가족과의 관계도 우리가 혈연으로 묶여 있기는 하지만 심리적인 부양이나 돌봄의 책임을 갖게끔 하려면 관계망이 유지돼야 하지 오랫동안 단절된 상태에서는 정서적인 책임, 경제적인 책임, 장례를 치르는 책임을 묻는 것이 이제는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4년 새 2배 급증한 무연고 사망자…우리 사회 역할은?

문제는 무연고 사망자의 수가 매년 급증한다는 점입니다. 2014년 1,379명에서 2015년엔 1,676명, 2016년 1,820명, 2017년 2,008명, 2018년 2,447명으로 4년 새 2배 가까이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벌써 1,362명으로 단순 계산을 해보면 지난해보다 더 많은 무연고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년층의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1인 가구도 함께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중심의 장례 문화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됩니다. 서울시 공영장례를 전담하고 있는 시민단체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는 "예비 무연고 사망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이미 사회에 많다"면서 "걱정하면서 삶을 마무리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함께 공동의 애도가 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처럼, 존엄한 생의 마무리를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연고 사망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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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송합니다, 눈물만 납니다”…시신위임서 794건 전수 분석
    • 입력 2019-12-25 13:30:54
    • 수정2019-12-25 15:15:27
    취재K
지난달 서울시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친지나 이웃 주민이 아닌 건물 관리인에 의해, 그것도 숨진 지 한 달 정도 지나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성북 네 모녀’의 장례식. 자원봉사자 두 명만이 빈소 앞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 달여가 지난 12월 10일, 이들 네 모녀에 대한 장례가 비로소 치러졌습니다. 장례는 친지가 아닌 구청이 주관했습니다. 유족을 찾았지만, 유족이 구청에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시신 위임서를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장례를 치를 유족이 없어 서울시 조례에 따라 무연고자 공영장례로 치러진 겁니다.

무연고 사망자 2/3는 연고자 있지만 '시신 인수 거부'

정부의 관련 규정을 보면 무연고 시신에 대해 신원 확인 등을 통해 배우자나 자녀, 부모, 형제자매 등 순으로 연고자 유무를 확인합니다. 연고자가 확인되면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하지만, 유족이 인수를 거부할 경우에는 '시신 처리 위임서'를 받습니다.

유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서 작성한 ‘시신 처리 위임서’. 해당 위임서의 경우 시신처리 위임 사유에 대해 ‘경제적 불충분으로 인한 위임’이라고 쓰여있다
올해 상반기(1월~6월) 전국에서 발생한 무연고 사망자는 1,362명입니다. 이 중 여러 이유로 연고자를 찾을 수 없는 사망자가 467명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895명은 연고자를 찾았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입니다. 무연고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인 65%는 연고자가 있는 겁니다.

유족들이 어떤 이유로 가족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겠다며 시신 인수를 거부한 걸까요. 취재진은 그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국회 윤일규 의원실의 협조로 전국 지자체에서 접수한 무연고 사망자 '시신처리위임서'를 전수 조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눈물만 납니다"…장례조차 버거운 유족들

취재진은 전국 지자체가 접수한 794건의 '시신 처리 위임서' 내용을 확보했습니다.

"막내인 제가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지체 장애 1급으로 혼자선 아무 일도 못한다", "어려서부터 혼자 살아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다"는 등 유족들이 직접 쓴 위임서에는 무연고 사망자만큼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습니다.


또, "죄송하다", "눈물만 난다"며 죄책감과 함께 가족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움을 드러낸 글도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이들이 시신을 인수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뭔지, 그들의 심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위임서에 쓴 표현을 살펴봤습니다. 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단어 빈도수 통계를 내는 '워드 클라우드' 분석을 해봤습니다.

‘시신 위임서’ 단어 빈도수 분석. 글자가 클수록 빈도수가 높음을 의미한다
'시신처리 위임서'에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가족/관계/단절'

'시신처리 위임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관계’와 ‘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절’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연락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가 가장 많았습니다.

상위 10개 단어를 집계해보면 '관계, 가족, 단절, 경제적, 위임, 처리, 시신, 어려움, 연고, 연락'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중 절반은 '관계, 가족, 단절, 연고, 연락'처럼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였습니다.

그다음으로는 '경제적', '어려움' 등의 단어처럼 형편이 어려워서, 장례 비용이 부담돼서 시신을 위임한다는 내용도 상당수였습니다. 결국, 유족들이 시신 인수를 거부한 이유는 오래된 가족 관계의 단절과 경제 형편의 어려움이라는 크게 두 가지로 모아집니다.

서울시복지재단 송인주 연구위원은 이번 분석 결과에 대해 "관계가 계속 단절되었던 사람이다, 그 기간이 굉장히 길었던 가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가족과의 관계도 우리가 혈연으로 묶여 있기는 하지만 심리적인 부양이나 돌봄의 책임을 갖게끔 하려면 관계망이 유지돼야 하지 오랫동안 단절된 상태에서는 정서적인 책임, 경제적인 책임, 장례를 치르는 책임을 묻는 것이 이제는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4년 새 2배 급증한 무연고 사망자…우리 사회 역할은?

문제는 무연고 사망자의 수가 매년 급증한다는 점입니다. 2014년 1,379명에서 2015년엔 1,676명, 2016년 1,820명, 2017년 2,008명, 2018년 2,447명으로 4년 새 2배 가까이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벌써 1,362명으로 단순 계산을 해보면 지난해보다 더 많은 무연고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년층의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1인 가구도 함께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중심의 장례 문화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됩니다. 서울시 공영장례를 전담하고 있는 시민단체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는 "예비 무연고 사망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이미 사회에 많다"면서 "걱정하면서 삶을 마무리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함께 공동의 애도가 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처럼, 존엄한 생의 마무리를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연고 사망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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