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흉기 들고 "구급차 못가"…끝내 환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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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5.03.10. 오후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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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공분을 산 사건이죠. 위독한 아기에게 심폐 소생술을 하면서 응급실로 달려가던 구급차가 그만 앞서 가던 승용차를 받아버렸는데, 피해 차량 운전자는 구급차 앞을 자신의 차로 가로 막은 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환자 어머니까지 내려 아기 목숨이 위험하다고 하소연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구급차 운전자가 피해 차량을 몰아 옆으로 비끼게 한 뒤 15분 만에 겨우 현장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기는 응급처치를 받고 고비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피해 차량 운전자가 보인 매정한 처사에 온 국민이 씁쓸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니 한 술 더 떴습니다. 지난 7일 아침 8시 랴오닝성 선양시 한 시장 앞 대로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젊은이 한 명이 구급차를 가로 막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의 한 손에는 철제 솥이, 다른 손에는 커다란 흉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외치는 말입니다.

"당신이 내 차에 함부로 끼어들어 가로막은 걸 알았어, 몰랐어? 내 차를 그렇게 막아놓고 그냥 가겠다고? 당장 차에서 내려!"

젊은이의 시퍼런 서슬에 구급차 대원들은 감히 내릴 생각도 못합니다. 운전자만 창문을 조금 내리고 하소연합니다.

"이 시장에서 어떤 분이 120(우리나라의 119 구급신고) 신고를 했어요. 지금 그 응급환자를 모시러 가는 중입니다. 몹시 위독하다 했습니다. 만약 우리 차가 당신 차를 긁었다면 122에 신고하세요. 법에 따라 보상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어딜 가겠다고. 당신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끼어들고는 그대로 가려고 해? 당장 모두 내려."


한 젊은 여성이 날뛰는 남성의 옷을 뒤에서 잡아끌며 말리느라 애를 썼습니다. 이 여성의 설명입니다.

"우리는 시장 앞을 통과해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행렬 맨 끝이라 신호가 바뀌기 전에 서둘러 교차로를 지나려는데 구급차가 갑자기 우리 앞으로 끼어들어 시장 쪽으로 차를 가로질러 갔습니다. 제 때 급정거를 해서 다행이지, 큰 사고가 날 뻔 했어요. 이 사람은 처음에는 너무 놀랐고 구급차가 그대로 가니까 그만 이성을 잃은 거예요."

처음부터 이 상황을 지켜본 목격자의 증언입니다.

"저 젊은이가 격분한 채 차를 그 자리에 세워두고 내리더군요. 그리고 뛰어서 구급차를 쫓아갔습니다. 구급차는 마침 시장 앞의 혼잡한 구간에서 서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길가 노점에 놓여있던 냄비 하나를 들더니 구급차 앞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욕을 하며 못 가게 막아섰습니다. 그 순간 뒤따라온 저 젊은 여성이 남자를 뒤에서 있는 힘껏 잡아당겼고 구급차는 그 새 지나쳐 시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젊은이는 완전히 격분했습니다. 다른 식당에서 커다란 식칼을 주워들더니 구급차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저러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 장을 보러 왔던 사람들이 금방 현장을 둘러쌌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고는 모두들 젊은이를 달래기 위해 한 마디씩 했습니다.

"구급차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잖아. 생명이 걸려 있으니 얼마나 급했겠어. 당신이 이해해야지."

그래도 젊은이가 요지부동이자 핀잔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차나 소방차, 구급차는 원래 길을 먼저 가게 해주는 것이 상식이야. 당신은 그런 것도 모르냐."

구급대를 요청했던 환자 가족들까지 왔습니다. 구급요원들이 거의 집 앞까지 다 와서는 들어오지 못하고 차에 갇혀 있는 모습에 기가 막혔습니다. 젊은이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지금 사람이 죽어가요. 정말 빨리 옮기지 않으면 큰 일 날 수 있어요. 제발 비껴주세요."

그럼에도 젊은이는 여전히 칼을 구급차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며 위협했습니다. 참다못한 환자 가족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서 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모양을 본 젊은이는 그제야 잽싸게 달아나 버렸습니다.

구급대가 서둘러 집안에 들어가 환자에 대해 응급조치에 들어갔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환자에게서 어떤 생명 징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구급대는 환자가 숨진 사실만 확인해야 했습니다. 처음 젊은이가 구급차를 막아선 뒤 이미 30분이나 흘렀습니다. 골든타임을 한참 넘겨버린 것입니다. 중국 경찰은 젊은이의 정확한 신원과 행방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에도 구급차 등 응급차량에 관련한 법규가 엄연히 있습니다.

중국의 도로교통안전법 53조에는 소방차와 경찰차, 구급차 등 응급 임무를 수행중인 공공 차량의 경우 경관등과 경고음 등 경보기를 작동하고 안전을 확보하는 상황에서는 각종 차선 제한, 속도 제한, 신호등 등의 구속을 받지 않고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기타 차량은 응급 차량이 신속히 진행할 수 있도록 비껴주도록 의무화 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키지 않고 응급 차량의 진로를 방해할 경우 경미할 경우 1백 위안(1만8천 원), 중대할 경우 5일 이하 구류와 5백 위안(9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중국 젊은이의 놀라고 화난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법을 떠나 응급 차량, 특히 구급차에 타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급박한 사정의 환자를 위해 길을 양보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길을 비켜주기는커녕 끼어들기를 했다고, 접촉 사고를 냈다고 막아서는 심보는 뭘까요. 나의 크지 않은 손해와 불편, 감정 때문에 목숨을 빼앗겠다는 각박한 인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문제의 중국 젊은이는 자신의 과도한 분노 탓에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실을 알고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합니다. 커다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면 본인의 불행이고, ‘5백 위안의 벌금을 내면 되지’ 생각한다면 이 사회의 불행입니다.


우상욱 기자 woos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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