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길 2

 


13. 다음으로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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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다음으로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영양공급’ 혹은 ‘비축’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지요. 정말 지속적인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뛰어난 성공이 비교적 드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여러분의 위대한 힘은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존재의 깊은 부분인 안쪽 마음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배웠습니다. 보통사람들은 그들의 엄청난 내면의 힘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표면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별로 확신도 갖지 않는 일을 바깥쪽 마음에게 맡깁니다. 그리고는 바깥쪽 마음의 잘못된 보고에 지배되어 버립니다. 그 결과 마침내는 굴복하여 실의와 상심에 빠지고 몸과 마음을 상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되는가? 어째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자기 건강과 활력을 그것과 맞바꾸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그토록 일반적인 통념이 되어 버렸는가? 그 이유는 전에 말한 바 있지요. 사람이 노력의 초점을 한 가지 주어진 목표에 되면 그들은 자동적으로 소중한 자기 생명력의 일부를 거기에 옮기게 되게 때문입니다. 그러는 것까지는 전적으로 잘된 일이고, 또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계속하면서 그 생명력을 재충전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게 영양공급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고갈되어 버리고, 결과적으로 항상 어떤 문제가 야기됩니다.

 

무엇이든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그것도 무제한으로 가지는 것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정당한 유산이자 천부의 권리입니다. 여러분 중 한 사람, 가령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들이 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바로 당신이 쓰고 즐기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게 왜 여기 있겠습니까? 게다가 ‘당신의’ 그 개인적인 욕망을 아는 것은 오직 ‘당신’ 뿐이니까 그것들은 특별히 당신만을 위해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존재의 법칙을 알고 그것과 협력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부와 지위를 얻으면서, 건강과 행복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가난을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참을 수 없습니다. 가난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저주입니다. 그런 교리를 설교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난의 축복됨을 설교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세상의 좋은 것들에 대한 그들의 욕망은 그들의 가슴을 야금야금 파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법칙의 근본 원리를 배운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난 개성에 따라 이 법칙을 다소 다른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내가 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 언급하는 일을 일부러 피해 왔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할 자유와 자기 나름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방식에 대한 힌트 하나 정도는 주고 싶군요. 단, 충고하지만, 이것에 영향을 받아 여러분만의 고유한 방식을 뜯어고치거나 하지는 마십시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따라하거나, 관습이나 전통을 추종해서는 결코 대가의 경지에 오를 수 없는 법입니다. 겁쟁이들과 좀생원들이나 그렇게 하는 거지요. 대가와 선구자들은 결코 그러지 않습니다.

  

만약 화가가 커다란 떡갈나무를 그렸는데 풀밭과 수풀, 꽃들, 잎사귀, 그리고 하늘과 구름 등 자연 배경을 넣지 않았다면 그 그림은 정말 바보 같고 재미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화가는 자연의 충실한 복사판을 만들어 냅니다. 화가와 나의 방법이 비슷합니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화폭에 담고 나는 나의 그림을 나의 내면에 담는 거지요. 화가는 화폭에 떡갈나무를 놓이게 하고 그것에 주변의 자연물을 함께 줍니다. 나도 같은 일을 합니다. 자신의 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화가는 그 목적에서 자기를 떼어놓으려는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할 정도로 그것에 집중합니다. 나도 그렇게 합니다. 때로는 외부 세계의 사물부터 그림의 착상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외부 세계의 사물로부터 그림의 착상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영감으로부터 착상을 얻기도 합니다. 그것은 나와 똑같습니다. 하루에도 백 가지 일들이 떠올라 화가의 주의를 흩뜨려 놓고 딴 데로 끌고 가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그림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그는 그런 것들에 맞서 저항하지 않고, 그냥 그것에 기울여도 될 만한 정도의 주의만 기울이고 이내 그림으로 돌아옵니다. 나와 마찬가지죠. 그의 그림이 완성되면 다시 새 그림을 시작합니다. 나 역시 그렇게 합니다. 나는 의식이나 정신으로는 결코 활동을 멈추는 법이 없거든요. 활동을 멈추고 있는 것은 곧 퇴보하는 것이죠.

  

한 가지 비근한 예를 들어 보지요. 가령, 내가 나의 수행원이 지금 당장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고 합시다. 그러면 나는 마음속의 그림으로 내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을 봅니다. 지금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과 공간이 그림 속의 배경으로 채워져 있지요. 그러면 잠시 후, 그 영상이 현실 속에 ‘그려져 나오는 것’ 입니다.

 

만일 내가 부를 얻고자 한다면, 나는 그 그림을, 본능적으로 그만한 부에 어울리겠다고 느끼는 온갖 것들로, 내가 당연히 포함시켰으면 하는 모든 조건들과 소유물들로 채울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나는 그 착상을 다른 데서 얻을 수 있겠지요. 즉 현실에 그려진, 외부 현실화한 다른 사람의 성공의 그림에서 말입니다. 나는 평소의 직무를 열심히 할 것입니다. 외부 세계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내면에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

 

가령 내가 초심자이고, 새 자동차나 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다면, 나는 내가 바라는 그것들과 아주 흡사한 사진을 잡지에서 골라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눈길이 자주 가는 곳에다 붙여 두는 겁니다. 이것이 바깥쪽 마음을 옆길로 새지 않게 붙들어 주고 내 이상이 그려져 나오는 일을 재촉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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