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뺑소니’ 사망 뒤 4개월…이 가족은 어떻게 산산조각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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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7.19. 오후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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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4월 외박나온 부사관 음주뺑소니에

휴일에 일하던 30대 가장 김신영씨 사망

동석자 음주 방조죄 ‘혐의없음’ 종결한 검찰

복지공단 업무상 재해처리 지지부진 일처리에

음주운전 경각심 높이려 합의안한 유족만 분통

18일 군 검찰 15년 구형·1심 재판부 징역 8년 선고

“가해자가 몇 년을 살든 제 남편은 돌아오지 않아요”


지난 4월 현역 육군 중사의 음주 뺑소니로 사망한 고 김신영(33)씨의 생전 모습(왼쪽)과 가족 사진. 사진 아내 조씨 제공
“대한민국이 너무 싫다. 나는 하루하루가 이렇게 피가 마르는데, 가해자는 깊게 반성한다며 합의를 요구한다. ‘크림빵 뺑소니’ 사건을 볼 때만 해도 내 남편이 음주운전 뺑소니로 사망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혹시 가족, 친구, 동료, 지인…그 누가됐든 술에 취해 운전하려면 차 키를 뺏어달라.”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 조아무개(35)씨는 지난 4개월의 시간이 ‘악몽’ 같다. 휴일근무를 나가며 다음날 외식을 약속했던 남편은 그 날 이후 집에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조씨의 남편 김신영(33)씨는 인터넷 설치기사였다. 지난 3월19일 고장 수리 접수를 받고, 오토바이로 이동하던 중 혈중알코올농도 0.07% 상태로 운전하던 육군 중사 장아무개(24)씨 차량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평범한 일요일 아침이었고, 평범한 휴일근무 중의 하루였다. 이 사고로 단란했던 30대 부부의 일상은 산산조각 났다. 33개월 된 아들은 매일 현관문을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린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큰 시련이었지만, 아내 조씨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남편의 죽음 뒤 겪게 된 근로복지공단과 담당 경찰의 관료적 태도였다.

지난 5일 남편의 업무상 재해 처리 과정을 알아보려 근로복지공단 서울서부지사를 방문한 조씨는 남편 사망 뒤 6월 초 접수한 산재 유족연금 신청 자료들이 한 달째 처리되지 않고 보류 상태인 것을 확인했다. 6월 중순께 공단 관계자에게서 실제 사고가 난 서울시 마포구 관할 지역인 서울지사에 가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씨는 “공단이 요청한 가입서류를 준비해 연락을 취하니 ‘지금 감사중이라 자료를 받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일주일 뒤 연락을 주겠다던 공단 쪽은 조씨가 진행 경과를 확인하기 전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공단 쪽은 업무관할·감사 등의 이유를 들어 접수 뒤 한 달 정도를 그대로 흘려보낸 것이다. 조씨는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가해자와 민·형사 합의를 보지 않은 것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 쪽은 “가입 지원부서와 보상부서 담당이 따로 있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일단 가입부서의 일이 처리돼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다소 시간이 걸렸다. 신속히 처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조씨는 앞서 경찰의 음주 뺑소니 사고 수사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가해자 장씨는 사고 전날 서울 마포구 홍익대 근처에서 밤새 술을 마신 뒤 운전대를 잡았다. 좌우로 흔들리는 장씨의 차를 순찰중이던 경찰이 발견했고, 정지 명령을 내렸지만 그는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도주를 시작했다. 그의 질주는 마포구 성산초교 앞 교차로에서 신호를 무시한 채 질주했고 김씨를 들이받았다. 가해 차량은 사고 이후에도 도주를 계속하다 약 400m 떨어진 건물에 충돌하고 나서야 멈췄다.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로 면허정지 수준이었다. 사고를 당한 김씨는 오른팔을 제외한 전신이 골절됐고 뇌를 비롯한 여러 장기에 출혈이 발생했다. 이대목동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김씨는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사고 13일 만에 4월1일 숨을 거뒀다.

당시 가해 차량에는 운전자인 장씨 외에도 사고 전날 클럽에서 만난 여성 임아무개(24)씨가 있었다. 이들은 현장에서 긴급 체포됐다. 유족이 공개한 차량 블랙박스 영상 녹취록에는 이들의 대화가 고스란히 담겼다. 임씨는 장씨가 음주상태에서 운전을 하려고 하자 “너 술 마셨잖아” “(운전대) 똑바로 잡아”라고 말한다. 경찰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음주운전 처벌 강화 방침에 따르면 △음주운전을 할 것을 알면서도 차 열쇠를 제공한 자 △음주운전을 하도록 권유 및 독려한 동승자 등은 음주운전 방조죄에 해당한다. 경찰은 4월17일 임씨를 음주운전 방조 혐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면서도 별다른 보강 수사를 지휘하지 않고 사건 송치 하루 만에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종결됐는지 알아보는 것도 조씨의 몫이었다. 그는 “유가족인 나에게 사건 진행 등에 대해 알려주거나 제대로 전달해준 사항이 없다. 음주운전 방조죄 성립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너무 빨리 혐의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대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다. 어떻게 피해자 유가족이 직접 발벗고 나서서 알아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현행 음주운전 방조죄 적용은 동승자의 적극적 기여·권유가 기준이 된다. 이번 사건의 경우, 운전을 적극 말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혐의가 있다고 보고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으나 결과적으로 불기소 됐다. 유족과 관련해서는 안내와 설명이 미진했던 부분이 있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고 김신영씨가 탔던 오토바이.
단란했던 한 가족의 행복을 산산조각낸 가해자 장씨는 18일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도로교통법(음주운전) 위반 혐의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주차량 운전자의 가중처벌) 등에 따라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이 ‘차량사고 후 도주죄’에 권고하는 양형기준이 4~6년을 고려하면 높은 형량을 선고한 것이다. 군 검찰은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군 검찰은 “피고인은 2주간의 키리졸브 훈련 기간 중 부대 인근에 대기해야 함에도 위수지를 이탈해 홍대 인근에서 밤새 술을 마셨다. 클럽에서 만난 여성에게 자랑할 의도로 여성을 차량에 탑승시켜 음주 상태로 운전을 했고, 경찰의 정지 명령을 듣고도 오히려 인도나 반대 차로를 이용하고, 신호를 위반해 과속을 일삼으며 도로 위의 위험을 가중했다. 도주 중 피해자를 발견하고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충격하고 그대로 도주했다. 차량이 고장 나서 더는 도주하지 못했을 뿐이지 사람을 친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도망가는 것만을 생각했다. 사실상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라며 구형 사유를 밝혔다.(▶관련기사 : 타인 목숨 빼앗는 ‘선택’…합당한 죗값은 얼마일까요?)

재판부의 선고를 들은 순간 김신영씨의 유족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오열했다. 비록 양형기준보다는 높은 형량이 선고됐지만, 남편이자 아빠, 아들을 잃은 가족에게는 한없이 모자란 숫자였다. 김씨의 어머니는 피해자 부부의 세 살짜리 아들 이름을 부르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아내 조씨는 “가해자가 10년을 살든, 20년을 살든 제 남편은 살아 돌아오지 않아요. 20대인 그가 형을 다 살고 나와도 여전히 30대일 거에요. 음주운전은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사람들이 꼭 깨달았으면 해요.”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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